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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농민회가 밝힌 의식불명 농민의 삶(사진)

  • 김병철
  • 입력 2015.11.18 06:20
  • 수정 2015.11.18 07:45

징을 치고 있는 게 백남기씨다.

지난 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뇌출혈로 의식불명인 농민 백남기씨(69세). 1981년 귀향한 그는 현재 전남 보성군 가톨릭농민회장이다. 가톨릭농민회가 그가 살아온 약력을 공개했다.

1947년 8월 24일(음력) - 전남 보성군 웅치면 출생

1963년 2월 - 광주서중학교 졸업

1968년 2월 - 광주고등학교 졸업 (17회)

1968년 3월 - 중앙대학교 행정학과 입학 (68학번)

․ 법대 학생회장

․ 군복무

1971년 10월 - 위수령 시 시위혐의로 1차 제적

1973년 10월 15일 - 교내에서 유신 철폐 시위 주도

1974년~1975년 - 수배 중 명동성당에 피신

1975년 - 전국대학생연맹 가입 및 2차 제적

․ 갈멜 수녀원 잡부 1년

․ 일흥농원 포도원 1년

․ 갈멜 수도원 수도사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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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백남기씨)

1980년 3월 - 복교

1980년 - 어용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재건 총학생회 1기 부회장 역임

1980년 5월 8일 - 박정희 유신잔당(전두환, 노태우, 신현확) 장례식 주도

1980년 5월 15일 - 서울의 봄 때 의혈중앙 4000인 한강도하 주도 (흑석동 캠퍼스에서 서울역까지 도보 행진)

1980년 5월 17일 - 군부 계엄 확대 조치로 기숙사에서 계엄군에 체포

1980년 7월 30일 - 중앙대학교 퇴학 처분(3차 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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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8월 20일 - 수도군단보통군법회의에서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2년 선고

1981년 3월 3일 - 3‧1절 특사로 가석방

1981년 - 고향 보성으로 귀향(수도작, 낙농업, 밭농사 등)

1981년 11월 - 박경숙(율리아나)님과 결혼

1983년 - 정치활동 규제자에서 해금 및 복권

1986년 - 가톨릭농민회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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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 가톨릭농민회 보성, 고흥협의회 회장

1989년~1991년 -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장

1992년~1993년 -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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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창립(준) 주도

1994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

2014년 - 가톨릭농민회 전남 동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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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자문위원

2015년 - 부인 박경숙(율리아나)님과 슬하에 1남 2녀

2015년 - 11월 민중총궐기 대회 행사 중 폭력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후 의식불명,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사투 중

(가톨릭농민회 11월17일)

백씨와 30년 넘게 알고 지냈다는 최영추(68)씨는 “학생운동을 하고 가톨릭 수도원 생활을 거쳐 1981년부터 보성에 자리를 잡고 친환경·유기농업을 시작했던 사람이다. 순수한 농사꾼이자 우리 지역 농민운동의 선구자 같은 분”이라고 했다. 백씨는 유기농 쌀과 밀, 콩을 기르고 직접 고추장, 된장을 담가 팔았다. 동료들은 백씨가 이날도 “경제논리에 밀려나는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해 서울로 나왔다”고 전했다.(한겨레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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