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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과 송곳

차벽을 세우면 이득을 얻습니다. 차벽 안쪽의 언론은 '폭력적 시위 활개', '도심 마비, 수험생 발동동 굴러', '외국인 관광객 공포'를 보도합니다. 차벽 바깥쪽의 언론은 '마구잡이로 물대포 쏘는 경찰', '폭력 과잉 진압', '분노한 민중'을 보도합니다. 차벽의 높이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을 만큼이면 충분합니다. 사람들은 더 매서운 창날을 휘두르게 됩니다. 게임이론 연구자들은 이것을 "분열시켜 지배하기 전략"(divide and conquer strategy)이라 부릅니다.

  • 김재수
  • 입력 2015.11.18 05:38
  • 수정 2016.11.18 14:12
ⓒ연합뉴스

차별하는 사람들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현저히 낮은 임금을 받습니다. 다양한 차별도 경험합니다. 비정규직 직원은 휴게실도 따로 써야 하고, 통근버스도 탈 수 없습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으로부터 '이놈저놈' 같은 반말과 욕설을 다반사로 듣고, 커피 가져오기와 쓰레기통 비우기 같은 잔심부름도 해야 합니다.

경제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차별을 연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을 인종, 성별, 나이, 출신 지역에 따라 나눕니다. 이들에게 잘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같은 그룹의 사람들과는 협조를, 다른 그룹의 사람들과는 비협조를 선택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였습니다. 연구자들은 그룹 정체성의 근원을 파헤치기 위하여, 주민번호 홀짝수 같은 최대한 무의미한 방식으로 그룹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평소 주민번호의 홀짝수 여부에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장 동질적이고, 단결심이 강한 군인같은 집단에 대하여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홀짝수로 편이 나뉘어지는 순간, 그룹 내의 사람들에게 우호적이고 그룹밖의 사람들을 차별하는 경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민낯입니다. 우리는 선만 그으면 차별의 창을 휘두릅니다. 저는 이것을 악의 평범함과 진부성에 대한 경제학적 증명이라 부릅니다.

선을 긋는 사람들‪

선긋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카이와 지잡대, 정규직과 비정규직, 영남과 호남, 애국과 종북, 순수와 불순을 가르고 선을 그으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단결과 협상력이 약해져서 이득을 얻는 이들입니다. 텃밭 선거 구도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친박과 비박을 쪼개어, 내부 권력을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애국과 종북을 쪼개어 국가 통치력을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종북 딱지만 붙여도 합리적 비판과 대안이 오가는 민주적 정치가 사라지고, 독점적 통치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경제 문제조차 선을 긋는 것으로 해결합니다. 고용문제는 임금피크제로 세대 갈등을 일으켜 해결합니다. 비정규직 대책은 정규직 과보호를 지적하며, 둘 사이의 갈등을 일으켜 해결합니다. 예산 부족 문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갈등을 일으켜 해결합니다. 약속했던 무상보육은 무상급식을 포기하라며, 전업주부와 워킹맘의 갈등을 일으켜 해결합니다. 담배세 인상은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의 갈등을 일으켜 해결합니다. 통치자는 미소지을 뿐입니다.

버스와 트럭으로 차벽을 세우면 이득을 얻습니다. 차벽 안쪽의 언론은 '폭력적 시위 활개', '도심 마비, 수험생 발동동 굴러', '외국인 관광객 공포'를 보도합니다. 차벽 바깥쪽의 언론은 '마구잡이로 물대포 쏘는 경찰', '폭력 과잉 진압', '분노한 민중'을 보도합니다. 차벽의 높이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을 만큼이면 충분합니다. 사람들은 더 매서운 창날을 휘두르게 됩니다. 게임이론 연구자들은 이것을 "분열시켜 지배하기 전략" (divide and conquer strategy) 이라 부릅니다. 오랜 인류 역사에서 권력 유지를 위해 통치자들이 즐겨 사용해 온 전략입니다.

송곳같은 사람들과 깨어있는 시민들의 연대

경제학자들은 연대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선물교환 게임이라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고용주가 먼저 임금을 지불하고, 이어서 노동자는 노동 수준을 결정합니다. 교과서 속 경제적 인간이 펼치는 게임의 결과는 단순합니다. 이미 임금을 받았기 때문에, 노동자는 힘든 노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합리적으로 예측하는 고용주는 아무런 임금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적정 임금을 제시하고 적정 노력으로 보답합니다. 마치 선물을 주고 받는 것과 같아 선물교환 게임이라 불립니다.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통해서 선물을 주고받는 이유를 연구해 왔습니다. 간단합니다. 우리 인간은 호혜적(reciprocal)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물을 받으면, 선물을 돌려주는 사람들입니다.

분명 하나쯤 뚫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차별의 벽을 뚫고 넘어서는 송곳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용기를 내는 이유는 우리가 깨어있는 시민의식을 가지고 보답을 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분열시켜 지배하는 통치방식에 어떻게 맞서야 합니까. 우울하게도 뾰족한 묘수가 없어 보입니다. 경제학의 대답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곳곳에서 송곳같은 사람들과 깨어있는 시민들이 연대해야 합니다. 선물교환 게임에서 받는 이가 주는 이에게 말을 건넬 수 있으면, 주고 받는 선물의 양은 모두 증가합니다. 주변의 송곳같은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 주십시오. 힘내요, 세상의 모든 송곳들!

송곳을 방영하는 JTBC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시겠지만, 연말이면 CNN 방송사는 CNN Heroes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합니다. 열 명의 영웅을 선정하여 그들의 삶을 소개하고, 시상식을 갖습니다. JTBC가 매년 한국의 송곳들 열 명을 선정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을 것 같아 제안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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