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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 교과서'보다 더 중요한 일들

'국정 역사 교과서' 파동에 온 나라가 편치 않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소신이다. 작년 신년사에 '통일은 대박'이라는 구호를 내걸더니 일전에는 바른 역사관 없는 통일은 북한이 지배하는 대재앙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대통령 국정 철학의 사상적 기반으로 보인다. 한 정치 지도자의 개인적 소신을 넘어 나라의 장래에 큰 숙제를 던졌다. 그런가 하면 기껏해야 2년 남짓 후 물러날 '선거의 여왕'이 마지막 선거를 겨냥해 던진 승부수 정도로 비치기도 한다.

  • 안경환
  • 입력 2015.11.16 12:01
  • 수정 2016.11.16 14:12
ⓒ연합뉴스

'국정 역사 교과서' 파동에 온 나라가 편치 않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소신이다. 작년 신년사에 '통일은 대박'이라는 구호를 내걸더니 일전에는 바른 역사관 없는 통일은 북한이 지배하는 대재앙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대통령 국정 철학의 사상적 기반으로 보인다. 한 정치 지도자의 개인적 소신을 넘어 나라의 장래에 큰 숙제를 던졌다. 그런가 하면 기껏해야 2년 남짓 후 물러날 '선거의 여왕'이 마지막 선거를 겨냥해 던진 승부수 정도로 비치기도 한다.

제1 야당의 대표는 즉시 '전쟁'을 선포하고 국민의 동참을 강하게 촉구했지만 반응은 기대만큼 뜨겁지 않다. 우선 전쟁에 나서는 아군 지도부의 면면이 초라하고 대오도 더없이 엉성하다. 언론은 연일 요란스럽지만 정작 대중의 시청률은 낮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집회도 이에 맞서는 지지 집회도 열기가 미지근하다. 온라인 설전(舌戰)도 그다지 치열하지 않다. 어차피 단판 승부가 날 일은 아니다. 내년 4월 총선에 걸릴 여러 정치 의제 중 하나일 뿐이다. 감히 예측건대 내후년 대통령 선거에는 더 이상 비중 있는 논제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정상'인지 정치적 선택이라면 모르되 정답을 강요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이미 그렇게 단조로운 사회가 아니다. 바깥세상도 그렇다. 국민도 달라졌다. 젊은 세대는 더욱더 그렇다. 어느 사회에서나 세대 사이에 의식의 격차가 있기 마련이다. 세계사에 유례 드문 급속한 성장, 발전, 변화를 이룬 대한민국의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앞선 세대가 피 흘려 지키고 공들여 세운 나라를 '헬조선' '한국이 싫어서'라며 비하하는 후세인들이다. 군 복무를 피해 외국 국적을 선택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해도 내심 병역의무를 기피하는 청년이 상당수다. 그런데도 모병제를 거론하는 것조차 애국심 결여로 매도하는 기성세대다. 한 명문 대학에서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여학생이 학생회장으로 출마했다. 이들 세대엔 하등 이상할 것 없지만 기성세대의 눈에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세태다. 젊은이들에게는 이념보다 일상의 자유가 더욱 중요하다. 세계는 '무(無)데올로기'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한국은 여전히 '과(過)데올로기' 사회라는 냉소적 평가가 있다. 대한민국 기성세대가 경청해야 할 충고다.

국정 역사 교과서 논쟁보다 국민에게 더 중요한 일이 많다. 시민의 일상적 자유를 지키고 평등·복지의 터전을 가꾸는 일이 핵심 과제다. 북한·미국·일본·중국 사이에 절묘한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 대외 문제는 언제나 걱정거리다. 자칫하면 자유·평화·공존·다양성과 같은 새 시대의 가치가 방기될 위험이 항시 도사리고 있다. 제각기 사정이 다른 국내 정치가 불안의 원흉이다. 대외적 긴장과 대립을 통해 이득을 보는 세력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에게는 일상적 자유와 경제적 안정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나머지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공산주의의 허구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조지 오웰의 명저 '동물농장'(1945)의 명구다. '우리는 여전히 동물농장에 살고 있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 시대에 더욱 울림이 큰 경구(警句)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무엇이 되느냐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존 리드(John Reed)의 '자본주의 동물농장'(Snowball's Chance· 2002)의 패러디 구절이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대다수 청년 앞에는 아무리 '노~오력'해도 넘을 수 없는 거대 자본의 장벽이 버티고 있다. '88만원 세대'의 90퍼센트는 '장그래' 신세를 우려한다. 새삼 500년 전 토머스 모어가 염원한 '유토피아'(1516)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가 그린 이상향에는 화폐가 없다. '돈은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다. 화폐는 폐지되어야 한다. 부자는 개인적 부정뿐만 아니라 입법권까지 동원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한다.' 새삼 곱씹어야 할 경구다.

국정화만이 답이라며 일체의 타협 여지를 차단한 대통령과 여당의 태도가 아쉽고 실망스럽다. 야당의 앞길은 더 막막해 보인다. 본질적인 체질 개선을 이루지 않고는 수권 정당, 대안 정당이 될 까닭이 없다. 한 주 만에 거리 대신 국회로 되돌아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세 세대에 희망을 주는 정치를 보여주기 간절히 바란다.

* 이 글은 조선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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