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평양의 추억 | 평양에 필요한 변화

"평양의 주거만족도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만 하는 것은 물론 자유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장소든 쇼핑을 갈 수 있어야 하고, 어떤 음식점이든 가서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외국인인 우리가 다른 주민들과 교류하는 것도 허용되어야만 한다. 평양에서 인종차별이 없어져야 한다고 지적해야 하는 현실도 어처구니없다. 외국인은 오랫동안 평양에 살았고 한국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더라도 여전히 대부분의 장소에는 갈 수 없다."

  • NK News
  • 입력 2015.11.18 12:48
  • 수정 2016.11.18 14:12

과거 북한에 거주한 이력이 있거나 현재 거주하고 있는 7명, 평양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은?

평양은 북한의 가장 큰 도시이며 북한 정부와 정치의 중심지로 북한 다른 곳들과는 다르다. 우선 북한의 다른 곳들과 비교했을 때 평양에 거주하는 북한 사람들은 부유하고 다른 어느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도 누릴 수 없는 질 높은 삶을 영위한다.

이러한 사실은 대개 정치로 환원된다. 평양은 국가에 충성을 다한 보상으로 고급 아파트와 좋은 학교, 편리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북한의 지배계층이나 노동당원들이 거주하는 도시다. 이러한 사람들이 거주하도록 지어진 공간이 평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양에는 여전히 바로잡아야 할 것이 매우 많다. 또 북한 대표 도시로서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평양 주민들도 북한에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피해갈 수 없다. 평양 주민들이 다른 지역 주민들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그 어떤 징후도 없으며 평양 역시 정전과 사회기반시설 미비로 문제를 겪고 있다. 여러모로 평양이 다른 지역들과 완전히 다른 것만은 아니다.

NK News 전문가 인터뷰 시리즈 일곱 번째 순서로 과거 평양에 거주했거나 현재 거주하고 있는 7명의 외국인, 탈북자들과 평양에 어떠한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신뢰할 수 없는 정권에서부터 일상에 대한 참기 힘든 수준의 국가 통제 에 이르기까지 북한 전역에서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언급하였다. 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 가난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불평처럼 휴대폰 서비스 확장과 음식 선택권 확대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 외교관 A: 익명을 요청한 유럽의 외교관 (평양을 떠난 지 1년도 안 되었음)
  • 알레산드로 포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했던 학생 (북한을 떠난 지 6개월도 안 되었음)
  • 대학교수: 주기 적으로 평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외국 대학 교수로, 익명을 요청함
  • 자카 파커: 평양에 거주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주민 (사진작가)
  • 외교관 B: 익명을 요청한 유럽의 고위급 외교관 (평양을 떠난 지 1년도 안 되었음)
  • 제임스 호어: 2001년에서 2002년 사이에 평양에 영국 대사관을 세운 고위급 외교관
  • 강지민: 평양에 거주했던 주민으로 현재 NK News의 '북한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코너 기고자 (2005년에 평양을 떠남)

인종차별은 외국인과 북한 주민들이 어울리지 못하게 한다. 공공장소에서 조차도 인종차별이 있다 ㅣNK News

"만약 평양에서의 생활과 관련해 당신이 한 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꼽겠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외교관 A

굉장히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평양 주민들을 위해서 변화시켜야 하는 것들이 많다. 우리들은 적어도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고 다른 매체에 접근할 수도 있다. 쇼핑을 하러 베이징 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갈 수 있다. 또 대부분 침체된 평양의 분위기와 북한 체제 하의 삶 속에서도 쉴 수 있다. 평양의 주거만족도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만 하는 것은 물론 자유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장소든 쇼핑을 갈 수 있어야 하고, 어떤 음식점이든 가서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외국인인 우리가 다른 주민들과 교류하는 것도 허용되어야만 한다.

평양에서 인종차별이 없어져야 한다고 지적해야 하는 현실도 어처구니없다. 외국인은 오랫동안 평양에 살았고 한국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더라도 여전히 대부분의 장소에는 갈 수 없다. 심지어 계속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해도 이 사실은 당신을 화나게 할 것이다.

평양에서의 삶에서 물론 사소한 귀찮은 일들도 있다. 무선인터넷이 없는 점, 지나치게 열성적인 교통경찰, 선전 행사를 위해 계속 도로를 막는 행위, 우유와 여러 가지 기본적인 물품조차 공급이 지속적으로 되지 않는 점 등이다.

알레산드로 포드 (Alessandro Ford)

나는 평양에서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없다는 점을 바꾸고 싶다. 이것은 하찮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평양은 거주자가 3백만 명이 넘는 대도시이다. 셀 수 없이 많은 공원들, 몇 백 개의 기념비들이 있고, 놀라운 장소들이 있다. 그러나 나와 같은 외국인 학생들부터 대사관에 있는 사람들, 비정부기구(NGO) 직원들까지 우리는 모두 평양에서 제한된 곳만 접근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고 싶었던 곳이 어디든 갈 수 없었다. 원하는 때에 갈 수도 없었다. 심지어 평양에 거주한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조차 일주일에 몇 번씩 긴 산책을 하면서도 여전히 평양의 일부분만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모란봉 공원에 갔다가 소풍 나온 가족들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놀았고 노인들은 함께 장기를 두고 있었다. 이 광경은 매우 멋졌지만 진귀한 풍경 이었다. 이러한 일상적인 풍경을 목격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 서양 사람들은 드물게 이러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평양은 가끔 정말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시원한 산들바람으로 더위의 기세가 한 풀 꺾였을 때 그늘 아래에서 걸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면 평화로운 감정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은 항상 당장 되돌아가라는 북한 친구들의 간청으로 사라졌다.

마음껏 돌아다닐 자유는 평양에 있는 공원들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기회라는 측면을 차치하더라도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 자유는 북한과 연관된, 미지로 인한 두려움을 사라지도록 할 것이며, 북한 관광 산업 규제를 철폐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될 것이다. 평양 사람들은 서구인들을 보는 일에 익숙해질 것이고 결국 서양인들도 평양의 진짜 모습을 보기 시작할 것이다. 북한이 세상에 문을 열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상호교류를 통해 가능하다. 그리고 엄격한 체계에 융통성을 더하는 것은 북한과 다른 나라들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다.

대학 교수

평양에서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이 도시에 더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하루 종일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끌어오겠다.

평양에서 전력 부족 상황은 지난 몇 년 동안 확실히 개선되었다. 하지만 농촌 지역은 어떤지, 시골 거주민들은 전력부족에 얼마나 영향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평양을 얼마나 개선시킬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어야 하는 곳은 평양 바깥 지역이다. 평양에서 시급하게 다뤄져야 할 필요성이 느껴지는 큰 문제들은 없다.

휴대폰이 없고 사람들이 다른 이웃들, 친구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했던 시절인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상상해 보자. 평양의 삶은 마치 1980년대와 같이 느껴진다. 또 이는 평양이 거주하기에 매력적인 장소인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평양에서 없앨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도시 곳곳에 있는 선전물들을 없애고 싶다. 지금으로서는 당연히 비현실적인 꿈이지만, 마침내 통일이 되었을 때 어느 날 현실이 될 것이다.

자카 파커 (Jaka Parker)

만약 평양에서의 삶에 대해 한 가지 바꿀 수 있다면, 평양 시민들이 좀 더 쉽게 외국인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시사 이슈나 과학 등 북한 밖의 세상도 소개해주고 싶다.

나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면서 나를 환영해 주던 평양 주민들과 종종 짧게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야기를 나눌 때 다소 마음을 닫고 이야기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들이 평양에서의 삶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외교관 B

평양에서 꼭 일어나야만 하는 중요한 일 딱 한 가지가 있다면, 70년 동안의 통치와 이 정권을 끝낼 수 있는 완전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하는 무언가이다. 이것이 수반할 것들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1989-1990년 구소련권 국가들에서 일어난 일과 비슷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게 될 것인지 그리고 만약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난다면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예견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러한 변화는 북한 주민 스스로가 이 변화를 주도할 때에만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북한과 같은 상황이 유지된다면 앞으로도 악순환이 수십년은 지속될 것이다.

제임스 호어 (James Hoare)

내가 한국어를 좀 더 배웠다면 북한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는 기회가 열렸을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는, 북한 역사와 어떻게 북한이 이 역사를 가르치는지에 대해 아는 것을 포함해 한국사를 상당히 잘 아는 것이 유용한 자산이었다.

더 오래 평양에 거주하고 사람들과 더 친밀하게 알고 지냈다면 좋았겠으나 불가능 했다. 당시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60세에 은퇴해야 했다.

평양에 더 머무는 일이 관계 개선을 보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부터 협력 대신 대립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는 더 나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강지민

평양에서의 삶에서 당신이 바꿀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도 없다. 당신은 정부가 배정해준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만 한다. 당신이 이 규칙을 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일반 북한 주민들은 그들이 배정받은 기관에서 음식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 개인 삶에 대한 모든 것은 정부가 감시한다. 그러나 북한 경제가 붕괴 되었을 때, 북한 사람들은 뇌물을 주면서 직업을 바꾸거나 더 나은 아파트로 옮길 수 있었다.

이 글을 쓴 올리버 호담(Oliver Hotham)은 현재 프리랜서로 NK News에 기고하고 있으며, 과거 Sunday Times와 politics.co.uk에서 근무하였습니다. 박현비가 번역했으며 메인 이미지의 출처는 NK News입니다. 원문은 이곳에서 읽을 수 있으며, 이어지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탈북 전문가들의 답변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NK News 한국어판에 게재된 글입니다.

* 페이스북트위터에서 NK News 한국어판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북한 #평양 #NK News #NK 뉴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