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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와 대학생, 우리 안의 색깔론을 경계한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우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미래 세대와 교육을 위해서라고 말하면 순수하고, 정부의 잘못을 중지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하면 불순한가. 구분할 수 있는 경계는 어디부터인가. 그리고 누구까지를 순수한 반대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장 2017년부터 중고생들의 손에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쥐어지리란 사실이다.

  • 이태연
  • 입력 2015.11.12 10:49
  • 수정 2016.11.12 14:12
ⓒ연합뉴스

청년·학생들이 분노하고 있다.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정책 때문이다. 10월 31일에는 천여명의 대학생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도 역사교과서를 한번쯤은 화제로 삼는다. 사회적인 문제에 있어서 20대의 의견이 전국적인 흐름으로 발전해가는 경험은 우리 세대에는 낯설고, 또한 고무적인 일이다. 저마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맥락은 다양하지만 다들 본능적으로 '불통의 정부' 대 '무시당하는 우리'의 구도를 인식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의 문제의식이 생겨난다. '우리'란 과연 누구인가?

또다시 등장한 색깔론

최근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국정화 반대서명을 진행한 대학들을 찾아다니면서 맞불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실소를 자아냈다. 서울대에서 진행한 역사학대회에서는 정체모를 학부모단체가 캠퍼스에 난입하여 학생들을 가리켜 전교조에 세뇌당했다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야만이 횡행하는 시대에 뱃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거북함을 다들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일부 극우세력에 한정된 문제도 아니다. 현행 교과서의 99퍼센트가 좌편향이라느니, 일부 좌편향 교사들이 학생들을 선동한다느니, 국정화 반대운동은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느니 운운하는 발언이 정부와 여당의 고위 책임자 입에서 거침없이 나온다. 이러한 논리를 가리켜 '색깔론'이라고 부른다. 비판적인 목소리를 봉쇄하고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사회적 모순이 터져나올 때마다 색깔론은 톡톡히 효과를 자랑한다. 세월호참사 직후에는 국민 모두가 유가족들과 함께 애통해했다. 그러나 시신수습과 진상규명에 대해 유가족이 목소리를 내고 경찰과 충돌을 빚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사람들은 유가족의 '순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단식을 진행한 유가족이 노동조합원이었다더라, 집회규모가 커지면 전문시위꾼이 등장해서 사람들을 선동한다더라...... 지저분한 정치싸움으로 번졌다는 논리가 힘을 얻자 세월호를 언급하는 것이 어쩐지 거북스러워졌다. 순수한 유가족인가 불순한 유가족인가로 문제의 초점이 이동했다. 진상규명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해 질문해야 할 시기였음에도 말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교과서 국정화 사태를 역사학계, 교육계에 대한 정치권의 개입으로 규정짓는 것은 물론 옳은 이야기다. 문제는 정치와 분리시켜 교과서 문제를 가져가고자 할 때 반드시 어떤 장벽이 생긴다는 점이다. 학문과 교육의 독립성을 결연하게 주장하는 것은 쉽다. 외부인은 빠지고 연구자와 교육자의 손에 맡기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러나 독립성, 순수성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것은 양날의 칼이 된다. 현 정부에서 순수한 국민과 불순한 국민을 구분짓는 논리와 원리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국정화에 반대하는 '우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미래 세대와 교육을 위해서라고 말하면 순수하고, 정부의 잘못을 중지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하면 불순한가. 구분할 수 있는 경계는 어디부터인가. 그리고 누구까지를 순수한 반대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장 2017년부터 중고생들의 손에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쥐어지리란 사실이다. 정부와 갈등하지 않으면서 국정화 반대의 목소리를 내자고 한다면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행정적인 절차는 이미 차근차근 진행되었고, 사회 각계의 비판의견은 의견으로만 남을 것이다.

n포 세대, 헬조선, 금수저/흙수저...... 현재의 한국사회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들이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정서는 무력감이다. 불편하고 부조리하지만 내가 나서서 바꾸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어떤 질서가 돌아간다. 언제부터인가 정부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되었고 정치를 대화 소재로 삼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우리에게 정치란 곧 투표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데 국한된다. 선거와 선거 사이의 기간은 정치인들에게 정치를 위임하는 기간으로 받아들여진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근래 어떤 사회문제보다 높은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의 위기인 동시에 우리의 인식에 대한 도전이다. '나'와 '정치'를 분리하고 '순수한 문제제기'와 '정치적 싸움'을 분리하는 인식에 균열을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각자의 밀실에서 맴도는 비판의 목소리를 광장으로 가져와야 한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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