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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분유의 추억

케냐에 다녀와서 내가 행복했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피부가 하얀 이가 피부가 검은 이들이 사는 가난한 곳에 잠시 머물다가 가지고 오는 흔한 감상 따위로 취급할 때가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나의 그 긍정적인 '감상'을 현실을 왜곡하는 순진함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꼭 틀린 것은 아니다. 사실 내가 만난 아이들의 환경은 정말 빈곤하고 빈곤하고 또 빈곤하다. 빈곤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 김태은
  • 입력 2015.11.11 10:45
  • 수정 2016.11.11 14:12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에는 많은 공립 초등학교 아이들이 하나둘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손에 손을 잡고 길을 건너기도 하고, 약간은 비틀거리면서 기찻길을 건너서, 몇 개의 언덕을 지나서, 흙길 끝에 이어지는 집을 향해서 걸어간다.

내가 별 생각 없이 시작했던 동네 아이들의 방과 후 교실은 어떤 집의 좁은 흙바닥이 교실이었다. 멀리서 내가 걸어오는 것을 본 아이들은 미리 나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집에 가방을 던져놓고 달려오기도 하는데, 모두 다 떨어진 옷이지만 그런 옷이 차마 가리지 못하는 하나같이 맑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자동차, 물고기, 기차, 집, 비행기 등 오늘 색칠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나는 종이 위에 싸인펜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그려주었다. 그리고 들고 다니기가 버거워서 한 집에 맡겨두기 시작한 색연필 주머니를 꺼내주면 아이들은 하나씩 다 부러진 색연필을 잡고 열심히 색칠을 시작했다.

십수 명의 아이들이 색칠을 다 하고 또 내 옆에 모여드는 시간에는 내가 공부하는 스와힐리어 동화를 꺼내서 읽어주었는데, 읽어주는 사람은 나였지만, 그 시간 동안에는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 나의 선생이었다. 내가 더듬거리는 부분에서는 같이 읽어주고, 또 내가 되물으면 또박또박 대답을 해주었다. 또 한편으로는 동화라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재미있어서 다시 읽어달라고 바닥에 쭈그린 내 다리에 작은 손을 올리며 부탁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아이들이 사는 동네는 나이로비 북서쪽 맨 끄트머리에 있었는데, 도시에 붙어 있는 시골의 형국이라 농촌지역사회를 지탱하는 면면도 살펴볼 수 있었다. 일을 하러 가지 않는 엄마들은 이웃의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챙기는 그 사회에서 아이들은 국어인 스와힐리어보다 공동체의 언어를 더 유창하게 말했다. 나이로비에 있는 동안 나는 이 아이들과 비슷하게 가난한 아이들을 다른 공간에서도 만나곤 했었는데, 어떤 형식으로든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동네의 아이들은 가지기 어려운 정서적인 안정감을 이 작은 마을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었다. 울거나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챙기는 큰 아이들. 작은 아이들보다도 아주 조금 더 클 뿐인데 동생뻘이라면 늘 들쳐 업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아이들.

하루는 재활용 쓰레기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백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주워온 반쯤 남은, 유통기한이 지난 듯한 분유 봉지를 내게 내밀면서 물었다.

"타이, 이거 분유 맞니? 어느 나라에서 온 거니?"

알파벳이기는 했지만 내가 읽을 수 없는 그 언어는 아마도 어느 북유럽의 나라에서 온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는데, 그림을 봤을 때는 분유가 맞는 것 같았다. 엄마들은 그 분유 봉지를 열었고, 크고 작은 아이들은 그 앞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줄을 섰다. 그리고 작은 손 위에 분유를 한 움큼씩 받아 담아서 혀로 살살 핥으면서 먹었다. 작고 까만 얼굴들 위로 가루들이 펄펄 날렸다. 맛이 달콤했는지, 얻기 힘든 간식을 먹어서 그랬는지 아이들은 흥에 겨워 그 가루가 묻은 얼굴로 노래를 하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쭈그리고 앉아 있던 내 눈 앞에 아이들의 웃음과 율동과 분유가루가 동화책의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때 나는 가방 속에 우연히 가지고 있던 카메라에 대한 생각을 몇 초 정도 했는데, 결국 꺼내지 않았다. 그 분유가루가 묻은 얼굴들을 카메라 대신 내 마음에 담고 싶었다.

그런 아이들을 마음에 담고 케냐에 다녀와서 내가 행복했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피부가 하얀 이가 피부가 검은 이들이 사는 가난한 곳에 잠시 머물다가 가지고 오는 흔한 감상 따위로 취급할 때가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나의 그 긍정적인 '감상'을 현실을 왜곡하는 순진함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꼭 틀린 것은 아니다. 사실 내가 만난 아이들의 환경은 정말 빈곤하고 빈곤하고 또 빈곤하다. 빈곤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 아이들의 정서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에너지를 보면서 나는 경제적인 가난을 보는 일반적인 시선이 얼마나 치명적인 현실왜곡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가진 것이 없어 보이는 그 아이들이 가진 것이 또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아이들이 가진 것을 보지 못하는 세상은 또 얼마나 무례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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