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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러드, 이보다 유쾌할 수 없다

혹자는 '이런 배우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을까?' 궁금하겠지만 사실 폴 러드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할리우드에서 활동해온 배우였다. 그렇다고 그가 변변찮은 무명 시절을 견딘 불운한 배우였던 건 아니다. 다만 그는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되레 뻔뻔하게 즐기는 코미디 배우로서 오랜 경력을 쌓아왔다.

  • 민용준
  • 입력 2015.11.11 12:57
  • 수정 2016.11.11 14:12

폴 러드에게 있어서 앤트맨 수트를 입는다는 건 새로운 도전이자 설레는 경험이었다. 동시에 이 또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앤트맨 수트도, 영화도 아니었다.

마블 스튜디오의 총제작자인 케빈 파이기는 <앤트맨>(2015)에 폴 러드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트를 입고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가 하찮은 사기꾼 출신인데, 그가 폴 러드 같은 사람이라고 해보자. 그는 다른 사람의 집에 침입하는 등 다소 불미스러운 행동을 해도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고, 당신이 응원할 만한 사람이기에 그의 구원을 만족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앤트맨>을 관람했거나 관람하게 된다면 이 의견에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연기한 <앤트맨>의 스콧 랭은 케빈 파이기의 말처럼 응원할 만한 매력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앤트맨>의 스콧 랭은 마블 코믹스의 영화적 세계관을 의미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히어로들 가운데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크리스 프랫)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 유머 감각이 차고 넘치는 캐릭터다. 동시에 MCU 안에서 유일하게 부성애를 지닌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앤트맨>은 폴 러드에게 개인적으로 진지하고 긍정적인 의미를 남긴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내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을 거라는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다. 내 딸은 다섯 살이라 아마 별 관심이 없을 거 같은데 열 살짜리 아들은 재미있게 볼 거다. 아이들이 촬영장에 온 적이 있는데 아들이 수트와 헬멧을 보고 정신을 못 차렸다. 정말 멋진 일이라 생각했다고 하더라. 아들과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볼 거다. 정말 좋을 것 같다." 이건 폴 러드가 아니라 <앤트맨> 속의 스콧 랭이 하는 대사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케빈 파이기가 보는 눈이 있었단 말이다.

혹자는 '이런 배우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을까?' 궁금하겠지만 사실 폴 러드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할리우드에서 활동해온 배우였다. 그렇다고 그가 변변찮은 무명 시절을 견딘 불운한 배우였던 건 아니다. 다만 그는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되레 뻔뻔하게 즐기는 코미디 배우로서 오랜 경력을 쌓아왔다. <앤트맨>의 캐스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앵커맨>(2004)은 웰 페럴과 스티븐 카렐이 출연하는 코미디물이다. 이미 두 배우의 출연만으로도 성격이 명확하게 보이는 이 코미디물에서 폴 러드는 예측불허의 얼간이 짓을 일삼는 방송뉴스팀 직원으로 등장한다. 큼지막한 콧수염까지 붙인 채로 등장한다. 진지함이라곤 1g조차 없어 보이는 <앵커맨>의 폴 러드는 <앤트맨>의 폴 러드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면서도 종종 닮았다. <앤트맨>의 스콧 랭은 언제나 긍정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인물이다. 무모하게 여겨지는 상황에서도 최선의 방향을 찾아 달려나가고 백치미 돋는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진정시키는 힘이 있다. <앤트맨>이 기존의 마블 히어로물들과 달리 가족드라마적인 안정감을 선사하는 것도 폴 러드라는 배우가 품은 그런 자질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앵커맨>의 제작자였던 주드 아패토우의 연출작인 <40살까지 못해본 남자>(2007)와 <사고친 후에>(2007)에서도 폴 러드는 선하지만 어딘가 덜 떨어진 인상의 남자들과 어울리며 하향평준화된 삶을 마냥 즐기듯 전전한다. 비록 한가운데 서서 주목을 독점하는 주연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 주변부에서 타인의 삶을 진지하게 경청하면서도 백치미 넘치는 태도로 위로를 전한다. 심지어 <아워 이디엇 브라더>(2011)에선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찰에게 천진난만한 태도로 대마를 한 움큼 쥐어주다 감옥에 수감돼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물을 연기한다. 인간적인 공감대를 쥐어주는 것이 그에겐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준이다. "캐릭터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앤트맨>의 스콧 랭 역시 슈퍼히어로로서 보여주는 기상천외한 활약상만큼이나 공감할만한 캐릭터의 마음 속에 담긴 진심을 전한다는 점에서 깊은 매력이 느껴진다. "정말 멋진 격투신이나 화려한 시각효과가 눈엔 즐거울지 몰라도 깊이는 떨어진다. 캐릭터들과 공감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멋진 액션신은 물론 격투신들은 정말 최고다. 이전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을 거다. 일부 기술은 최초로 사용된 기법이기도 하고, 정말 획기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기억했으면 하는 것은 캐릭터들과 그들간의 관계다."

물론 슈퍼히어로가 되는 과정이 그저 마음을 다스리는 것만으로 가능했을 리가. 하지만 다채로운 고생문을 열고 닫았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에 비해 폴 러드의 답변은 일관되게 유쾌한 톤을 유지한다. "촬영하는 것은 매우 즐거웠다. 솔직히 말하면 싸우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싸울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트레이닝과 액션신들을 준비하는 것 자체로도 정말 즐거웠다." 다만 유일하게 불편한 건 와이어의 안장이었다. "원치 않는 곳으로 파고들어서. 그걸 빼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재미있더라. 공중에 매달려서 '이게 내 일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죠'라고 말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 또한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서 입는 데에만 30분의 시간이 소요되는 디테일한 수트를 입고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의상을 입게 되면 캐릭터 표현에 굉장한 도움이 된다. 서는 자세부터 다르고 생각하는 것마저 달라진다. 처음볼 땐 너무 좋아서 아찔했다. 헬맷을 처음 써봤을 땐 어린 시절에 봤던 스톰트루퍼 헬맷이 생각났다. 만약 어린 나이로 돌아가면 많은 그림을 그렸을 거다."

한편 <앤트맨>에서 폴 러드는 단순히 연기에만 참여한 것이 아니다. <앵커맨>의 연출을 맡았던 감독 아담 맥케이와 함께 시나리오 각본에 참여했다. 사실 폴 러드에겐 이미 영화 기획과 각본, 제작 경력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앤트맨>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런 작업은 항상 저예산 코미디 작품에서 경험했던 거다. 이런 스케일에서는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그에겐 당연히 의미가 있는 도전이었다. "각본에 참여하면 모든 캐릭터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항상 캐릭터의 의도를 생각하고 내 선택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처음보다 스토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덕분에 우린 이토록 유쾌한 앤트맨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우리가 만드는 건 영화일 뿐이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웃는 거다. 정말 진심으로 웃는 일 말이다." 폴 러드의 말을 따르자면 그에게 있어서 영화란 인생의 낙을 찾는 여정에 가깝다. 그러니까 웃음을 찾아가기 위해 건설하는 기차 레일과도 같은 것이랄까. 참고로 폴 러드는 계약상 앤트맨 수트를 세 번 이상 입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토록 유쾌한 히어로를 볼 기회가 최소한 두 번 이상 더 남아있단 말이다. 이보다 좋을 수 있겠는가.

(beyond 매거진에 게재된 기사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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