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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어린왕자', 일본어판 번역 오류 그대로 따라"

ⓒ연합뉴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국내에서 출간된 책만 100종이 넘는 전 세계적인 인기 도서다. 또 애니메이션 '어린왕자'가 다음 달 국내 개봉을 앞둔 가운데 '어린왕자'의 새 번역본들이 속속들이 발간되고 있다.

'어린왕자'의 국내 번역본들이 상당수 일본어판의 번역 오류를 답습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불문학자 송태효 어린왕자 인문학당 대표는 유명 출판사들이 출간한 '어린왕자' 번역본들이 상당수 일본어판을 번역한 중역(重譯)이라며 일본어판의 오류가 수정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고 8일 주장했다.

송 대표에 따르면 '어린왕자'는 1943년 뉴욕의 레이날 앤 히치콕(Reynal & Hitchcock) 출판사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로 처음 발간했다. 책은 이후 여러 판본이 난립했지만 1999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가 내놓은 판본으로 초판과 가장 유사하게 복원됐다.

일본에서는 1953년 이와나미 출판사가 최초로 번역본을 출간했다. 하지만 이 일본어판은 숫양 표기나 해가 지는 횟수 등에 많은 오류가 있었다. 문제는 국내에서 이 일본어판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바람에 '어린왕자'의 번역에 오류가 생겼다는 것이 송 대표의 설명이다.

송 대표에 따르면 일본어 중역의 흔적은 현재 다수 번역본에서 확인된다.

먼저 일본어판은 2장에 나오는 거세하지 않은 숫양, 즉 'belier'를 염소로 번역하는 오류를 범했다.

송 대표는 이 같은 오류가 문학동네가 출간한 김화영 교수의 번역본과 전성자 성신여대 명예교수가 옮긴 '어린왕자'에서 확인된다고 밝혔다. 또 2012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재출간된 문학평론가 김현의 번역본도 숫양을 염소로 잘못 표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 대표는 "프랑스의 일본어 번역을 보고 책을 썼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며 "황현산의 '어린왕자'의 경우 염소로 표기했다가 곧 숫양으로 고쳤지만 일부 번역본에서는 아직까지 수정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오류는 6장 어린왕자가 석양을 보는 장면에서 나온다. 여기서 등장하는 해가 지는 횟수는 여러 판본을 거쳐 44번으로 확립됐지만 일본어판은 이를 43번으로 표기했다. 문예출판사의 전성자 번역본과 2006년 출간된 인디고 출판사의 '어린왕자'는 아직까지 해가 지는 횟수를 43번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 송 대표의 설명이다.

마지막은 10장 'asteroide'의 표기다. 'asteroide'는 별을 뜻하는 소행성으로 해석되지만 일본어판은 이를 소혹성으로 번역했다. 소혹성 표현은 지금도 몇몇 국내 번역본에서 발견된다고 송 대표는 강조했다.

송 대표는 "이런 모든 문제가 일본어 중역에서 출발했다. 번역의 고질적인 문제다"라며 "번역자라면 불어 원본이나 수정본을 계속해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런 과정이 생략됐다. 이전 일본어판에 근거해 오역이 되풀이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어 번역을 중역하는 관행을 버려야 한다"며 "이는 학문적 친일 사대주의와 뭐가 다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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