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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작된 여성 슈퍼히어로의 시대

  • 김병철
  • 입력 2015.11.06 16:46
  • 수정 2015.11.06 16:47
ⓒCBS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슈퍼 영웅의 세계라고 해서 성차별적 현실이 피해 가지는 않는다. 슈퍼맨, 배트맨, 아이언맨… 온통 ‘맨’들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여성 슈퍼히어로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귀하고 반가운 일이다. 시비에스(CBS)의 신작 드라마 <슈퍼걸>이 방영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은 이유다. 제목에서부터 짐작되듯이 <슈퍼걸>은 슈퍼 영웅물의 대명사 <슈퍼맨> 시리즈의 스핀오프 격이자 그 사촌인 여성 영웅의 이야기다.

24년 전 지구로 보내진 아기 칼엘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크립톤 행성을 떠난 사촌 누나 카라 조엘은 항해 도중 시간이 멈추는 팬텀 존에 빨려드는 바람에 한참 늦게 지구에 도착한다. 그사이 어린 칼엘은 부쩍 성장해 우주에서 가장 강한 영웅 슈퍼맨이 되어 활약중이고, 아직 소녀인 카라는 그의 도움을 받아 양부모 밑에서 카라 댄버스(멀리사 베노이스트)라는 이름의 평범한 여성으로 자라게 된다.

수십년의 세월과 우주를 넘나들며 전사를 설명하는 카라의 내레이션이 끝나고 난 뒤의 <슈퍼걸>은 마치 전문직 성장드라마 같은 도입부로 시작된다. 사촌 동생과 유사하게 언론사에서 일하는 카라는 하늘을 나는 법 따위는 잊어버린 지 오래고, 깐깐하고 능력있는 ‘슈퍼우먼’ 직장 상사 캣 그랜트(칼리스타 플록하트) 아래서 매번 무능력을 확인하고 주눅들어 있는 비서로 살아간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전개가 여성 영웅 서사 부재에 대한 자의식적 설정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슈퍼맨을 능가하는 파워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지구는 또다른 영웅이 필요하지 않았다”며 ‘커피나 배달하는 신세’가 된 카라의 모습은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여성들의 현실을 대변하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카라가 마침내 처음으로 영웅적 활약을 펼친 뒤 “여자 영웅이라니. 내 딸아이가 커서 닮고 싶은 모델이 생긴 거네”라며 기뻐하던 한 중년 여성의 발언이나, 언론에서 붙여준 ‘슈퍼걸’이라는 호칭에 대해 ‘슈퍼우먼’이 더 낫지 않으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카라의 말도 의미심장하다.

그렇게 <슈퍼걸> 첫회는 이 작품의 정체성이 여성들의 주체적 이야기이자, 여성 영웅의 탄생기라는 사실을 내내 힘주어 선언한다. 카라를 돕는 양언니 알렉스(카일러 리)의 또다른 영웅적 활약과 뜨거운 자매애, 카라의 용기와 힘의 근원으로 그려지는 어머니의 묵직한 존재감, 그리고 ‘악의 보스’마저 여성이라는 점 등 실제로도 여성 주도적인 설정으로 가득 차 있다. <슈퍼걸>이 <슈퍼맨>의 단순한 여성 버전에 그치지는 않을 거라는 세세한 설정들이다.

여성 영웅 서사의 부상은 슈퍼히어로 세계의 최근 트렌드이기도 하다. 마블 코믹스가 <어벤져스> 여성판을 예고한 것이나 <엑스맨> 시리즈의 여성 울버린이 공개된 것도 이 같은 흐름 안에 있다. 아직은 남성 영웅의 이야기를 여성 버전으로 다시 쓰는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지구에 뒤늦게 도착한 대신 신기술에 기대며 빠르게 성장하는 카라처럼, 이제부터라도 더욱 빨리 성장하는 여성 영웅 서사를 기다린다.

마블이 최근 공개한 여성 울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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