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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발견' (2) 원조밀물식당 : 당신이 먹었던 멍게비빔밥은 가짜다

  • 원성윤
  • 입력 2015.11.05 11:13
  • 수정 2015.11.05 11:52

전국 팔도의 착한 식당을 소개하는 《식당의 발견》 시리즈 그 두 번째 편(사진 한상무, 글 원성윤)이다. 제주도의 식당을 소개한 전편에 이어 통영, 진주, 남해, 사천의 식당을 찾았다. 굵직굵직한 관광도시에 밀려, 평범한 시, 군으로 치부되곤 했지만 하나 하나가 전통과 역사가 깃든 유서 깊은 지역이다. 조선 해군의 중심 도시이자, 충무공의 넋이 깃든 통영. 경남 행정의 중심지이자 교육, 교통의 요지인 진주. 6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남해. 그리고 우리에게 삼천포로 더 잘 알려진 사천까지. 『식당의 발견: 통영, 진주, 남해, 사천 편』에서는 해당 지역의 대표 식자재를 다루는 식당들을 소개한다. 책 '식당의 발견'에 소개된 17곳의 식당 가운데 8곳을 선정,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연재한다.

# 당신이 먹었던 멍게비빔밥은 가짜다

해산물 섭취 3일째였기에 취재팀 모두 물려버렸다. 촬영을 위해 멍게비빔밥 2그릇만 시켰다. 그런데 그렇게 그칠 것이 아니었다. 한술을 뜨자 두 술을 자연스럽게 푸게 됐다. ‘꿀떡’하고 자꾸만 넘어갔다. 결국, 멍게비빔밥도 추가로 시켰다. 멍게, 김, 참기름, 밥 4가지가 구성의 전부인 이 오만한 멍게비빔밥에 우리의 입은 자꾸만 열렸다. 목젖은 크게 벌어졌다. 멍게는 우리를 향해 ‘내가 멍게 본연의 맛을 보여주마!’라고 웅변하는 듯했다. 거추장스러운 ‘나물’ 따윈 다 들어내 버리자 멍게의 민낯이 꽃을 틔웠다. 취재팀 5명이 5일간 다닌 음식점은 20곳이 넘었다. 상무와 성윤이 1등으로 꼽는 집은 바로 ‘원조밀물식당'이었다.

‘원조밀물식당’은 봄 도다리쑥국, 여름 갈치호박국, 겨울 물메기탕, 굴국밥 등 통영의 제철음식을 가장 정확하게 구현하고 있다. ‘메뉴가 많으면 맛집이 아니다’는 말은 여기서는 예외였다.

문득 평안도 출신인 시인 백석의 시 ‘통영2’의 구절이 귓가를 스쳤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그곳이 바로 통영이 아닌가.

# "당신 이거 안하면 죽기밖에 더하겠나?"

가족끼리 합심해 좋은 성과를 내는 식당들이 있다. 반대로 분쟁 끝에 각자의 방식으로 갈라서는 집도 있다. 안타깝게도 ‘원조밀물식당’은 후자다. 권홍선 사장은 식당에서 자매들과 함께 장사했다. 멍게비빔밥을 만들었다. 어느 날 옆구리가 너무 아팠다. 담석증이라고 했다. 동생에게 이야기했다. 수술을 받았다. 연락이 없었다. 퇴원했다. 집에 갔다. 별안간 동생은 멱살을 잡았다. 영문을 몰랐다. 입에 올리기 아픈 말들이 들렸다. 갈라서기로 했다. 마음이 아팠다. 식당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앞이 캄캄했다.

“당신이 이거 안 하면 죽기밖에 더하겠나?” 남편과 딸, 사위가 간곡하게 말했다. 숙고 끝에 식당을 새로 하기로 했다. 전화번호도, 간판도, 가게도 모두 바꾸었다. 먹고 살 수 있는 공간, 내 음식을 좋아해 주는 손님만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설상가상. 갑상선 암이 찾아왔다. 마음을 비웠다. 다행히 암은 치료됐다. 그렇게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원조밀물식당에는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 이집의 멍게가 '조금' 다른 이유

‘원조밀물식당’의 멍게는 여느 비빔밥집 멍게와는 다르다. 저온숙성 과정을 거친 멍게로 비빔밥을 만든다. 90% 이상의 집들이 멍게비빔밥을 갓 잡은 멍게를 쓴다. 여기에 새싹 나물과 초장 등을 넣어 멍게비빔밥을 만든다. 이때의 멍게는 새싹 비빔밥의 고명처럼 부속품으로 들어간다.

‘원조밀물식당'은 멍게 본연의 맛을 내기 위해 되도록 멍게 본연의 맛에 집중한다. 권홍선 사장은 통영 외곽인 산양면 여운리에 있는 한 양식장과 10년째 멍게를 거래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종의 메뉴얼이 있다. 먼저 양식장에서 씨알이 굵은 멍게 위주로 1.5톤을 산다. 멍게 80%, 정수된 바닷물 10%, 멍게의 자연 발생물 10% 비율로 20kg씩 나눠 스티로폼에 담아 냉동고에 보관한다. 이후 6~7kg씩 나뉜 멍게는 식당이 그날 쓸 분량만큼 나뉘어 식당으로 오게 된다. 이렇게 저온 숙성을 거치게 되면 멍게의 비린 맛은 사라지고, 단맛이 더욱 살아나게 된다. 최근 들어서는 이를 모방하는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멍게비빔밥에서 새싹을 걷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저온숙성을 거치지 않은 멍게는 비린 맛이 강해 비빔밥으로 만들기엔 무리다.

원조밀물식당의 '멍게 전골'

권 사장이 직접 개발한 ‘멍게 전골’은 강력추천 메뉴다. 취재팀 모두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멍게 전골은 한 숟가락을 들이키자마자 ‘아!’하는 탄성을 질러내게 하였다. 무, 양파로 육수를 낸 다음 배추, 미나리, 호박, 당근, 양파, 버섯, 소고기, 감초 등을 넣고 막간장과 된장을 넣어 국물을 끓인다. 소고기는 밑에 적당히 깔고 멍게를 샤부샤부 식으로 위에 올린다. 소고기 특유의 고소한 맛과 멍게의 향긋한 내음이 합쳐져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멍게도 전골을 해요? 애들도 먹을 수 있어요?’ 하고 물어보던 사람들도 나갈 때는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듭니다” ‘멍게전골’은 방송에도 여러 번 소개될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아직 보편화 되지는 않았다.

권 사장은 좋은 음식재료에서 최고의 음식이 나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김장 역시 해마다 800포기가 넘게 한다. 모든 반찬을 직접 담그고 있는 건 자기확신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 "4월~5월은 극성수기라 감당 안돼"

권홍선 사장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수요미식회’나 ‘집밥 백선생’ 등 요즘 요리 프로그램들을 즐겨본다. 백종원 씨 등 유명 쉐프들의 레시피를 보며 새로운 메뉴에 도입하기도 한다. 권 사장은 통영 적십자병원에서 13년간 조리사로 일했다. 요리는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솜씨가 뛰어났기에 새 식당을 개업한 지 3년 만에 금방 일어섰다. 4월말~5월초 극성수기 때는 단체손님만 100명 가까이 와서 감당이 되질 않아 옆집으로 손님을 넘길 정도다. 한 손님은 여수에서 멍게비빔밥을 먹기 위해 한 달에 네 번이나 방문했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 끌어 당기는 걸까. 통영에서 나는 싱싱한 음식재료들로 반찬을 풍성하게 채우는 식탁이 해답이다. 백조기, 볼락, 돔 등 서울에서 맛보기 힘든 비싼 생선들이 이 집 식탁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저는 우리 집에 찾아주시는 것도 고마워요. 그래서 늘 돈 생각 안 하고 손님들이 달라는 건 얼마든지 계속 갖다 드립니다."

원조밀물식당

  • 메뉴 : 멍게비빔밥 10,000원, 멍게전골(소) 30,000원
  • 통영시 항남1길 19
  • 전화번호 : 055-643-2777

책 '식당의 발견'(통영, 진주, 남해, 사천의 맛)은 전국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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