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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이 시작"

미리 계획하지 않은 귀한 만남들이 강수희 씨와 패트릭 씨의 삶을 바꿨다. "하고 싶은 걸 하는 데 많은 돈이 없어도 된다"는 것과 "뜻을 두고 있으니 연결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아서다. 또 미리 걱정하지 않는 삶을 농부들에게서 배웠다.

다큐멘터리 <자연농> 감독 강수희·패트릭 씨

어디에서든 재미있게 살기. 강수희 씨와 패트릭 라이든 씨가 잘 해 내는 일이다. 드문드문 오는 버스를 기다릴 때는 짜증내는 대신 정류장에 있는 나무에게 말을 걸고, 여행하다 몇 달 머무르는 지역에서 텃밭에 작물을 기르고 사람들을 초대해 요리를 나누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자연의 날'로 정해 가까운 공원이라도 가서 바람을 쐰다. 도시에서 자란 도시내기들은 자연농 농부들을 만나고 삶이 바뀌었다. 그들 삶의 전환점이 된 한국, 일본, 미국 농부들을 4년 동안 만난 기록을 다큐멘터리 <자연농>에 담았다.

글 \ 사진 김세진(살림이야기 편집부)

새와 벌레, 곤충도 함께하는 농사

돌아보면 <자연농>을 만드는 과정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그전엔 알지 못했던 농부들을 만나게 된 것도, 그리고 통역과 번역을 도와주는 사람을 만난 것도 계획에 없었다.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작정하고 촬영한 것도 아니다. 다만 혼자 듣기 아까워 기록한 것이 <자연농>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전문 영상장비도 없이 동영상이 지원되는 카메라로 찍었다. 첫 인연이 닿은 사람은 강원 홍천에서 자연농을 하는 최성현 씨였다.

2011년 강수희 씨는 생태·환경 관련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면서 경기 양평 두물머리 '록빠 작목반'에서 주말 텃밭을 가꾸었고 종종 친구들과 강원 홍천에서 농사짓는 최성현 씨를 찾아 일손을 돕곤 했다. 패트릭 라이든 씨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다가 1년 여 동안 세계 각국의 전철 등 도시 생활을 영상으로 기록하며 예술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 왔다가 강수희 씨 블로그에서 사진을 봤는데 인물들의 표정이 살아 있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고 연락을 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함께 2011년 10월 최성현 씨를 찾아갔다.

최성현 씨는 농약도 비료도 주지 않고 제초도 하지 않을뿐더러 땅을 갈아엎지도 않는 '자연농'을 해 오고 있다. 최성현 씨는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을 읽고 영향을 받았다. 자연의 힘에만 의지해 농사짓는 이유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사람이 더 먹으려고 비료와 농약을 뿌리는 대신 자연 그대로 두면서 새, 벌레와 작물을 나눠 먹는다. 제초제를 뿌려 땅의 미생물을 죽이지 않는다. 땅을 갈아엎으면서 그곳에 뛰어다니는 개구리나 메뚜기나 벌레를 죽이지 않는다. 대신 벌레들에게 부탁한다. "맛있게 먹어. 그런데 다 먹지 말고 남겨 줘"라고.

"우주는 우리 육안으로 보면 나와 별개라고 여기기 쉽지만 알고 보면 결국 '큰 나'예요. 분리될 수 없는 큰 나, 바깥의 나예요. 우주 안에서 지구는 기적과 같은 별이죠. 우리 현대과학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렇게 풀이 있고 물이 있고 꽃이 피고 나비가 있는 별이 없어요. 지구 안에서 살고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고 기적이죠. 저는 지구가 천국이라고 보는 사람이에요. 결국 이 일이 천국을 복원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최성현 씨와 같이 '천국을 복원하는 길'에 있는 사람들이 미국과 일본에도 있었다. 강수희 씨와 패트릭 씨는 일본 도쿠시마에 건너가 "농부인 게 더 없이 행복하다"는 81살 농부 기타 오사무 씨를 만났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연농 농부 크리스틴 리치와 자연농 농장에서 키운 채소를 수확해 그것으로 요리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나무가지 레스토랑의 데니스 리 대표를 만났다.

의도하지 않았던 만남들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마음먹고 시작할 때는 모금을 하려고 했다. 사람뿐 아니라 사람과 자연도 연결되어 있다는 이 깨달음이 경쟁 위주로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 경종을 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회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모금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많지는 않아도 내가 모아 놓은 돈이 있는데 왜 모금을 하려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강수희 씨와 패트릭 씨는 일을 그만둔 상태라 조금 불안했지만 있는 것을 쓰되 지출을 줄이고 돈이 필요하면 그때그때 노점일이라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돈이 필요할 때면 남대문에서 꽃을 사 꽃다발을 만들어 벼룩시장 등에 내놓아 용돈을 벌었다. 그렇게 쉬엄쉬엄 하느라 다큐를 만드는 데 4년이나 걸렸다.

신기하게도 그 과정에서 돕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록빠 작목반에서 만난 인연으로 카오리 츠지, 에리 도메 씨 등이 일본에서 통역을 해 주고 또 영상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함께했다. 또 영어 인터뷰에 한국어 자막을 입히는 작업 등도 돈 받지 않고 해 주겠다는 사람들이 생겼다. 영상을 시작할 때 노랗게 펼쳐진 꽃밭에서 날아다니는 나비와 소녀의 애니메이션은 박희영 씨가 만들겠다며 먼저 연락해 주어 담게 되었다.

"신기했어요. 내 뜻대로 계획한 게 아니라 모두 함께한 작업이에요. 여러 곳에서 동시에 자연농에 뜻을 두고 삶에서 그 가치를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연결이 되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미리 계획하지 않은 귀한 만남들이 강수희 씨와 패트릭 씨의 삶을 바꿨다. "하고 싶은 걸 하는 데 많은 돈이 없어도 된다"는 것과 "뜻을 두고 있으니 연결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아서다. 또 미리 걱정하지 않는 삶을 농부들에게서 배웠다.

"자연농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나?"라는 질문에 농부들은 "욕망을 줄이면 가능하다.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자연에 천적이 나타나서 질서가 유지된다. 너무 많이 먹으려고 해서 농약을 뿌리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또 "그동안 해 오던 농업은 파괴하는 방식이었다는 반성에서 자연농을 시작했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연을 덜 해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고.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을 때 비닐에 수저를 담아 주었는데 그 비닐과 끈을 가져와서 휴대전화 충전기를 넣는 주머니로 쓰고, 끈만 떼어내 수젓집을 만들 때 썼다. 수저와 빈 반찬통을 가지고 다니면서 일회용품을 덜 쓰기 시작했다. 5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변화다.

<자연농>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모두가 농사를 짓자거나, 옛날 방식대로 살자는 게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바탕에 두고 살기를 바란다. 그러면 도시에 살면서도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한 번 자연으로 산책을 가거나 일회용품을 줄이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자연농>의 영어 제목은 <파이널 스트로>다. '마지막 한오라기의 짚'이라는 뜻. 미국에서 변화하는 막바지 지점을 뜻할 때 쓰는 말이다. 나귀가 짚더미를 메고 있는데 하나를 더 올리면 무너지는 그 지점 말이다. 그렇게 무너진 다음 무언가를 새로 쌓는 어떤 지점, <자연농>을 본 사람들의 삶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다큐멘터리 <자연농> 공동체 상영 문의

올해 9월부터 <자연농>을 상영하고 있다. 강수희·패트릭 감독이 지역 책방과 텃밭 공동체 등 상영을 요청하는 곳에 찾아가 관객들과 이야기도 나눈다.

www.finalstraw.orgsuhee@finalstr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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