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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통령을 이해한다"

덕분에 역사교과서를 바꾸고 싶어 안달이 난 대통령의 마음이 이해는 간다. 고작 작은 식당 하나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는 몇 줄의 글에도 생채기가 나는데, 민주주의를 망가뜨린 독재자로 서술된 아버지를 볼 때마다 얼마나 속이 끓고 밤잠을 설쳤을까. 그러나 그와 내가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나는 네이버 댓글을 지워달라고 요청할 힘이 없고, 그는 교과서를 바꾸라고 명령할 권력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법적으로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그렇게 하고 있다.

  • 권성민
  • 입력 2015.11.05 05:02
  • 수정 2016.11.05 14:12
ⓒgettyimagesbank

작년 여름, 그러니까 회사에서 정직 처분을 받을 딱 그쯤에 아버지는 16년을 운영해 온 낚시용품점을 사양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접으셨다. 요행히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의 지인 분이 식당 건물을 하나 세우고 경영할 사람을 찾는 중이었다. 낚시업만 16년을 해 오신 아버지는 하루아침에 평생 잘 들르지도 않은 식당이란 걸 경영하게 됐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준비할 것도 배울 것도 수도 없이 많았다. 무얼 하든 대쪽같이 파고드시는 그 성격만이 유일하게 기댈 점이었다.

헌데 그 즈음 해서 집안에 예상치도 못했던 안 좋은 일이 터졌다. 가족들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라 정신이 없었다. 더불어 미처 준비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건물을 제공한 투자자는 개업을 재촉했다. 미흡하고 불안한 채로 가게 문을 열던 정확히 그 날, 큰 아들은 회사에서 정직 6개월 처분을 받아들고 왔다. 가족들이 정신이 있었을까. 천안에 내려와서 만난 집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심각해서, 나는 내 정직 처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누구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로 불안한 영업은 시작됐다.

가게가 새로 개업하면 소위 "오픈빨"을 받는다. 조리법이고 서비스고 채 정리도 못했지만 풍선인형은 세웠고 음악도 크게 틀었다. 처음 며칠 동안 작지도 않은 가게를 꽉 채울 만큼 손님들이 밀려들었고, 그렇잖아도 갖출 것 다 못 갖추고 시작한 매장에서는 크고 작은 실수가 끊이지 않았다. 주문은 엇갈렸고 손님들은 수십 분 씩 기다려야 했다. 식사를 하고 나간 테이블의 그릇 안에는 남은 음식들이 가득했고, 부모님 돕는답시고 매장을 뛰어다니던 나는 사장 불러오라는 손님의 역정을 듣기도 했다. 하필이면 "오픈빨"이 몰린 그 며칠, 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최악의 경험을 하고 간 것이다. 입소문이 생명인 식당인데, 아버지의 얼굴에 망연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이버에 등록된 상호 안내에 혹평이 줄을 이었다. 별점 반 개도 아까운데 하나 밖에 줄 수 없어서 화난다는 둥, 시식도 안 해보고 음식을 파냐는 둥, 악의로 가득 찬 한 줄 한 줄이 비수가 되어 날아와 꽂혔다. 더 참담한 건 그 평가에 대해 변명할 말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복잡한 집안 사정이야 손님들이 알 바인가. 평가는 오로지 음식과 서비스로만 받는다. 몇 배는 더 정성을 들였어도 모자랄 개업 첫 날부터 만족스럽지 못한 경험을 주었으니 혹평 앞에 할 말이 없었다. 환갑을 앞두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새 장사를 시작한 아버지는, 굳이 찾아 읽지 않아도 되었을 그 혹평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지 몇 날을 잠을 설치셨다.

그로부터 1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식당은 안정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 복잡한 일들이 일단락되고, 건물주와도 어느 정도 조율이 이루어져 아버지는 다시 심기일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나 시작하면 끝을 보시는 그 성격으로 매일 새벽 다섯 시부터 밤 열 시까지 부엌에 머무르며 조리법을 연구하고, 메뉴 하나를 추가할 때는 모든 끼니를 그것만 드셨다. '먹는 걸로 장난치면 안 된다'며 음식 하나하나를 정성껏 다루시는 모습을 보노라면, 맞아 아버지는 저런 분이셨지 생각을 한다. 식사를 마친 손님마다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며 인사를 빼놓지 않는다. 다행히 네이버 댓글이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는지, 이곳저곳에 좋은 입소문이 나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늘고 있다.

지금도 가끔 네이버에 아버지 식당 이름을 쳐본다. 찾아오는 손님들의 연배가 젊은 편은 아니어서 그런지, 인터넷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는 몇 개 없다. 혹평이 늘어서있던 상호 평가 위로 좋은 평가들도 꽤 쌓였다. 나는 맛있게 먹었는데 왜 평점이 이런지 이해가 안 간다는 의견들도 나타났다. 그래서 많이 위안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아래의 날선 말들이 눈에 띌 때마다 여전히 가슴이 시큰시큰하다. 아버지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시지만, 당신도 여전히 남아있는 그 글귀들이 달가울 리야 없다. 이제는 달라졌으니 할 수만 있다면, 저 악평들을 지워달라고 하고 싶다.

덕분에 역사교과서를 바꾸고 싶어 안달이 난 대통령의 마음이 이해는 간다. 고작 작은 식당 하나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는 몇 줄의 글에도 생채기가 나는데, 민주주의를 망가뜨린 독재자로 서술된 아버지를 볼 때마다 얼마나 속이 끓고 밤잠을 설쳤을까. 그러나 그와 내가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나는 네이버 댓글을 지워달라고 요청할 힘이 없고, 그는 교과서를 바꾸라고 명령할 권력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법적으로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그렇게 하고 있다.

네이버에서 혹평을 본 아버지가 하신 일은, 더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고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갖추는 일이었다. 운영이 어려워 종업원들 인건비도 제대로 주기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빚을 내서라도 월급을 줄지언정 너희가 좀 이해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역사교과서 속에 독재자로 등장하는 아버지를 보는 딸로서의 대통령, 부족한 제도적 장치들 때문에 '헬조선' 소리를 듣는 위정자들의 타는 속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타는 속으로 해야 할 일은 더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드는 것이지 네이버 댓글을 호평으로 고치라고 윽박지를 일은 아니다. 음식이 맛있으면 별점은 알아서 올라가고, 처음 깔린 악평들은 다음 페이지 그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제 할 일은 하지 않고 화부터 내고 있으니, 쪼잔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 이 글은 PD저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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