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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배우는 마음에 대하여

케냐에서 사람들은 내가 한국 사람들이 한국어만 쓴다고, 또 학교에서도 한국어만 쓴다고 설명하면 깜짝 놀랐다. 케냐의 아이들은 집에서는 부모가 속한 공동체에서 쓰는 언어를 배우고, 또 동아프리카 지역의 공용어(Lingua Franca)이자 케냐의 국어인 키스와힐리를 배우고, 영국 식민지 시대의 영향이 남아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영어로 수업을 받는다. 덕분에 어디를 가도 3-4개의 언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상적이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야 했던 나 역시 유창하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인사나 감사 정도는 키쿠유어나 마사이어 등의 언어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 김태은
  • 입력 2015.11.04 06:27
  • 수정 2016.11.04 14:12
ⓒgettyimagesbank

나이로비의 거리에서는 눈을 감고 소리만 들어도 정말 다이내믹했다. 한쪽에서는 키쿠유(Kikuyu)어로 다른 쪽에서는 루야(Luhya)어로, 또 루오(Luo)어로, 공동체를 대표하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거리의 의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동그랗게 모여 서서 열변을 내뱉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어서 무슨 말인지는 몰랐지만 그저 아 이건, 돌루오(Dholuo; 루오어(語))구나, 키키쿠유(Kikikuyu; 키쿠유어(語))구나, 알게 하는 일종의 표식과도 같은 표현이나 단어가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키쿠유어의 "아떼레레(atĩrĩrĩ)"였다. 종종 마주치던 키쿠유 사람들이 내게 키쿠유어를 한번 해보라고 하면 난 늘 "아떼레레"를 내뱉었는데 그러면 다들 박장대소를 했다. 굳이 한국말로 하면 "그러니까, 내 말은~" 하는 정도로 정말 많은 구어체 대화에 등장하는 말인데, 우리나라의 사투리로 비교하면, "시방" 또는 "거시기" 같은 느낌의 말을 외국인의 입으로 들으니 우습기도 했을 것 같다. 또 가끔 길거리에서 얻어들은 온갖 사투리가 섞인 키스와힐리(Kiswahili; 스와힐리어(語))로 매주 만나 공부하는 선생님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는데, 어찌된 모양인지 표준어보다는 사투리가 더 기억하기도 쉽고 재밌을 때가 많았다.

버스에 올라타면 또 다른 언어의 '장(場)'이 펼쳐진다. 라디오에서는 영어 뉴스가 흘러나오는 한편, 승객들은 국어인 키스와힐리나 소위 부족언어라고 할 수 있는 각종 공동체의 언어로 대화를 한다. 또 미니버스인 마타투(matatu) 업계 청년들과 길거리 생활을 많이 하는 젊은이들이 자신들만의 공동체 의식을 키우면서 발전시킨, 영어와 키스와힐리 그리고 여러 가지 부족언어들이 뒤섞인 슬랭인 솅(Sheng)이라는 언어가 거미줄처럼 교차하면서 주변의 소리의 풍경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언젠가 정통 키스와힐리를 구사하는 해안지방에서 온 여성은 처음 나이로비에 왔을 때, 마타투에서 차장이 하는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얼마냐고 물으니까 뭐라고 하는데 자기가 알아듣지 못하니 옆자리의 여자가 50실링이라고 말해주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 차장은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 그녀를 나무라면서 "너 외국인이냐, 혹시 나이지리아 사람이냐"며 물어서 기분이 상했다고, 그래서 나이로비의 키스와힐리는 영어와 솅 때문에 "오염"되었다고 불평했다 (아마도 그 차장이 썼던 말은 차장들이 주로 쓰는 50을 뜻하는 솅단어인 '핀제(finze)'였을 게다). 하지만 그녀가 불평했던 그 "오염" 덕분에 내 귀는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케냐에서 사람들은 내가 한국 사람들이 한국어만 쓴다고, 또 학교에서도 한국어만 쓴다고 설명하면 깜짝 놀랐다. 케냐의 아이들은 집에서는 부모가 속한 공동체에서 쓰는 언어를 배우고, 또 동아프리카 지역의 공용어(Lingua Franca)이자 케냐의 국어인 키스와힐리를 배우고, 영국 식민지 시대의 영향이 남아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영어로 수업을 받는다 (도시화의 영향으로 공동체 언어의 습득은 조금 퇴색되고 있기는 하지만). 덕분에 어디를 가도 3-4개의 언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상적이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야 했던 나 역시 유창하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인사나 감사 정도는 키쿠유어나 마사이어 등의 언어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한 단어 한 단어를 새로 알게 되면 단어 이상의 무엇인가가 내 마음에 남았고, 언어의 구사라는 단계를 넘어서는 소통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유창하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그 욕망을 버리기는 힘들지만), 그 언어에 담긴 관계의 이야기, 그리고 하나의 작은 단어가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나이로비에서 그 수많은 언어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풍경 속에서 종종 했던 생각이다.

<참조>

1) 케냐에는 47개의 공동체가 있고, 키쿠유(Kikuyu), 루야(Luhya), 루오(Luo), 칼렌진(Kalenjin), 캄바(Kamba)는 그중에서도 다수를 차지한다.

2) 키스와힐리는 인도양의 잔지바르와 동아프리카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언어로 동아프리카 반투어의 구조와 문법을 가지고, 아랍어와 영어 및 여러 유럽 언어들의 단어들이 변형된 어휘들이 많다. 현재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 민주콩고에서는 공식언어로 사용되고 그 외의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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