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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불평등 논쟁 : 노동자의 300배 CEO 연봉은 정당한가?

  • 허완
  • 입력 2015.11.02 07:09
  • 수정 2015.11.02 07:12
ⓒshutterstock

미국에서 노동자의 연봉이 최고경영자(CEO)의 300분의 1 수준으로 격차가 커지면서 경영진의 초고액 연봉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EPI)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미국 대기업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자사 CEO 임금의 0.33%에 그쳤다.

지난 6월 말에 발표된 이 보고서는 미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인식돼 크고 작은 논쟁을 계속 파생시키고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 기업이 CEO-노동자 연봉비율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진보적인 민주당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공화당의 대선후보도 CEO들의 초고액 연봉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 노동자보다 303배 더 받는 사장님들

EPI가 미국에서 매출규모 350위 이내 기업의 CEO와 노동자의 연봉을 조사한 결과 각 사업장에서 나타난 CEO와 노동자 연봉비율의 평균은 303대 1로 나타났다.

참고로 조사대상 기업들의 평균 연봉은 CEO가 1천630만 달러(약 186억원), 노동자는 5만6천400 달러(약 6천400만원)이다. 이 중 민간부문 제조업의 비관리직 노동자 평균연봉은 5만3천200 달러(약 6천60만원)이다.

CEO와 노동자의 연봉 격차는 최근 들어 급격히 커졌다.

이들의 연봉 비율은 1965년에 20대 1이던 것이 1978년 30대 1, 1989년 59대 1로 늘었고 2000년에 376대 1로 정점을 찍었다.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CEO 연봉은 한때 주춤거렸으나 경기회복과 함께 다시 치솟고 있다.

미국 CEO들의 연봉은 지난 36년 동안 997% 올랐지만, 노동자의 연봉은 10.9% 상승에 그쳤다.

재작년 조사를 보면 CEO의 연봉은 상위 0.1% 고소득자들의 연봉보다도 5.8배나 높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EPI는 점점 높아지는 CEO의 연봉이 다른 임원들의 연봉까지 덩달아 상승시킨다며 소득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얼리샤 데이비스 EPI 연구원은 "CEO 연봉을 (소득 불평등의) 단순한 상징만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데이비스는 "임원들의 치솟는 연봉이 노동자들에게 갈 수 있는 소득을 빨아들여 실제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설명했다.

EPI는 CEO의 연봉 증가 추세가 상위 0.1% 고소득자보다 훨씬 가파르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CEO의 초고액 연봉이 능력을 반영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로런스 미셸 EPI 소장은 "초고액 연봉은 CEO의 재능에 대한 시장의 수요와 관계가 없다"며 "아주 생산성이 뛰어나 그런 연봉을 받는 게 아니라 자기 연봉을 결정하는 데 더 많은 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 CEO 임금삭감이 소득불평등 개선과 관계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에 따라 정당하게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믿는 CEO들은 소득불평등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데 반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CEO인 제이미 다이먼은 최근 NBC방송의 '미트 더 프레스'에 출연해 CEO 연봉과 소득 불평등의 관계를 부정했다.

다이먼은 "미국 500대 기업 CEO의 연봉을 모두 빼앗아 노동자들에게 나눠줘도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나타날 효과는 새 발의 피"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양극화를 미국의 깊은 사회 문제로 보는 까닭에 우려를 감추지는 못했다.

그는 "저임금이 미국의 가장 큰 수치 중 하나"라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버락 오바마가 될지도 모를 아이들이 고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연구소 데모스는 최근 CEO 임금삭감이 노동자들의 소득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는지 직접 계산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미국 10대 기업의 CEO 연봉을 100만 달러(약 11억4천만원)로 삭감해 차액을 그 회사 노동자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식의 계산이었다.

노동자가 232명인 갬코 인베스트는 직원들 연봉이 37만7천235 달러나 올랐고 노동자가 18만 명인 월트디즈니의 직원들은 253달러를 더 받았다.

이들 10대 기업 직원의 평균 인상액은 1천419달러로, 미국 통계국이 발표한 노동자 평균연봉 2만8천∼3만5천 달러에 비춰볼 때 4∼5% 인상효과가 나타난 셈이었다.

소득 불평등을 해소에 일조하겠다며 임금삭감을 직접 실행에 옮긴 CEO도 최근 화제를 모았다.

미국 카드결제 대행사 그래비티페이먼츠의 CEO 댄 프라이스는 지난 4월 100만 달러가 넘는 자기 연봉을 7만 달러(약 8천만원)로 깎고 직원 최저연봉을 5만 달러(약 5천700만원)로 설정했다.

이 회사가 게으른 노동자를 양산해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처럼 허물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으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매출과 이익이 양호한 편이다.

◇ 미국 정부, 문제 조명…대권주자도 CEO 연봉에 관심

미국 연방정부는 미국 기업들이 CEO와 노동자의 연봉 비율을 의무적으로 공개하게 하는 제도를 지난 8월 도입했다.

이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던 2010년 도입된 금융규제법률의 일부로서 기업 반발 탓에 시행이 보류되다가 소득 불평등이 쟁점화하자 기습적으로 적용됐다.

SEC는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시장이 알아서 고삐 풀린 임금을 규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공개되는 비율이 CEO 임금이 실제로 과도한지 주주나 이사회가 판단하고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나아가 SEC는 노동자가 더 공정한 임금을 받는 기업을 소비자가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품고 있다.

CEO 연봉과 소득 불평등 의제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대선주자들도 자주 거론하고 있다.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은 소득 불평등 해소, 중산층 강화를 정책비전으로 내세웠다.

공화당의 유력 후보인 부동산재벌 도널드 트럼프도 지난달 CBS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에 나와 "부끄러운 줄 알라"고 초고액 연봉을 받는 CEO들을 비난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기업 운영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의견을 털어놓았다.

"정말 골치 아픈 일인데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업 경영의 자유가 있는 체제에서는 풀기가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알다시피 CEO 연봉 결정은 기업 이사회의 일이죠. 기업을 아주 잘 아는 제가 보자면 CEO는 이사회에 친구들만 집어넣습니다. 친구들을 회사 대표로 두고 원하는 걸 다 뽑아가요. 그 사람들 어마어마한 돈을 받는데요. 저는 그거 완전히 웃기는 얘기라고 봐요. 세금도 거의 안 내는데요. 내 계획이 시행되면 그런 짓은 끝장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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