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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 체험에서 미래의 배트맨까지 | 배트맨의 시간 여행

배트맨 세계에서도 정확히 1,000년 뒤의 미래에서 이 시대를 찾아오는 특별한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은 브레인 테일러. 그는 마이크로필름을 통해 배트맨의 활약상을 연구한 후 조카와 함께 수련하여 31세기 미래 버전의 배트맨과 로빈이 되어서 그 시대의 악한 과학자에 맞서 싸운다. 1951년 《배트맨》 67호에서 테일러는 2051년의 미래에서 타임캡슐을 타고 처음으로 등장한다. 미래의 로빈이 부상을 입는 바람에 그를 대신해 과거의 로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었다. 미래의 배트맨은 1955년 《디텍티브 코믹스》 216호에서 또 한 번 등장한다. 이번에는 과거의 배트맨이 부상을 입으면서 3055년의 미래에서 테일러를 불러오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 이규원
  • 입력 2015.11.02 08:47
  • 수정 2016.11.02 14:12

[배트맨 데이 기념 특별 연재 6] 최면 체험에서 미래의 배트맨까지

─ 배트맨의 시간 여행

2015년 10월 21일. 영화 「빽 투더 퓨처」에서 주인공 마티가 타임머신을 타고 도착했던 미래를 어느새 현실이 따라잡고 말았다. 이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재개봉되면서 시간 여행이 화제가 된 요즘, 이번에는 배트맨 만화 속의 시간 여행, 배트맨 만화 속에 그려진 미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한다.

사실 미국 만화 팬에게 시간 여행은 DC보다는 마블 코믹스 쪽이 조금 더 친숙한 느낌이 있다. 특히 시간 여행자라고 하면 독보적인 캐릭터들이 몇몇 있다. 예를 들면 최근 영화화 소식으로 팬들의 기대를 모으는 데드풀의 단짝이면서 한쪽 팔에 시간 여행 장치가 달려 있는 마블 코믹스의 대표적 시간 여행 히어로, 케이블을 보자. 그 이야기는 이렇다. 엑스맨의 리더 사이클롭스는 연인 진 그레이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던 중 진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만든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불치의 병에 걸린다. 사이클롭스는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아들을 먼 미래로 보내는데, 아들은 미래에서 병을 치료한 후 뮤턴트를 구하는 영웅이 되어 과거로 돌아온다. 이렇게 그래픽 노블 『메시아 콤플렉스』, 『메시아 워』, 『세컨드 커밍』으로 이어지는 엑스맨 메시아 트릴로지에서 케이블은 또 다른 시간 여행자인 '비숍'과 뮤턴트의 운명을 걸고 수 천 년의 시간을 건너뛰는 시간 여행 추격전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DC도 시간 여행에 있어서는 마블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방대한 세계관을 자랑한다.

뮤턴트의 운명을 걸고 벌이는 시간 여행 대결, 엑스맨 메시아 트릴로지.

(사진 제공: 시공사)

DC 유니버스 히어로들의 시간 여행

DC에서 시간 여행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에는 30세기 미래에서 20세기 슈퍼맨을 찾아 온 미래의 슈퍼 히어로들인 '리전 오브 슈퍼 히어로즈'가 있다. 30세기 미래는 우주가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세상으로, 전 우주에서 초능력을 가진 소년 소녀가 모여 '리전 오브 슈퍼 히어로즈'라는 팀을 만들어 평화를 지키는 일을 한다. 그런데 이들 초능력자들 누구나가 존경해 마지않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최초의 슈퍼 히어로인 20세기의 '슈퍼맨'이다. 30세기의 세상에는 슈퍼맨 박물관과 동상은 물론 슈퍼맨을 기념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여기서 만화는 재미있는 시간 여행의 패러독스를 활용하는데, 30세기에서 과거 슈퍼맨의 활약을 보며 슈퍼 히어로가 된 소년 소녀들이 20세기로 거슬러와 아직 슈퍼맨이 되지 않은 슈퍼 보이 클라크 켄트를 만나 그의 성장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리전과의 인연 덕에 슈퍼맨을 비롯해 슈퍼걸까지 자그마치 1,000년의 시간을 자유롭게 오고가면서 현재와 미래 모두에서 활동하게 된다.

최근 드라마 시즌2가 시작한 DC의 인기 캐릭터 플래시의 경우에도 미래와 깊은 인연이 있다. 배리 앨런은 아이리스 웨스트와 오랫동안 연애를 하다가 결혼했는데, 결혼까지 하고서도 자신이 플래시라는 사실을 끝까지 숨기려고 했지만 어이없게도 잠꼬대 때문에 정체를 들키고 만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배리의 정체를 알고도 그가 스스로 비밀을 털어놓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데 아이리스에게도 배리가 모르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으니, 그녀가 사실은 20세기의 사람이 아니라 30세기의 미래인이라는 것이었다. 1,00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두 사람의 사랑은 비극을 맞게 되는데, 이 비극에 얽힌 또 다른 인물은 25세기의 범죄자였다. 그는 우연히 플래시의 옷이 든 타임캡슐을 발견하고는 플래시와 같은 힘을 쓸 수 있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옷 색깔이 붉은색의 플래시와는 반대인 노란색의 리버스 플래시가 된다. 리버스 플래시는 20세기로 시간을 거슬러와 아이리스를 죽인다. 한동안 큰 충격에 빠져 있던 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재혼을 하여 정상으로 돌아가는가 싶었는데, 재혼한 아내 역시 또 리버스 플래시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결국 배리 앨런은 리버스 플래시의 목뼈를 부러뜨려 죽이고, 살인죄로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얼마 후 감옥에서 탈출하여 30세기의 미래로 돌아간다. 그런데 30세기 미래에 있던 아이리스의 부모가 미래 과학을 이용하여 아이리스를 되살리고 두 사람은 재회한다는 것이 배리 앨런과 아이리스의 1,000년을 넘나드는 사랑 이야기다.

드라마 「애로우」의 스핀오프에서 영화까지, 어느새 저스티스 리그 재건(?)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플래시 드라마 시즌 2 티저 영상

(출처: https://youtu.be/UMRBs0-OXCA)

이런 금슬을 자랑하는 또 다른 DC 캐릭터로는 호크맨과 호크걸이 있다. 다만 이들이 시간을 뛰어넘는 방식은 시간 여행이 아닌, '환생'이다. 고대 이집트 쿠푸 왕과 그의 아내 체이아라는 나쁜 사제 하트세트의 손에 죽임을 당한 후 수 천년이 지난 1940년 미국에서 각각 고고학자 카터 홀과 시에라 샌더스라는 여성으로 태어난다. 이들은 자신들의 전생의 기억을 되찾고 과거에서 되살아난 하트세트의 환생인 과학자 안톤 하스터와 대결한다.

심지어는 슈퍼맨과 지구의 인연에도 시간 여행이 개입된다. 데이빗 고이어가 스토리를 쓴 1999년 《스타맨》 51호를 보면 시간 여행을 통해서 과거의 크립톤에 도착하는 스타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 슈퍼맨의 고향인 크립톤 행성이다. 이곳에서 스타맨은 열일곱 살 소년 '조엘'을 만난다. 크립톤 멸망 직전에 외아들을 지구로 보냈던 바로 그 '조엘'의 어린 시절이다. 최근 「크립톤」이라는 제목의 드라마 관련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데, 만화 속의 크립톤은 철저하게 생명공학을 통해서 인구조절을 하는 별이였다. 인구 조절 방식은 특이하다. 시민 중 누군가가 죽어서 결원이 생길 경우, 크립톤에서는 유전적으로 완벽한 짝이 되는 남녀를 선택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세포를 실험실에서 결합시켜 인공 자궁에서 아기를 성장시켜 이를 보충한다. 스타맨은 조엘의 아버지이자 슈퍼맨의 할아버지가 되는 세익엘을 만나고 그에게 지구인이 사랑, 남녀의 접촉, 아이를 갖는 방식 등을 이야기해 준다. 세익엘과 크립톤 원로들이 스타맨을 붙잡아 실험하려고 하자 조엘이 스타맨을 탈출시키고, 스타맨은 우정의 표시로 조엘에게 지구의 좌표와 지구에 관한 정보가 담긴 칩을 건네준다. 슈퍼맨이 그 수많은 별 중에서 하필이면 지구로 온 까닭에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했던 스타맨의 이야기가 있었다.

슈퍼맨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다루게 될, 드라마 「크립톤」과 만화를 연결해 주는 《스타맨》 51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Batman_Vol_1_700?file=Batman_700.jpg / TM &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시간 여행자 배트맨과 내일의 배트맨

배트맨 세계에서도 정확히 1,000년 뒤의 미래에서 이 시대를 찾아오는 특별한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은 브레인 테일러. 그는 마이크로필름을 통해 배트맨의 활약상을 연구한 후 조카와 함께 수련하여 31세기 미래 버전의 배트맨과 로빈이 되어서 그 시대의 악한 과학자에 맞서 싸운다. 1951년 《배트맨》 67호에서 테일러는 2051년의 미래에서 타임캡슐을 타고 처음으로 등장한다. 미래의 로빈이 부상을 입는 바람에 그를 대신해 과거의 로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었다. 미래의 배트맨은 1955년 《디텍티브 코믹스》 216호에서 또 한 번 등장한다. 이번에는 과거의 배트맨이 부상을 입으면서 3055년의 미래에서 테일러를 불러오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DC 유니버스 평행우주 지구-1의 저스티스 리그와 지구-2의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서로의 지구를 오고가면서 도움을 주고받았던 것과 비슷한 구도다.

겨드랑이에 제트 모터를 장착한 3055년의 배트맨을 볼 수 있는《디텍티브 코믹스》 216호. 『배트맨 앤솔로지』에서 발췌.

(사진 제공: 세미콜론)

시간 여행을 직접 하는 건 아니지만, 미래를 배경으로 활약하는 배트맨인 '내일의 배트맨'은 몇 명이 더 있다. 2007년 《배트맨》 666호에서는 15년 뒤 미래를 배경으로 더욱 무섭고 잔혹한 테러리스트와 초인 흉악범들을 상대로 24시간 처절한 전투를 벌이는 새로운 배트맨이 등장한다. 브루스 웨인의 아들인 데미안 웨인이다. 작가인 그랜트 모리슨은 '내일의 배트맨'의 스토리를 2010년 《배트맨》 700호에서 다시 한 번 그린다. 이 이슈는 '어제', '오늘', '내일', '그리고 내일....'이라는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모리슨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각기 다른 만화가들이 그림을 그렸는데, '어제'는 브루스 웨인, '오늘'에는 딕 그레이슨, '내일'에는 데미안 웨인 버전의 배트맨을 다루었다. 어째서 딕 그레이슨이 '오늘'인가 하면, 2010년 당시에는 브루스 웨인이 대외적으로는 죽음을 맞은 채 먼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고 있고, 딕 그레이슨이 대신 2대째 배트맨으로 활동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브루스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지난 연재글 '브루스 웨인 VS. 어둠의 조상들: 히어로의 아버지' 편에 『브루스 웨인의 귀환』을 소개한 내용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그런데 여기 '내일' 편의 이야기를 보면 데미안 웨인 버전의 배트맨이 투페이스(하비 덴트가 아닌 미래의 다른 인물)에게 붙잡혀 있는 아기를 한 명 구하는데, 그 아기가 자라서 그 다음 챕터 '그리고 내일....' 편에서 데미안의 지도를 받는 테리 맥기니스라는 이름의 새로운 배트맨으로 등장한다. 《배트맨》 700호에서 그려진 테리 맥기니스라는 인물은 원래는 1999년 시작된 TV 애니메이션 「배트맨 비욘드」의 배트맨 테리 맥기니스를 데미안 웨인이 살고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갖고 온 것으로 외모는 비욘드 배트맨이지만 탄생 설정이 조금 바뀐 모습이다. 원래 애니메이션 세계에서의 「배트맨 비욘드」는 기존의 배트맨 애니메이션보다 40년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테리 맥기니스는 키워준 부모는 따로 있었지만 사실상 브루스 웨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브루스의 아들로 그려졌다.

3대 배트맨 데이안 웨인이 「배트맨 비욘드」에서 온 4대째 배트맨과 접점이 생기는 《배트맨》 700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Batman_Vol_1_700?file=Batman_700.jpg / TM &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미래의 배트맨 중에는 데미안과 테리처럼 단지 미래만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와 직접 만나는 이도 있다. 배트맨의 여러 로빈 중의 한 명인 '팀 드레이크' 버전의 미래 배트맨은 슈퍼 히어로의 사이드킥들로 구성된 '틴 타이탄즈'의 주요 멤버이기도 했는데, 타이탄즈가 31세기 '리전 오브 슈퍼 히어로즈'를 돕기 위해서 시간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10년 후의 미래에 불시착해서 자신들의 성인 버전 팀인 '타이탄즈 투모로우'를 만난다는 것이다. 이 미래에서 브루스 웨인은 사망했고, 팀 드레이크가 그 뒤를 이어 배트맨이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틴 타이탄즈》 19호에서 '오늘의 로빈과 내일의 배트맨'이라는 제목으로 그려진 바 있다.

배트맨의 시간 여행 조력자 니콜스 교수

《배트맨》 700호에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기 위해 그랜트 모리슨은 카터 니콜스 교수라는 인물을 소개한다. 니콜스 교수는 초창기 배트맨 스토리에서 '시간 여행'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인물로, 1944년 《배트맨》 24호부터 등장해 1950년대 꾸준히 얼굴을 비추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던 캐릭터였다. 니콜스 교수는 브루스 웨인, 딕 그레이슨과 친분이 있었으나 그들이 배트맨과 로빈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는 브루스와 딕에게 최면을 거는 방법으로 두 사람을 로마, 중세, 서부시대 등으로 시간 여행을 보냈다. 1940~1950년대 당시 배트맨 만화에는 한 이슈에 세 가지 에피소드가 수록되었는데, 한두 에피소드가 어두운 범죄물을 그린다면, 한 에피소드 정도는 배트맨과 로빈의 발랄한 모험을 가볍게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를 위해서 고담이 아닌 다른 곳이 배경으로 잡히곤 했는데, 니콜스 교수의 최면을 통한 시간 여행 능력은 두 주인공을 교과서에서 글로만 접하던 역사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역사적 인물과 만나 체험하는 교육적 컨텐츠 역할을 했다. 알다시피 1950년대 미국에서 만화는 청소년에게 폭력성과 잘못된 성관념을 심어 준다는 비판을 받았던 시기라 니콜스 교수의 존재는 배트맨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어쨌든 최면술을 시간 여행 수단으로 삼다 보니 남에게 최면은 걸 수 있어도 정작 본인은 시간 여행을 하기 힘든 단점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배트맨》 700호에서처럼 머리 위에 착용하는 헬멧 모양의 장치를 개발해 자력으로 시간 여행에 도전하기도 했다.

* 이 연재는 세미콜론과 공동으로 기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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