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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간의 미국 서부 일주 ⑤]미국 한식당, 반찬 추가에 돈 내는 줄 알고...

미국에서는 사이드 디시를 추가하면 추가 요금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조금씩 아껴 먹었는데, 한국과 다름없이 반찬을 그냥 더 갖다 주는 것을 보고 무안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손님은 대체로 한국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지만, 백인 노부부나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흑인 부부 등 외국인 손님도 적지 않아 좀 놀라기도 했다.

  • 임은경
  • 입력 2015.11.02 11:57
  • 수정 2016.11.02 14:12

▲ 11일 오후에 방문한 '헤리티지 파크' 입구. 이날이 마침 9·11 참사일이라 안내소 앞에 조기가 게양되어 있다. ⓒ 임은경

9월 11일 금요일. 이튿날도 8시 반부터 시작하는 일정에 맞춰 아침부터 서둘렀다. 우리 숙소인 미치와 엔젤네 집은 아래층 욕실의 구조가 좀 특이하다. 욕실이 좀 큰 편인데 그 안에 샤워실 두 개와 화장실 두 개로 칸이 분리되어 있다. 일반 가정집 욕실 같지 않고 꼭 기숙사 샤워장 같다. 종혁 씨랑 이 얘기를 하다가, '아마 대학교가 근처에 있어서 집을 지을 때 하숙 등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숙소에 든 첫날 차를 타고 주변 구경을 나갔다가 유타대학교 캠퍼스가 무척 가깝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리 숙소가 900East인데 캠퍼스가 시작되는 지점은 네 블록 떨어진 1300East부터였다. 집이 대학교 바로 아래에 있는 셈이다. 솔트레이크시티 동쪽 끝, 산 아래 구릉지에 위치한 유타대학교 캠퍼스는 작은 소도시라 할 만큼 면적이 넓었다.

나무와 녹지가 많은데다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캠퍼스는 마치 평화로운 시골 정원 같은 느낌이다. 나중에 캘리포니아에 가서 본 UC 버클리나 산호세주립대학교 캠퍼스가 학기 초의 분주함과 함께 몰려다니는 학생들, 그라피티 낙서 같은 안내문들, 교문 앞 술집과 카페 등 대학가답게 떠들썩한 분위기로 가득했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솔루션 아레나에서 총 아홉 개의 강좌로 진행된 이날 세션은 오후 세시 반까지 계속되었다. 대형 컨벤션에 으레 끼게 마련인 중간 공연 때는 '젠트리'라는 이름의 젊은 남성 트리오와 '오딧세이 댄스 시어터' 팀이 등장했다. '젠트리'의 노래는 꼭 찬송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데세렛 북스토어의 종교음악 CD들 사이에서 이들의 앨범을 발견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대학 기숙사 샤워장 같은 민박집 욕실

현대무용 팀인 '오딧세이 댄스 시어터'의 공연도 단순한 동작의 반복 이외에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었다. 여성 단원들도 모두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바지를 입고, 목과 팔 이외의 신체를 전혀 노출하지 않은 옷차림으로 미루어 보아 이들 역시 모르몬교 신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만한 규모의 국제 컨벤션이라면 좀 더 수준 높은 공연을 유치해도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러자면 상당한 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이고, 검소와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이들에게 그것은 지나친 사치일지도 모른다.

어제 점심 자리에서 패트릭이 일부 우수 사업자 회원에게 감사 선물로 핸드백을 전달했는데, 핸드백이라는 얘기에 처음에는 입이 떡 벌어지던 한국 아줌마들이 막상 실물을 보고는 다들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핸드백이라는 것이 회사에서 자체 제작한 소박한 가방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사옥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 사장인 패트릭도 씀씀이가 그러한데 이들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날 점심은 길 건너 솔트 팰리스 컨벤션센터 2층 홀에서 먹었다. 해외 참가자들을 위한 환영 행사를 겸한 뷔페 식사였다. 신선한 샐러드와 볶음밥, 빵, 볶은 채소, 사워크림을 곁들인 닭 가슴살 스테이크, 후식으로는 두 가지 종류의 케이크와 얼음을 넣은 자몽 에이드, 커피가 나왔다.

외국 참가자 배지 교환해 받은 상품... 뿌듯한 점심시간

식사 도중 다른 테이블에 앉은 존 갭메이어 북아시아 국장이 눈에 띠었다.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한국 참가자 중 그날 제일 먼저 존을 찾는 사람에게 에센셜 오일을 선물로 주겠다'고 했던 이벤트 내용이 생각났다. 혹시나 해서 그에게 다가가 '오늘의 선물 당첨자가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코리아 기념 배지 다섯 개를 다른 나라 참가자들의 것과 모두 교환해오면 오일을 주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머지 점심시간 동안 주변 구경이나 할 생각이었으나, 그 말을 듣고 단박에 마음이 바뀌었다.

쇼케이스 홀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을 샅샅이 뒤져서 호주, 유럽, 일본, 중국, 멕시코 등 외국 참가자들과 다섯 개의 배지를 모두 교환했다. 다행히 점심시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2층 홀에 돌아와 존에게 배지들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에센셜 오일 한 병을 주머니에서 꺼내 주었다. 회사 임원들만 사용한다는 가죽으로 만든 명함지갑도 받았다.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들의 부러움 속에 뿌듯하게 점심시간을 마쳤다.

▲ 11일 오후에 방문한 '헤리티지 파크'. 초기 모르몬 정착자들의 삶을 체험하는 민속촌 같은 곳이다. ⓒ 임은경

세시 반에 오후 세션이 끝나고 나와서 차를 타고 '헤리티지 파크(This is the Place - Heritage Park)'를 찾았다. 솔트레이크시티의 동쪽 끝에 위치한 이곳은 19세기 마을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민속촌 같은 곳인데, 초기 모르몬 정착자들의 정신을 기리고 그들의 삶을 체험해보는 관광지다. 안에는 당시 모르몬 지도자 브리검 영의 팜하우스와 대장간을 비롯해 그들이 살던 오두막, 물레방앗간, 학교, 은행, 관공서까지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관광객들은 서울랜드의 코끼리 열차 같은 미니 기차를 타고 마을을 구경하다가, 19세기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거나 모르몬 개척자들이 아이오와에서부터 끌고 왔다는 손수레를 직접 끌어보는 등 당시의 삶을 체험해볼 수 있다. 하지만 문을 닫는 시각이 오후 5시여서 입구의 기념품점과 박물관을 구경하다가 아쉽게도 입장할 때를 놓치고 말았다.

대신 정문 수위실을 지키는 할아버지로부터 이 헤리티지 파크와 초기 모르몬 정착자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의 팜하우스는 재현을 해놓은 것이고 시내에 가면 브리검 영이 실제로 살았던 집(Beehive House)이 따로 있다는 것, 솔트레이크 계곡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도시를 만들었는지 등등.

▲ 안내소 안 박물관에 모르몬 개척자들의 삶을 담은 기록물과 그림, 당시 사용하던 총, 비석 등이 전시되어있다. ⓒ 임은경

헤리티지 파크 입구에는 'This is the Place'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 동상의 이름은 1847년 모르몬 교도들의 솔트레이크밸리 정착을 선언한 브리검 영의 유명한 연설에서 따온 것이다. 동상이 세워진 위치는 솔트레이크시티 동쪽 끝, 에미그레이션 캐년(Emigration Canyon)이 끝나는 지점이다. 19세기 모르몬 개척자들은 이 에미그레이션 캐년을 따라 내려와 그 끝에서 마침내 신이 내려준 듯 광활하게 펼쳐진 대평원을 발견했고, '이곳이 바로 그 장소다(This is the Place)!'라고 외쳤을 것이다.

불굴의 개척자 정신 담은 'This is the Place' 동상

1947년에 개척자들의 솔트레이크 이주 100주년을 기념해서 세워진 이 동상은 브리검 영의 손자인 메이혼리 영이 조각했다고 한다. 동상의 맨 가운데에 선 브리검 영은 지팡이를 짚고 모자를 벗어든 채 '마침내 그곳'을 발견한 감격에 젖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불굴의 의지로 새 삶을 개척한 그들의 위대한 정신 앞에 나 역시 잠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 'This is the Place' 동상. 맨 꼭대기에 선 세 사람 중 가운데가 초기 모르몬 지도자 브리검 영이다. ⓒ 임은경

이날 저녁 식사는 솔트레이크시티 남서쪽 웨스트밸리시티에 있는 '명가'라는 한식당에서 먹었다. 돌솥밥과 순두부찌개, 철판 떡갈비와 불고기 등을 하는 곳이었는데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었다. 밑반찬으로 배추김치와 구이김, 숙주나물, 오이초절임, 감자조림 등이 나왔는데 다른 일행을 기다리다가 배가 고파서 집어먹은 밑반찬들도 하나같이 맛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사이드 디시를 추가하면 추가 요금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조금씩 아껴 먹었는데, 한국과 다름없이 반찬을 그냥 더 갖다 주는 것을 보고 무안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손님은 대체로 한국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지만, 백인 노부부나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흑인 부부 등 외국인 손님도 적지 않아 좀 놀라기도 했다.

두부는 중국 요리에 많이 쓰이는 재료이기 때문에 서양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음식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숟가락으로 순두부찌개를 떠먹는 미국인들이라니. '한류'의 흐름에 올라탄 한국 음식 문화의 전파인가. 다만 음식의 양은 역시 다른 미국 식당들처럼 너무 많아서 결국 밥을 상당히 남길 수밖에 없었다.

▲ 솔트레이크시티 시내에 있는 리버티 파크(Liberty Park). 잔잔히 빛나는 호수가 평화로워 보인다. ⓒ 임은경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다가 리버티 파크와 워싱턴 스퀘어에 들렀다. 리버티 파크는 크고 울창한 나무들과 지는 해의 마지막 빛을 받아 잔잔히 빛나는 호수, 드넓은 초록의 잔디밭이 있는 크고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산책이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 그냥 앉아서 쉬는 사람들, 배구 경기를 하는 사람들, 커다란 정자에 수십 명씩 둘러앉아 마을 모임(?)을 하는 사람들이 제각각 평화로운 금요일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한국의 '불금'과는 다른 이들만의 평화로운 저녁

'부어라, 마셔라' 하며 스트레스의 돌파구를 찾아 필름이 끊길 때까지 달리는 한국의 '불금'과는 전혀 다른 이들만의 여가시간이 인상적이다. 리버티 파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워싱턴 스퀘어는 19세기에 지어진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시청 청사가 있는 곳이다. 일부 한국 관광객들은 언덕 위에 있는 푸른 돔형 지붕의 주의사당 건물을 시청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곳은 워싱턴D.C.에 있는 국회의사당을 본떠 만든 유타주 의회 건물이다.

이 시청 건물은 템플 스퀘어에 있는 솔트레이크 성전보다 크기는 좀 작지만 외관은 그에 못지않게 정교하고 섬세했다. 이 건물은 모르몬교도들이 지은 것이 아니고 솔트레이크시티 건설 이후에 이곳으로 이주해온 메이슨(Freemason, 중세 석공조합. 미국의 건국에도 큰 역할을 했음)들이 지은 것이라고 덩치 큰 관리인 아저씨가 설명해주었다.

바로 길 건너 맞은편에 커다란 현대식 법원 건물이 있었는데, 그걸 짓기 전에는 이곳이 법원도 겸했다고 한다. 건물 맨 꼭대기에 천칭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어서 그 말이 사실임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근처에 마치 로마의 콜로세움 모양으로 세워진 현대식 시립도서관과,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는 옛 도시 전차인 트롤리(Trolley) 차고를 개조해서 만든 트롤리스퀘어 쇼핑몰을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

▲ 트롤리스퀘어 안에 옛 도시 전차인 트롤리 차고의 옛날 모형을 전시해 놓았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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