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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역사 교육이 필요했던 대통령

역사의 독점과 왜곡이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찰나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역사에 인위적으로 손을 대는 행위는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또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게다가 그러한 부질없고 부끄러운 행위 또한 역사에 그대로 기록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기록유산이 후대에게 주는 명쾌한 교훈이다. 그는 이를 배웠어야 했다.

ⓒ연합뉴스

글 | 서누리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선임연구원

지난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그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통해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정통성을 심어주자고 강조하면서, 본인 스스로 역사 왜곡이나 미화 교과서가 나오는 것을 절대로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답답한 심정으로 시정연설을 듣던 필자는 문득 그는 왜 그토록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집착하는지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의 역사관이 무엇인지 궁금해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역사관 형성의 경로를 한 번 따라가 보기로 했다.

박 대통령은 1952년생이다. 5.16 군사쿠데타가 1961년이니까 당시 그의 나이는 한국 나이로 10살이었다. 어렸지만 집안의 장녀이며 무척이나 영민하였다고 알려진 것을 감안하면, 그는 아버지에게 큰 일이 있다는 정도는 알았을 법하다. 설사 바로 알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날 이후 아버지의 계속되는 영전은 바로 그날의 사건 덕분임을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깨달았을 것이다.

하여간 그는 10살이었던 1961년으로부터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을 대한민국 권력의 중심에서 살았다. 그의 역사관도 그 시점 중 어디에선가 형성되었으리라. 그렇게 형성된 역사관을 짐작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첫째, 역사를 외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아버지는 구국의 혁명을 통해 대한민국을 잘 살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아버지가 곧 대한민국 역사이다. 적어도 그의 머릿속에선 진리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아버지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불순분자였다. 이와 같은 자신만의 진리는 그에게 역사를 외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게 한다. 게다가 생활을 통해 터득한 것이어서 스스로 의심해볼 여지조차도 없다고 여겼기에 더욱 맹목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둘째, 역사를 통시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역사라는 것은 장구하고 장엄한 것이어서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역사의 한 자락은 찰나의 불과한 것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는 자아가 완전히 형성되기 전부터 이미 역사의 한 가운데 살았다. 이 때문에 그에게 역사는 오직 현재이자 현실일 뿐이지 저 멀리서부터 통찰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것이었다. 엄청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그는 기나긴 흐름의 역사를 보지 못한 채 자신 아버지와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역사의 한 찰나에 함몰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배웠어야 할 올바른 역사관은 무엇인가? 이 땅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보면 그 답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듯하다. 우선 유구한 우리 역사 중 가장 자랑스러운 유산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아마도 기록유산의 전통일 것이다. 이 땅의 수많은 기록유산 중 이미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만 해도 13건이다. 그중에서 백미는 역시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기록의 꼼꼼함과 방대함은 물론 왕조차도 함부로 사초를 볼 수 없게 만들어 제도적으로 공정성을 담보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고의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조차 아버지 이방원의 역사적 평가가 담긴 태종실록을 보고자 하는 유혹에 빠졌지만 볼 수 없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의 위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원본과 함께 수정실록(修正實錄)과 개수실록(改修實錄)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수정실록과 개수실록은 주로 집권세력이 바뀔 경우 편찬되었다. 중요한 것은 새로 집권하여 실록을 다시 쓰는 세력들도 기존의 실록 원본을 훼손하거나 말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역사의 사실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안 까닭이다. 즉, 역사는 외눈이 아닌 두 눈으로 균형 있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당대에 역사를 잠시 독점하여 자신의 입맛대로 서술한다고 하여도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 언젠가 진실을 갈구하는 후대 역사가들이 나타나서 이를 바로잡을 것을 안 까닭이기도 하다. 즉, 역사를 통시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의 독점과 왜곡이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찰나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역사에 인위적으로 손을 대는 행위는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또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게다가 그러한 부질없고 부끄러운 행위 또한 역사에 그대로 기록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기록유산이 후대에게 주는 명쾌한 교훈이다. 그는 이를 배웠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시대 여러 학교에서 5.16는 구국의 혁명이며, 유신(維新)은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배웠던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다시 두 눈으로 균형 있게 보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이다. 다만 그 왜곡된 역사관을 다시 바로 잡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피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었다. 그럼에도 역사는 결국 사필귀정이다. 그것이 역사인 것이다.

가족사까지 더해져 왜곡되고 편협한 역사관을 지닌 박근혜 대통령. 물론 그가 이와 같은 역사관을 갖게 된 것을 개인적 불운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불운 때문에 대한민국은 지금 몹시 불행하다.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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