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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걷는 남자', 20세기에 있었던 가장 예술적인 범죄에 관한 이야기

  • 강병진
  • 입력 2015.10.30 05:31
  • 수정 2015.10.30 05:44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필리페 페팃(Philippe Petit)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 사이에 줄을 놓고, 그위를 걷는 데 성공했다는 건 스포일러가 아닙니다.

1976년 8월 7일, 프랑스의 곡예사 필리페 페팃은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양쪽 꼭대기에 줄 하나를 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봉 하나만 들고 줄 위를 오갔다. 그것도 8번이나. 110층 짜리 빌딩인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높이는 411.5m다. 그날 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에서 줄타기에 성공한 남자가 되었다. 하늘 위를 걷는 그의 모습은 전 세계 신문의 1면을 도배했다. 그의 소식은 당시 닉슨 대통령의 사임 발표 뉴스보더 더 놀라운 뉴스였다고 한다.

그날 필리페 페팃의 공연은 하나의 놀라운 광경이었다. 실제 현장에서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하늘 위를 걷는 그의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믿기 힘든 이미지는 공연 이면의 수많은 이야기를 압도해버렸다. 이 공연은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은 불법 공연이었다는 것(비극이 될 게 뻔한 공연을 건물주가 허락해줄일은 없지 않은가). 페팃은 이 공연을 오랫동안 비밀리에 준비했고, 조력자들과 함께 몰래 건물에 침투했었다는 것. 무엇보다 필리페 페팃이 왜 그런 무모한 일을 벌였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필리페 페팃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쓴 책이 출간됐고, 2009년에는 ‘맨 온 와이어’란 다큐멘터리도 나왔지만, 사람들이 그날의 기억을 더 이상 회자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1976년 그날의 스펙터클이 잊혀진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새겨진 또 다른 강력한 이미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2001년 9월 11일. 테러범들이 조종한 두 대의 여객기에 의해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무너졌다. 이 장면은 CNN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됐고, 그날 이후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어느 남자 곡예사의 아름다운 공연이 있었던 장소가 아니라, 비극의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페팃의 이야기를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로 만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조차도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살았다고 한다. ‘데드라인’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저메키스는 “필리페 페팃의 이야기를 삽화가 많은 8페이지짜리 아동 도서”에서 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잠깐, 이게 정말 있었던 일이었다고?”

‘하늘을 걷는 남자’는 그렇게 2001년의 비극으로 인해 끊어졌던 아름다운 기억을 소환시키려는 작품이다. 영화는 작정하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듯, 자유의 여신상 위에 올라간 필리페 페팃(조셉 고든 래빗)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뒤에 놓고 관객에게 말을 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968년 파리에서 무명의 길거리 곡예사로 살던 시절, 그는 치과에서 진료를 기다리며 잡지를 보다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뉴욕에 건설될 것이라는 소식을 알게 된다. 그날 이후 월드 트레이드 센터 사이에 줄을 긋는 건, 그에게 가장 큰 꿈이 되었다. 미국에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프랑스 사람들과도 영어로만 말하고, 자신을 도와줄 이들과 만나는 한편, 끊임없이 줄타기를 연습했던 그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완공이 머지않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람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기 위해 완공 전에 공연을 해야한다고 판단한 그는 애인, 친구와 함께 뉴욕으로 향한다.

그날의 공포와 아름다움을 체험시키는 3D

2009년 아카데미 영화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기도 한 ‘맨 온 와이어’를 본 사람이라면 ‘하늘을 걷는 남자’의 이야기가 실제 기록과 거의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뉴욕으로 가기 전, 노트르담 성당 위에서 줄타기 공연을 했던 것이나,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곳곳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못을 밟아 발을 다쳤다는 것, 그리고 실제 건물에 잡입한 그와 동료들이 경비원의 눈을 피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모습들까지. 다큐멘터리 또한 필리페 페팃의 목소리를 화자로 했고, 상당부분의 장면들은 대역을 통해 재연했다. 검은 색 공연복을 입은 페팃이 외발자전거를 타고 파리를 누비는 모습이나, 연인인 애니와 함께 줄타기를 연습하는 장면들은 이미 ‘맨 온 와이어’가 재현한 모습들이다. 또 다큐멘터리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가 필리페 페팃이 쓴 책 ‘구름 위를 걷는 남자’(To Reach the Clouds)에 나와있다. 그럼에도 로버트 저메키스가 ‘하늘을 걷는 남자’를 만들려고 한 이유는 그날의 공연을 하나의 놀라운 풍경이나 놀라운 이야기만이 아닌 ’놀라운 체험’으로 묘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의 책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다큐멘터리도 매우 재밌게 보았습니다. 그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들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볼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관객들을 필리페 페팃과 함께 줄위에 올라게 하고 싶었어요. 그게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생각했던 모든 것입니다. 다른 어떤 매체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스펙터클을 만드는 것이었죠.” - '베니티 페어' 인터뷰

‘백 투더 퓨처’,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나’, ’포레스트 검프’, ‘콘택트’, ‘베오울프’ 등을 연출한 로버트 저메키스는 당대의 영화기술이 가진 가치를 극대화시켜 관객에게 전달해온 감독이다. 지난 2007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와 함께 3D영화 전문 제작사인 ‘이미지 무버스 디지털(IMAGE MOVERS DIGITAL)’을 만든 저메키스는 그때도 ‘폴라 익스프레스’와 ‘베오울프’ 등을 통해 구현했던 3D영화보다 더 3D영화다운 3D영화를 고민했다. ‘하늘을 걷는 남자’ 또한 당시 이미지 무버스 디지털을 통해 만들려고 했던 작품이었다.

“처음부터 3D영화를 목적으로 삼고 만들지 않은 3D영화를 관객에게 파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3D영화들의 대부분은 그냥 2D로 찍은 영화를 컨버팅 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런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3D로 기획되지 않은 영화들을 3D로 컨버팅해서 꽤 돈값을 하는 영화처럼 보이게 했던 거죠. 그래서 나는 정말 3D로 만들어야만 하는 영화는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필리페 페팃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을때, 이것이야 말로 3D로 만들어야 하는 영화에 가장 잘 맞는 이야기가 될 거라 생각했어요.” -'베니티 페어' 인터뷰

‘하늘을 걷는 남자’에서 저메키스가 품었던 ‘놀라운 체험’에 대한 야심은 페팃이 처음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옥상에 올라간 장면부터 구현된다. 옥상 밖으로 삐져나간 철근 위에 올라가 몸을 휘청거릴 정도로 센 바람을 맞는 이 순간, IMAX의 넓은 화면이 뉴욕의 풍광을 모두 끌어안는다면, 3D로 구현한 깊이감은 411.5m의 아득한 높이를 고스란히 체험시킨다. 그리고 드디어 페팃이 진짜 공연을 시작한 순간부터는 저메키스의 말대로 페팃과 함께 줄 위에 있는 것 같은 공포를 겪을 것이다. 페팃의 동작 하나하나에 숨을 고르고, 그가 드디어 줄을 건넜을 때 안도했다가, 그가 다시 줄을 건너려고 할 때 다시 경악했다가, 줄 위에서 앉고 누우며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는 순간에는 숨을 쉬기가 어려워질 정도다.

저메키스는 ‘데드라인’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환상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기술들을 시도했던 것이 바로 ‘하늘을 걷는 남자’를 위한 준비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가장 최근작이 가장 사랑스러운 작품이기 때문에 한 말로 보이지만, 적어도 이 시퀀스만 보면 그냥 하는 말로 들리지는 않는다. 또한 ‘하늘을 걷는 남자’가 단지 3D의 체험에만 몰두하는 영화가 아니라, 저메키스가 만든 ‘백 투더 퓨처’나 ‘왓 라이즈 비니스’처럼 영화적인 긴장감을 최대한 끌어올린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 이야기는 보면 볼수록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매우 매혹적인 캐릭터가 있는 강렬한 이야기였고, 또한 매우 놀라운 사기극이었다.” ‘하늘을 걷는 남자’의 진짜 긴장감은 본 공연이 아닌,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시작된다. 변장과 가짜 신분증, 그리고 요행을 이용해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잠입하는 과정, 그리고 그 와중에 발각되거나,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며 벌어지는 사건들까지. 영화에서 페팃과 그를 돕는 사람들의 모험은 ‘케이퍼’ 무비나 다름없는 리듬과 긴장감을 갖는다. 아마도 저메키스에게는 줄타기의 스릴만이 아니라 이러한 과정까지도 ‘체험’으로서의 가치에 부합하는 요소였을 것이다.

무모한 꿈도 지지받을 수 있었던 낭만의 시대

로버트 저메키스는 ‘하늘을 걷는 남자’를 통해 여러가지를 복원했다. 1974년 그날의 공연에 얽힌 기억과 필리페 페팃이 체감한 공포와 아름다움을 복원했고, 이를 위해 1970년대 뉴욕의 풍경과 지금은 사라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복원했다. 그리고 그가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복원하려 했던 건, 바로 과거의 낭만인 듯 보인다. 무모한 꿈을 꾸는 사람이 있고, 그 꿈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있고, 마침내 그가 꿈을 이루었을때 모든 사람들이 그를 축복할 수 있는 영화 속의 낭만은 2001년 9월 11일,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함께 무너졌으니 말이다.

'스파이더맨'의 예고편에는 나왔지만, 본편에서는 삭제됐던 장면

사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사이에 줄을 잇고자 했던 건 필리페 페팃만이 아니었다. 지난 2001년, 당시 '스파이더맨' 1편을 연출하던 샘 레이미 감독도 두 건물 사이에 거미줄을 이으려 했다. 스파이더맨이 건물 사이에 친 거미줄로 헬기를 붙잡는 이 장면은 실제 촬영됐지만(당시 예고편 보기), 9.11 테러 이후 삭제되었고 관련 이미지로 제작된 포스터만 마니아들 사이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중이다. 만약 9.11 테러 당시 공격받은 게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아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다면, 그래서 아직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남아있었고, 2015년에 와서 필리페 페팃이 그 위에 줄을 얹어 공연을 하려했다면 어땠을까? 2001년 9월 이후, 테러에 신경증을 갖게된 미국 사회가, 흑인 소년이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기만 해도 총을 쏘는 미국 경찰이 과연 그가 줄에서 떨어질까봐 전전긍긍하며 기다려주었을까? ‘하늘을 걷는 남자’는 필리페 페팃의 무모한 도전이 그 시대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필리페 페팃은 한 마디로 그냥 미친 사람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안전장치 없이 줄타기를 하고 싶다는 꿈을 꾸는데, 심지어 그 일이 너무 불가능한 것이라 더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니... 그리고 그를 도왔던 사람들은 단지 페팃보다 조금 덜 미친 사람들이었다. ‘맨 온 와이어’ 속의 실제 인물들이나, ‘하늘을 걷는 남자’에서 페팃을 돕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이 일에 뛰어든 이유는 페팃의 도전이 매우 멋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페팃의 계획을 “매우 반사회적인 행동”이라고 말하지만, 그래서 이 일에 매혹된다. 1968년 파리에서 꿈을 키운 페팃에게 그와 비슷한 조력자가 모였다는 건, 1968년이라는 시대상에서도 납득할 만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무모한 공연에 가해진 당시 미국 법원의 처벌이 “센트럴 파크에서 어린 아이들을 위해 공연할 것”이었다는 점도, 시대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시 경찰이 그에게 적용한 혐의는 무단침입과 풍기문란이었다.) 페팃은 공연에 성공한이후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옥상 철근에 자신의 서명을 남길 수 있었고, 평생 동안 이 옥상을 마음껏 방문할 수 있는 통행증을 얻었다. 물론 그의 공연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예술적인 범죄

하지만 무엇보다 ’하늘을 걷는 남자’가 그 시대의 낭만을 드러내는 궁극적인 방법은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필리페 페팃은 왜 월드 트레이드 센터위에서 줄타기를 해야만 했는가? 저메키스의 전작 인물들 가운데 필리페 페킷과 가장 가까운 인물은 ‘포레스트 검프’일 것이다. 사람들은 포레스트 검프에게도 ‘왜 달리냐’고 물었지만, 그는 오로지 달리는 남자이고, 그냥 달리는 남자이고, 달려야 하기 때문에 달려야 하는 남자였으며 그래서 관객들 또한 그에게 “Run!! Run!!!! Forrest run!!!”이라고 외쳤다. ‘맨 온 와이어’에 따르면, 실제 필리페 페팃은 건물 아래로 내려와 만난 기자들이 “왜 저 위에서 공연을 하려 했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는 게 어이없었다고 한다. “내가 한 것은 뭔가 엄청나고 신비한 것이었는데 그들이 정작 하는 질문은 ‘왜?’ 였어요.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의 미덕 중 하나는 ‘왜’라는 게 없다는 거죠.” 저메키스 감독 또한 ‘데드라인’과의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는 “왜? 라는 질문에 만족할 만한 대답이 없다는 점에서 복잡한 정서를 갖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점이 바로 필리페 페팃의 공연을 “20세기에 가장 예술적인 범죄라고 불리게 만든 이유”라고 덧붙였다.

“필리페 페팃은 아나키스트 적인 면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는 자신의 공연을 예술적인 쿠데타라고 불렀죠.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된 이유 또한 그는 단지 그가 해야했기 때문에 그런 공연을 했다는 점에 있어요. 누구나 자신을 매우 창조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어합니다. 케익을 굽거나, 노래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말이에요.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들도 설명할 수 없죠. 그냥 해야되니까 하는 거에요. 화가에게 그가 그린 그림에 대해서 왜 이걸 그렸냐고 묻는거랑 똑같아요. 페팃은 왜 그가 이런 공연을 했는지에 대해서 답할 수 없었어요. 그는 단지 나는 내 꿈을 쫓아갔을 뿐이라고 말했죠. 그리고 나는 바로 이 점이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킬 거라고 생각했어요.”

촬영현장의 조셉 고든 레빗,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그리고 필리페 페팃

’하늘을 걷는 남자’를 본 관객이라면, 실제 필리페 페팃이 2001년 9월 11일, 그날의 뉴스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할 것이다. 영화 속 대사에 따르면, 당시 뉴욕의 사람들은 페팃의 공연을 본 후, 월드 트레이드 센터라는 건물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의 공연이 전 세계 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페팃 덕분에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을 상징하는 건물이 되었다. 말하자면 영화에서 필리페 페팃이 밟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과 그는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미국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동급의 위치를 갖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9.11의 테러범들이 당시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공격한 이유 또한 바로 그런 이유였다. 많이 안타까워 했을 거라 짐작할 수 있지만, 인터뷰에 따르면 그의 감정은 그보다 더 복잡한 것이었다. 지난 2014년 6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페팃은 “9.11 당시 빌딩이 파괴되는 모습을 보는 게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였는가”란 질문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나는 내가 그때 가졌던 감정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매우 사적인 관계의 문제에요. 그리고 수천명의 사람들의 사라졌던 그 사건에서 내가 어떻게 그 건물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겠어요? 나는 그것들을(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사람들의 무게) 비교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 건물들은 나에게 만큼은 분명 ‘사람’이었어요.” ‘하늘을 걷는 남자’는 그가 차마 입밖으로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대신 드러내준 영화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 필리페 페팃이 법원을 나온 이후, 가장 처음 했던일

‘하늘을 걷는 남자’에는 나오지 않지만, ‘맨 온 와이어’에서는 페팃 스스로 고백하는 부분이다. 센트럴 파크 공연을 하라는 판결을 받은 그는 법원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된다. 그런데 그때 한 여자가 다가와 자신에 포옹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당신을 환영하는 첫 상대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나는 좋소, 어디든 갑시다’라고 했지요. 집에서는 페팃의 애인과 함께 가담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당시 페팃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물침대 위에서 계속 섹스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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