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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의 재구성 : 한일 정상회담은 왜 시작되기도 전에 김빠진 회담이 됐나

  • 허완
  • 입력 2015.10.29 10:16
  • 수정 2015.10.29 10:37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speaks during a trilateral meeting with President Barack Obama and Japanese Prime Minister Shinzo Abe, Tuesday, March 25, 2014, at the US Ambassador's Residence in the Hague, Netherlands. (AP Photo/Pablo Martinez Monsivais)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speaks during a trilateral meeting with President Barack Obama and Japanese Prime Minister Shinzo Abe, Tuesday, March 25, 2014, at the US Ambassador's Residence in the Hague, Netherlands. (AP Photo/Pablo Martinez Monsivais) ⓒASSOCIATED PRESS

다음달 2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에서 열리는 회담인 탓에 별다른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강조해왔던 '일본군 위안부 사과' 문제는 풀리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박근혜 대통령, 느닷없이 '한일 정상회담'을 제안하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성의있는 조처'가 없다면 일본과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일본은 별다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정상회담 없는' 관계가 3년 넘게 이어졌다.

그러던 중, 3년6개월 만에 한일 정상회담이 갑작스레 열리게 됐다. 회담 얘기는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꺼냈다. 그런데 그 맥락이 좀 이상했다.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서 연설하는 모습. ⓒAP

이런 상황은 박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이던 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한·일·중 3국 정상회의가 11월초에 열릴 예정이고,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그 기회에 가질 수 있다”며 한-일 정상회담을 기정사실화한 탓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진전 여부와 관계없이 일본과 정상회담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한겨레 10월28일)

박 대통령이 지난달 방미 과정에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먼저 언급한 것도 패착이었다. 미국 내 한국의 ‘중국경사론’ 등 우려 여론을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였지만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한일 실무 협상에선 지렛대가 사라졌다. 결국 위안부 문제는 진전이 없고, 이도 저도 아닌 정상회담이 열리게 생겼다. (한국일보 10월28일)

일본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일본의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 반면 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에 진전이 있다면 의미있는 정상회담이 될 것'이라며 한일 정상회담 이야기를 덜컥 꺼냈다. 위안부 문제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왔던 기존 입장에서 사실상 후퇴한 것.

대신 정부는 회담을 앞두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 같은 전향적 입장을 밝혀줄 것을 일본에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회담 일정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반응은 차가웠다.

<마이니치신문>은 27일 “총리가 다시 한번 사죄하는 일은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소개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일본이 한국의 요구를 거부하자 “오찬을 생략하고 회담 시간을 30분으로 하는 스케줄을 제시했다”는 한국 정부의 반응도 소개했다. 이에 앞서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한국은 (위안부 문제) 해결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국면에는 들어서 있지 않다”는 싸늘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한겨레 10월27일)

한일 양국은 그동안 의제를 조율하며 위안부 문제의 해법 등 과거사 문제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위안부 문제에 일본은 그동안 할 만큼 했고, 법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략)

한일 양국의 사전 의제 조율 과정에서 이처럼 위안부 문제의 해법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으니, 회담이 열려도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CBS노컷뉴스 10월29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8일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응을 묻는 질문에 "박근혜 대통령과 그런 과제를 포함해 솔직하게 의견 교환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한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체조건을 걸면 안 된다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 변화가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종래 방향에 전혀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3년6개월 만에 만나서 밥도 안 먹는 정상회담

상황이 이렇다보니 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김빠지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3년6개월 만에 열리는 회담인데 같이 밥 먹는 일정도 없고, 공동 기자회견도 없다. 회담을 한다고 발표하는 날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긴 쉽지 않다”(정부 당국자)는 말이 함께 나왔다. 한·일 정상회담 얘기다.

(중략)

청와대는 일본 측이 요청한 정상 간 오찬 회동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부 보도와 달리 회담 시간은 30분이 아니라 "충분히 시간을 가질 것”(정부 관계자)이라고 한다. (중앙일보 10월29일)

그러나 위안부 문제를 놓고 그동안 양측이 정상회담 협의 과정에서 보여준 '기싸움'을 감안할 때 일본 측으로부터 획기적인 제안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현재로서는 우세하다.

일본 측으로부터도 기대할만한 신호는 나오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10월28일)

일각에선 한·일이 ▲일본 총리의 직접 사과 ▲주한 일본 대사의 사죄 편지 전달 ▲일본 정부 예산을 통한 피해자 배상 등이 포함된 이른바 '사사에안(案)'을 참고해 절충점을 찾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일본이 이번에 '획기적인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이다. (조선일보 10월28일)

대책도 없이 막다른 길로 갔다?

결국 임기 내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성의있는 조치'를 요구하며 회담을 거부해오다가, 뒤늦게 등 떠밀리듯 성과도 장담할 수 없는 회담을 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베 총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위안분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경우 한·일 정상회담은 왜 했느냐는 비판 여론이 고조될 수 있다.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이 움직이지 않을 경우 우리 정부는 차선책으로 안보 이슈로 한·일 정상회담 개최의 명분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 북핵문제 공조는 한·중·일 정상회담 의제이기도 해서 이것만 가지고는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명분이 약하다는 평가다. (매일경제 10월27일)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브리핑에서 "한일(관계) 발전 방안 및 상호 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라고 짤막하게 밝혔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비롯해 한일 양국간 현안에 대해 심도있는 의견 교환이 예상된다"는 원론적 설명에 그쳤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와의 별도 오찬 계획도 없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에도 한일관계의 완전한 정상화에는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고, 자칫 '빈손' 논란 등으로 여론이 악화하면 한일관계가 다시 뒷걸음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연합뉴스 10월28일)

권대열 조선일보 정치부장은 칼럼에서 "외교부는 막다른 골목을 다 들어가서 몸으로 확인한 뒤에야 '안 되겠다. 되돌아 나가자'고 하는 셈"이라며 외교가에서 회자되는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가에서는 "정권 초에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가 올라갔는데 이를 본 대통령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뒤로는 누구도 정부 내에서 정상회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라는 말이 정설(定說)처럼 돈다. 대통령 심기 거스를까 봐 막다른 길인 줄 알면서도 갔다는 얘기다. (조선일보 10월29일)

한편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박 대통령이 당당한 자세로 회담에 임해 짚을 것은 짚고, 할 말을 다 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29일 연합뉴스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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