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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발견' (1) 하동복집 : 푸아그라 저리가라, 내가 바로 아귀다

  • 원성윤
  • 입력 2015.10.29 08:10
  • 수정 2015.10.29 09:24

전국 팔도의 착한 식당을 소개하는 《식당의 발견》 시리즈 그 두 번째 편(사진 한상무, 글 원성윤)이다. 제주도의 식당을 소개한 전편에 이어 통영, 진주, 남해, 사천의 식당을 찾았다. 굵직굵직한 관광도시에 밀려, 평범한 시, 군으로 치부되곤 했지만 하나 하나가 전통과 역사가 깃든 유서 깊은 지역이다. 조선 해군의 중심 도시이자, 충무공의 넋이 깃든 통영. 경남 행정의 중심지이자 교육, 교통의 요지인 진주. 6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남해. 그리고 우리에게 삼천포로 더 잘 알려진 사천까지. 『식당의 발견: 통영, 진주, 남해, 사천 편』에서는 해당 지역의 대표 식자재를 다루는 식당들을 소개한다. 책 '식당의 발견'에 소개된 17곳의 식당 가운데 8곳을 선정,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연재한다.

# 하동 복집의 탄생

하동복집의 역사는 195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현숙 사장의 어머니 변숙악 씨가 진주 중앙시장에서 하동복집을 열게 된다. 변 씨의 고향이 ‘하동’이라 ‘하동댁’이라고 불렸다. 60여년을 변함없이 ‘하동복집’이라는 상호로 장사를 하고 있다. 아귀와 복어는 이집의 주된 메뉴이다.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주현숙 사장의 아버지는 일본으로 강제징용을 끌려갔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아귀와 복 요리를 어깨 너머로 배웠다. 광복 이후 진주로 돌아와 부인과 함께 식당을 차렸다.

시장 일은 고되고 힘들었다. 조리대와 싱크대가 변변치 않던 시절, 음식과 설거지를 하느라 어머니의 허리는 이미 40대에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그땐 그런 어머니가 밉고 보기싫었다. 자신은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식당 일이라면 몸서리가 쳐졌다. 하지만, 그녀는 하동복집 사장으로 18년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난 7월25일, 88세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하동복집’은 삼천포(현 사천) 무려 60년 동안 단골인 해강수산을 통해 아귀를 공급받고 있다. 이 집 또한 2대째 수산업을 해오고 있다. 60년을 거래했기에 아귀에 대한 믿음은 굳건하다. 좋은 생아귀는 겉모습만 봐도 안다. 눈이 반짝이고 선명하다. 색깔은 푸른 빛이 도는 것이 좋다. 싱싱하지 않은 아구는 눈빛이 튀튀하다. 검은빛이 돌며 탄력이 없다. 아귀는 못생긴 생선으로 대표 명사로 일컬어져 왔다. 떡 벌어진 아래턱에 무시무시한 이빨이 인상적이다. 머리가 몸의 절반 가까이 차지할 정도다.

오죽하면, 선조들이 이승에서 욕심이 많았던 자가 저승에서 굶주림의 형벌을 받는 아귀(餓鬼)를 그대로 따와 이름을 붙였을까. 그물에 걸리면 재수가 없다며 바다에 던져 버렸다고하여 ‘물텀벙'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실제로 인천에는 ‘용현물텀벙거리’가 있다. 지금처럼 귀한 대접을 받는 아귀에게는 흑역사인 셈이다. 하지만 아귀의 간은 거위 간인 푸아그라와 더불어 세계적인 별미로 대접받는 위치에 우뚝 올라섰다.

#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음식은 전부 맛 봤어예. 혹시 이상하나 싶어서”

주현숙 사장은 진주보건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25년간 간호사로 근무했다. 부산대 등 대학병원에서도 일했고 시골의 보건소 진료소장도 했다. 종합병원에서 간호과장도 10년을 하며 식당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나는 절대 식당 일을 안할기다.”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식당에 밀린 설거지부터 시켰던 어머니가 너무도 미웠다. 그랬던 그녀가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어머니가 쓰러졌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46살. 일주일도 고민하지 않았다. 가업을 이어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옛날에는 장사치를 무시했다. 아입니까. 그런데 사람들 인식도 많이 바뀌고 해서...내가 병원에서 간호사를 하면 남의 살림을 살아주는 건데, 식당을 하면 내것을 하는 거니까. 그래서 결심을 했지요.”

그러나 식당 일은 녹록지 않았다. 어머니 입맛에 인이 박인 식당 손님들은 하나같이 사장을 나무랬다. “너그 어무이는 이런 맛이 아니었는데” “김치를 이리 담가 가지고 되긋나” 손님 한분 한분이 다 시어머니였다. 잔소리가 잦아드는데 무려 5년이나 걸렸다. “휴, 힘들었지예.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음식은 전부 이상한지 맛보고 그랬어예. 엄청나게 노력했어예.”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 동시에 가장 큰 경쟁자는 바로 어머니였다.

# 아귀수육

‘하동복집’의 진정한 별미인 ‘아귀수육’은 생아귀를 맑은 물에 삶아서 건져내는 것이 레시피의 8할이다. 소금을 넣고 살이 풀어지기를 약15분 정도 기다리면 아귀수육이 모습을 드러낸다. 소금을 넣는 건 간을 맞추려는 의도도 있지만, 단백질 덩어리인 아귀의 단단한 살을 탄력있게 만들어주려는 이유도 한 몫 한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우귀수육이 등장했다. 조명을 들고, 후딱 사진을 찍었다. 상무가 말한다. “야~! 이건 소주랑 먹으면 기가 막힌데, 촬영 때문에 참는다.” 이날 취재는 사실 즉흥적으로 이뤄졌다. 상무의 10년 단골집이라 그의 보증과 장담 속에 무대포로 찾아온 것.

서울에는 많은 아귀집들이 있다. 마산이 본류인 아귀찜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들이 많다. 콩나물이 너무 많아 ‘아귀살을 찾아 뒤적이다 입맛만 다시고, 밥만 볶아 먹고 온다’는 불평을 종종 듣곤 한다. ‘아귀는 먹을 게 없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하동복집’은 갓 잡은 아귀의 참맛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푸짐한 아귀살 그 자체로 넉넉했고, 아귀 간의 진한 맛은 두고두고 생각났다. 한 손님은 ‘마치 미원을 친 것처럼 혀를 끌어당긴다’고 표현했다.

  • 메뉴 : 아귀수육(소) 35,000원, 복국 10,000원
  • 전화번호 : 055-741-1410

책 '식당의 발견'(통영, 진주, 남해, 사천의 맛)은 전국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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