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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가까이 보았을 뿐입니다 | 양면의 얼굴을 보는 경제학

미국 중남부 한글학교 연합 캠프에서 중고등학생 아이들을 위하여 한국경제 발전의 역사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자랑스런 경제발전을 가져온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등의 이름을 아이들에게 꼭 기억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제게 신신당부하였습니다. 보내준 제 강의 노트를 보고서는 다음 날 숨을 헐떡이듯 이메일이 날라 왔습니다. 청소년들이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한국의 긍정적인 측면만 소개해야 한다고 합니다. 다른 이야기는 정치적이므로 빼달라고 합니다.

  • 김재수
  • 입력 2015.10.30 12:38
  • 수정 2016.10.30 14:12

미국 중남부 한글학교 연합 캠프에서 중고등학생 아이들을 위하여 한국경제 발전의 역사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처음하는 강의를 위해서 이런 저런 자료를 찾고 읽어 보았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진을 붙이고 이름을 쓰는데,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찬란한 경제발전의 역사와 오욕으로 점철된 역사가 뒤섞여 오롯이 제 몸을 만들었다는 인식을 하게 합니다. 한글학교의 교장선생님들께서 한국의 자랑스런 경제발전 역사를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 달라고 제게 신신당부 합니다.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등의 이름을 아이들에게 기억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경제학이 보는 얼굴

일인당 GDP 80불, 아프리카의 나라들보다도 가난했던 나라가 삼사십년만에 부자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표정은 신기하고 뿌듯해 합니다. 1970년대까지 설탕가공 및 섬유산업을 주업종으로 하던 삼성이 이제 반도체, 텔레비전, 스마트폰 등에서 세계 제일의 기업이 된 이야기를 들려주니, 자랑스러워 하는 표정도 역력합니다.

나이 지긋하신 한글학교의 교장선생님들은 1950-60년대의 영상을 함께 보며 깊은 감회에 잠깁니다.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 노래를 반가워 합니다. 이제 그 지저분하고 좁은 공간에서 하루에 16시간씩 일해야 했던 십대 여공들의 얼굴을 봅니다. 그들을 위해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 열사의 얼굴을 봅니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몹쓸병에 걸려 사그러져야 했던 젊은 여공들의 얼굴도 봅니다. 경제학은 양면의 얼굴을 보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에 따라 지불한 대가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우울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울함을 딛고, 불굴의 정신으로 최적을 생각해 보자며 합리성을 깨우는 학문입니다.

미리 보내드린 강의 노트를 불편하게 느꼈던지, 제 노트만 캠프 자료집에도 끼어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얼굴을 마주하자,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산 누출사고후 "나는 돈만 많이 벌면 되잖아"라고 말한 삼성반도체 사장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니 탄식이 터져 나옵니다. 가난을 벗어나 중산층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며, 자신의 모습인듯 느꼈을까요.

경제학이 말하는 합리적 사고란 한계편익과 한계비용을 같게 만들어서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라 설명해 주었습니다.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말해주었고, 지금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 비정규직 비율 2위, 산업국가 중 행복지수 꼴등이라는 사실도 말해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더 부자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하는지, 더 행복해지기 위해 힘써야 하는지 경제학적 사고방식으로 대답해 보라 하였지요. 더 부자가 되기 위한 한계비용이 한계편익보다 크다고 대답하더군요. 한계효용 균등의 법칙을 따른다면, 이제는 행복해지기 위해 힘쓰자고 대답합니다.

마지막으로 김구 선생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보다 크게 자라길

자랑스런 경제발전을 가져온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등의 이름을 아이들에게 꼭 기억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제게 신신당부하였습니다. 보내준 제 강의 노트를 보고서는 다음 날 숨을 헐떡이듯 이메일이 날라 왔습니다. 청소년들이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한국의 긍정적인 측면만 소개해야 한다고 합니다. 다른 이야기는 정치적이므로 빼달라고 합니다.

얼굴을 가까이 보았을 뿐입니다. 승자들의 얼굴뿐만 아니라 희생당한 이들의 얼굴을 마주 보았을 뿐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 역사를 품어내고 역사보다 더 큰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 2013년 여름, 미국 중남부 한글학교 캠프 "한국경제의 성장"에 대한 특강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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