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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간의 미국 서부 일주 ④]솔트레이크시티, 길찾기 비법은 바로 덧셈

유타는 미국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우리에게는 덜 알려진 곳이지만, 알면 알수록 참 묘한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구세주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는 다른 기독교 종파들과 달리, '살아생전에 자신이 행한 행동'을 중요시하는 교리 덕분인지 이곳은 미국의 다른 곳에 비해 범죄율도 현저히 낮고 사람들도 친절하다. 솔트레이크시티에 머무는 동안 나는 종종 늦게까지 홀로 쏘다니다가 밤 10시가 되어서야 숙소에 들어가곤 했는데, 여자 혼자 늦은 밤 인적이 드문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도시는 미국 내에서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 임은경
  • 입력 2015.10.30 13:17
  • 수정 2016.10.30 14:12

▲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서인지 저녁 7시에도 아직 거리가 환하다. ⓒ 임은경

솔트레이크시티로 돌아오니 벌써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이다. 박물관이나 다른 관광지는 이미 문을 닫았을 것이므로 시내에 위치한 템플 스퀘어에 가보기로 했다. 종혁 씨는 피곤하다고 해서 나만 그 앞에 내리고, 구경이 끝나면 혼자서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템플 스퀘어는 전 세계 모르몬교의 총 본산으로, 19세기 중반에 브리검 영의 지도하에 유타로 이주해 정착한 모르몬교도들이 1853년부터 40여년에 걸쳐 건축한 솔트레이크 템플로 유명하다.

여섯 개의 첨탑이 있는 64미터 높이의 솔트레이크 템플은 한눈에도 당당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으나, 종교상의 이유로 모르몬교도가 아니면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대신 정문 옆에 있는 방문자 센터에 정교한 내부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우아한 가구로 채워진 응접실과 대강당 등 템플 내부는 19세기식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오직 신념의 자유를 찾아 사막 한복판에 도시를 세우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 초기 정착자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템플은 그러한 온갖 고난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한 그들의 종교적 정신의 놀라운 상징물인 셈이다.

템플 모형 옆에는 성전 건축에 사용된 돌과 그 당시 도구들, 그리고 '산을 움직이는 믿음(Faith to Move Mountains)'이라는 마태복음의 한 구절이 쓰여 있다. 당시 모르몬교도들은 종교 박해를 피해 동부의 아이오와 주에서 시작해 네브래스카 주, 와이오밍 주를 거쳐 유타의 솔트레이크 계곡에 이르기까지 장장 2100km를 이동했다. 이 길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 '모르몬 트레일(Mormon Pioneer National Historic Trail)'로 지정되었다.

▲ 세계 100대 건물 중 하나로 꼽히는 솔트레이크 템플(오른쪽)과 합창단으로 유명한 태버내클(왼쪽 돔형 건물)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공식사이트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나 말이 끄는 마차도 없이 손수레에 짐을 싣고 걸어서 그 머나먼 길을 왔다. 250명이 이동 중에 사망했다고 하니 그 고난의 정도를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개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솔트레이크 계곡을 막아 댐을 만들고 물을 확보해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고 지금의 삶의 터전을 건설했다.

템플 스퀘어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모르몬 태버내클 합창단(Mormon Tabernacle Choir)의 연주였다. 너무도 친절한 안내 부스의 안내원이 소개해준 대로 따라갔더니 백여 명의 관광객들이 모여 서 있었다. 템플 스퀘어 한복판에 위치한 타원의 돔형 건물인 대 예배당(Tabernacle) 앞이었다. 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하는 합창단의 공개 리허설 공연 관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템플 스퀘어, 초기 모르몬 개척자 정신의 상징

마침내 대예배당의 문이 열리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입장했다. 그런데 그냥 들여보내지 않고 입구에서 소지품 검사를 한다. 나도 가방 속을 열어 보여주고서야 예배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8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예배당 내부는 크기는 했지만 별다른 장식 없이 밋밋했다. 그래서인지 앞 벽 전체를 차지한,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목재 파이프 오르간의 모습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 지휘자를 중심으로 2~300명쯤 되는 남녀 합창단이 무대 양쪽으로 자리 잡고 성가 합창을 연습 중이었다. 소리가 아름답기는 했지만 역시 리허설인지라 지휘자가 자꾸만 노래를 끊고 이런저런 지시를 하기에, 이내 일어서서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 시간에 다른 건물을 구경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 합창단이 역사가 오래되고 아름다운 화음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때의 행동이 조금 후회되긴 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바로 외국 여행의 맛인 것을. 그 시각, 그 장소에서 손을 뻗어 붙잡을 수 있는 것만 내 것일 뿐, 그 밖의 것은 죽기 전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지 영영 알 수 없다.

▲ 모르몬 태버내클 합창단 공연 모습. 뒤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공식사이트

고개를 들어 보니 멀리 조명 속에 빛나는 주 의사당 건물 외에도 압도적으로 규모가 크고 위풍당당한 건물들이 템플 스퀘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스퀘어를 나가서 길을 걷다가 보니 이 건물들은 모르몬교 컨퍼런스 센터, 교회 본부, 조셉 스미스 기념관 등 모두 모르몬에서 지은 것들이었다. 이중 교회 본부는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고 한다.

템플 스퀘어 북문을 마주보고 있는 컨퍼런스 센터에는 옥상 정원이 있는데, 이 옥상 정원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센터 건물 벽을 마치 폭포처럼 떨어져 내려와 템플 스퀘어와 주변 건물들 사이로 흐르는 물길을 '도시의 시냇물(City Creek)'이라고 부른다. 시티 크릭 주변에는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어서 가족과 아이들이 나와 뛰놀기에 좋아 보였다. 밤이 되자 주변에 켜진 은은한 조명이 분위기를 더한다. 시냇물을 따라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한낮의 더위를 깨끗이 씻어주었다.

여름에 산속 계곡이 시원하듯이 이 시티 크릭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도시의 시냇물은 잔디밭을 지나 길 건너 메이시스(Macy's) 백화점이 있는 쇼핑 거리까지 계속 이어진다. 아름다운 조명과 밤공기를 가르는 시원한 물소리, 그리고 푹신한 잔디밭. 솔트레이크시티 전체가 다 그랬지만, 특히 이곳은 언제까지나 머물고 싶을 만큼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었다.

템플 스퀘어 일대는 모르몬의 왕국

그러고 보니 이 일대는 그야말로 모르몬의 왕국이라 할만 했다. 템플 스퀘어를 중심으로 그 주변 일대의 건물들이 모두 모르몬교에서 세운 것들이었다. 바로 옆에는 역시 모르몬교와 관련 있는 자이언 뱅크(Zion Bank)의 커다란 본사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유타 내에서는 어딜 가나 미국의 중앙은행들보다 이 Zion Bank가 훨씬 많았다. 템플 스퀘어 정문 맞은편 건물 1층에 깔끔하게 생긴 데세렛 서점(Deseret Bookstore)이 눈에 들어오기에 들어갔는데, 그곳도 일반 서점이 아니라 모르몬교 관련 서적과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였다.

데세렛 서점 역시 근처에 '데세렛 북 컴퍼니' 빌딩을 갖고 있는 모르몬교의 사업체 중 하나이다. 데세렛은 '부지런한 꿀벌'이라는 뜻인데 '모르몬의 영토'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유타 정착 초기에 모르몬들은 이 지역에 자신들의 정치적, 종교적 왕국인 Deseret을 세우기 위해 세력권을 확장해 나갔으나, 지금은 모두 미국 영토에 편입되고 말았다.

▲ 메이시스 백화점 등이 입점한 시티 크릭에 있는 쇼핑 센터 모습

유타는 미국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우리에게는 덜 알려진 곳이지만, 알면 알수록 참 묘한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구세주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는 다른 기독교 종파들과 달리, '살아생전에 자신이 행한 행동'을 중요시하는 교리 덕분인지 이곳은 미국의 다른 곳에 비해 범죄율도 현저히 낮고 사람들도 친절하다. 솔트레이크시티에 머무는 동안 나는 종종 늦게까지 홀로 쏘다니다가 밤 10시가 되어서야 숙소에 들어가곤 했는데, 여자 혼자 늦은 밤 인적이 드문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도시는 미국 내에서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유타는 미국에서 몇 안 되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주이기도 하다. 교육환경 또한 좋아서 유타대학교로 유학을 오는 한인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외국인에게도 저렴한 학비로 우수한 교육을 제공하기 때문이란다. 시내 전차인 트랙스(Trax)를 타다가 만난 한국인 유학생이 들려준 얘기다. 유타 주립대학교는 공과대학과 의과대학(특히 안과)이 유명하고, 솔트레이크시티 외곽에 위치한 브리검영 대학교는 사립인데 역시 명문대로 이름이 높다.

뜨거운 여름과는 반대로 겨울에는 세계 최고의 강설량을 자랑하는 솔트레이크시티는 세계적인 스키·레저 천국이기도 하다. 2002년에는 이곳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되기도 했다. 이때 건설한 올림픽 경기장들이 모여 있는 인근의 '파크시티(Park city)'는 매년 1월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제인 선댄스 영화제가 개최되는 도시다. 시간마저 느리게 흐를 듯 평화로운 이곳 유타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과 브라이스 캐년, 자이언 캐년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도 유명하다.

여행 중에 만난 한 현지인은 유타 주 전체로 따지면 모르몬교도의 비율이 90% 이상이지만, 대도시인 솔트레이크시티는 외부인의 유입이 많기 때문에 5~60% 정도만 모르몬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에센셜 오일 산업이 성장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자연에 가까운 생활 방식을 추구하고, 이것은 음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우리는 전날 이용했던 '스프라우트' 슈퍼마켓이나 '홀푸드'(Whole Food, 미국 전역에 체인점을 운영하는 유기농 마트)처럼 상대적으로 '좋은 음식'을 파는 상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곳도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이나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이 없지는 않지만 미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편이다. 이전에는 술, 담배가 주법으로 완전히 금지되어 있었으나 점차 비 모르몬들이 들어와 섞이면서 이제는 제한적으로 상점에서 팔고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주민들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대신 그 시간을 가족과 함께, 혹은 밖으로 나가서 천혜의 자연 속에서 레저를 즐기며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낸다.

100씩 더하며 걸어가니 집이 나왔다

시티 크릭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대충 집 쪽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걸을수록 점점 낯선 동네가 나오는 것만 같다. 결국 지나가는 여학생을 붙잡고 길을 물었다. 미국의 도시는 도로 구획이 바둑판처럼 되어 있어서 거리 이름만 알면 길 찾기가 쉬운 편이다. 그런데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길 찾기는 그중에서도 누워서 식은 죽 먹기였다.

도시의 중심인 템플 스퀘어를 기준점으로 한 블록을 갈 때마다 동쪽 방향은 100East, 200East, 300East......, 서쪽은 100West, 200West, 300West......, 이런 식으로 숫자만 100씩 더하면 되었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는 900East와 200South가 겹치는 곳이었다. 유타대학교 학생인 듯한 여학생은 이처럼 간단한 이 도시의 길 찾기 원리를 친절하게 설명해주었고, 나는 난생 처음 보는 충격적으로 쉬운 길 찾기 방법에 어이가 없는 나머지 물개박수를 치고 말았다.

▲ 지도 왼쪽 상단의 템플 스퀘어를 원점으로 한 블록씩 갈 때마다 100씩 더하면 거리 이름이 된다.

여학생의 설명대로 한 블록 갈 때마다 100씩 더하며 걸어가니 이내 집이었다. 시내 중심가까지 차로 5~10분 정도 걸렸으니 걸으면 한 시간 이내일 것이라는 내 짐작이 맞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 숙소는 참 잘 잡았다. 걷기가 피곤하면 시내버스를 탈 수도 있고, 게다가 도심을 운행하는 2량짜리 전차인 트랙스(trax)는 무료다.

(전차가 무료라니. 처음에는 좀 놀랐다. 솔트레이크시티 트랙스는 시설도 깨끗하고 도심 곳곳을 빈틈없이 연결하는 여러 개의 노선이 있는데다 환승도 매우 편리하다. 그냥 갈아타는 정류장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해당 전차가 오면 올라타면 된다. 이튿날에는 이걸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봤다.)

시내 중심가에 매리어트 등 유명 호텔들이 좀 있긴 하지만 우리가 이용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다른 컨벤션 참석자들처럼 차로 30~40분 이상 떨어진 외곽 도시의 모텔에 숙소를 잡았더라면 아침저녁으로 숙소와 컨벤션장을 오가는 데만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것이고, 지금처럼 여유 있는 저녁 관광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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