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프린스턴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의 책 한국판 '왜곡번역'을 확인하다

  • 허완
  • 입력 2015.10.26 07:56
  • 수정 2015.10.26 08:00

국내에 번역·출판된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의 책 '위대한 탈출'의 왜곡 번역 사실이 확인됐다. 최근 제기된 한국판 왜곡·조작 번역 논란에 대해 디턴 교수와 미국 프린스턴대출판부 측은 재번역, 전량회수 등의 강력한 조치를 한국 출판사인 한경BP에 요구했다.

프린스턴대출판부는 지난 22일 성명에서 "디턴의 책 '위대한 탈출' 한국판이 원문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은 변경이 이뤄진 채 출판됐다는 사실을 최근 인지했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경BP가 펴낸 한국판에는 원문에 대한 변경과 생략이 있었고, 이 책을 명백하게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대조되는 저작으로 위치 지으려는 한국인 경제학자의 서문을 담고 있다. 이러한 변경과 새로운 서문은 디턴 교수나 프린스턴대출판부의 심사나 동의 없이 이뤄졌다.

한경BP는 현재의 한국판에 대한 판매 중단에 동의했다. 디턴 교수의 원문을 정확하게 반영하도록 하기 위해 한경BP는 새 번역본을 내놓을 것이며, 이는 독립적으로 검토될 것이다. 또한 새 번역본에는 이 책이 불평등에 대한 다른 저작들에 대한 반박으로 읽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서문이 제거될 것이다.

한경BP는 왜곡 번역 논란에 대해 지난 20일 "편집상 수정(editorial change)"일 뿐이라며 "내용을 왜곡하거나 바꾼 게 없음을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 "한경BP는 이같은 논란에 대해 저작권사를 통해 디턴 교수에게 설명했고 다음 판 인쇄때 수정할 것을 약속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한경BP가 번역, 출판한 앵거스 디턴 교수의 '위대한 탈출' 표지.

그러나 프린스턴대출반부의 성명을 통해 3가지 사실은 분명해졌다. 이건 '편집상 수정'이었다는 해명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1. 한경BP는 중대한 왜곡 번역을 자행했다.

2. 한국판에 실린 현진권 자유경제원장의 서문은 엉터리였다.

3. 앵거스 디턴이 토마 피케티의 책에 대한 반박이라는 해석은 틀렸다.

프린스턴대출판부가 밝힌 내용 중 눈에 띄는 건 새로운 번역본이 '독립적으로 검토될 것'이라는 대목이다. 이는 '우리가 번역본의 정확성을 직접 확인 및 검증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저자와 출판사 측이 이번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경BP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한국경제신문은 물론, 다른 경제신문 및 보수언론들은 왜곡 번역된 디턴 교수의 이 책을 인용해 '불평등이 꼭 나쁜 건 아니다',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한다', '불평등의 해결책은 성장 뿐이다', '성장의 힘을 믿어라' 같은 주장들을 기사와 칼럼, 사설 등으로 소개해왔다.

한국경제신문 10월14일자 신문 1면.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특히 한국경제신문은 디턴 교수의 노벨경제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직후 사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불평등을 선동하고 있을 당시 한국경제신문은 디턴 교수의 주저(主著) ‘위대한 탈출’을 국내에 출간, 소개하면서 올바른 경제발전론을 정립·전파했다. 그는 지난해 9월 한경과의 와이드 인터뷰에서도 불평등이 경제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왜 성장이 사회 진보에 필요한지를 역설했다.

(중략)

격차를 비판한다면서 성장을 부정하고 결과적으로 진보를 부정하는 퇴행적 부류 또한 적지 않다. 19대 총선과 지난 대선을 거치며 괴물처럼 커진 경제민주화의 광풍, 무차별 복지, 분배 우선론이 다 그렇다. 성장을 멈추면 더욱 불평등한 사회로 퇴보할 뿐이다. ‘한국은 더 성장해야 한다. 성장의 힘을 믿으라’는 디턴 교수의 얘기를 새겨들어야 한다. (한국경제 사설 10월14일)

관련기사 : 당신이 오늘 읽은 노벨경제학상 해설기사는 엉터리다

그러나 프린스턴대출판부가 명확하고 단호한 입장을 밝힘에 따라 이런 식의 주장이나 해석은 설 곳을 잃게 됐다.

한편 번역 왜곡 문제를 본격적으로 지적한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25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한경BP는 이러한 모든 사항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조속히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경제 #앵거스 디턴 #한경BP #한국경제신문 #자유경제원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