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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대게 말고 무엇을 아시나요?

핵발전소는 주로 서울을 비롯한 도시의 소비와 산업을 위한 것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영덕군은 '무고한 피해자'이어서 '희생을 보상'받아야 할 처지다. 그런데 아무리 의도적이지는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원인 제공자이어서 '책임을 공유'해야 할 전체 국민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영덕군이 극심한 통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영덕군민들이 서울과 영덕의 거리만큼, 엄청난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정의롭지 못하며 비상식적인 일이 또 있을 수 있을까. 

  • 장재연
  • 입력 2015.10.26 12:03
  • 수정 2016.10.26 14:12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딜까. 단순하게 물리적 거리로 따지자면 제주도의 마라도이겠지만, 여러 측면에서 경상북도 영덕군이 바로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대게와 자연송이로 유명한 영덕군은 주왕산국립공원과 동해 사이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고의 청정지역이다. 이 지역이 지금 대한민국 때문에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

주민투표를 요구하고 있는 영덕군민들 ⓒ장재연

2010년에 당시 군수가 불과 399명 주민의 동의를 얻어 독단적으로 신규원전 부지를 신청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2012년에는 한수원이 삼척과 영덕을 신규원전 후보 부지로 발표하였으나, 삼척시는 작년 10월 주민투표를 통해 절대 다수의 주민들이 반대한 바 있다. 그동안 정부의 막대한 지역사업 지원 약속과 번복, 군의회의 유치찬성과 정부의 약속파기로 인한 반대로의 입장 선회, 군수의 애매모호한 태도 등으로 인해 영덕군 지역사회 내부의 찬반 주민간의 불신과 갈등은 점점 복잡하고 심각해졌다. 사실 영덕군은 과거 여러 차례 핵폐기장 부지로 거론되었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는 경험을 거치면서 수십 년간 핵발전소(원전) 문제로 시달려 왔다.

각기 다른 주장의 현수막이 주민간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장재연

핵발전소 때문에 겪고 있는 군민간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군민들 중 일부가 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군의회에 청원을 하였고, 이에 따라 영덕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주민들 중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면 전체 군민의 의사를 물어봐야 하고, 그 방법으로 주민투표보다 좋은 것은 없다.

주민투표 지지를 발표하고 있는 영덕군의회 ⓒ주민투표 추진위원회

주민투표를 위해서는 투표인 명부도 있어야 하고 투표관리위원회, 투개표 요원들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선거관리위원회가 관련 자료와 실행 역량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는 핵발전소 건설 등 지역문제의 주민투표를 관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행정능력을 갖춘 지방자치단체, 즉 영덕군청이 직접 나서는 것이 순리인데 역시 주민투표에 소극적이다. 군의회가 군청이 주민투표 지원에 나설 것을 촉구했지만 군수는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며 적극 나서지를 않고 있다.

결국 주민들이 직접 주민투표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부족한 실무역량을 메우기 위해 환경단체와 시민단체 등의 지원을 받아 힘들게 주민투표를 준비해 나가고 있다. 점차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아져서, 가가호호 방문해서 동의를 받아야 하는 투표인 명부 작성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주민투표 추진위원회가 이처럼 오직 주민의 의사를 분명하게 확인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데, 영덕군의 신규핵발전소 부지는 이미 합법적 절차를 거쳐 결정된 사안이어서 주민투표가 불법이라는 등 망언을 일삼고 있는 자들도 있다.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조항을 헌법 제1조로 갖고 있는 민주공화국에는 어울리지 않고, 왕정국가나 독재국가에나 적합한 관변학자들이다. 국민이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군수로 한번 뽑아줬다고 평생 하라는 게 아닌 것처럼, 옳지 않은 행정은 평가하고, 심판하고, 필요하면 바꾸는 것이 국민, 주민의 권리다. 그리고 애초부터 주민의 의사를 제대로 묻지도 않았다. 투표권이 있는 군민 중에서 불과 1%의 동의를 얻은 것으로 됐다고 할 수 없다. 국민과 헌법이 선언한 민주공화국에서 누가, 어떤 소소한 규정이 감히 전체 주민의 의사를 묻는 것을 불법이라 하는가.

일부에서는 환경단체 등 불순한 외부세력이 주민들을 선동한다고 악선전하고 있다. 군민들이 원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군 행정조직과 국회의원조차 귀담아 듣지 않으니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온 사람들을 어떻게 불순하다고 왜곡할 수 있는가. 또한 국민 모두가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겠다고 하는 시설 때문에 생긴 일이다. 다른 지역에 사는 국민이라고 어찌 외부일 수 있는가. 한수원과 정부가 신규 부지 지역에는 막대한 재정지원을 약속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핵발전소는 가장 대표적인 혐오시설이다. 지역에는 가장 해로운 시설이지만 전체를 위해 무조건 희생해라고 요구하는 한수원이야말로 영덕군 입장에서는 가장 불순한 외부세력 아닌가. 

영덕군에 원전추진단체가 걸어 놓은 현수막 ⓒ장재연

핵발전소는 주로 서울을 비롯한 도시의 소비와 산업을 위한 것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영덕군은 '무고한 피해자'이어서 '희생을 보상'받아야 할 처지다. 그런데 아무리 의도적이지는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원인 제공자이어서 '책임을 공유'해야 할 전체 국민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영덕군이 극심한 통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영덕군민들이 서울과 영덕의 거리만큼, 엄청난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정의롭지 못하며 비상식적인 일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영덕군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핵발전소를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사람들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런 점이 염려된다면 찬성하는 측에서도 주민투표업무에 적극 협조하고, 군에서 행정력을 동원해서 주민투표 업무에 협조하면 된다. 핵발전소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공개적으로 토론회를 열고, 주민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수원은 비밀리에 주민들을 접촉할 것이 아니라 공개토론회를 통해 자기들 사업과 지역지원 내용을 제시하고 주민들의 심판을 받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이렇게 상식적인 절차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주민투표를 방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뭔가 구린 것이 많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군수면담을 요청하고 있는 행사 참가자들과 경찰로 막혀 있는 군청 ⓒ장재연

10월 25일에도 군민들이 주민투표에 협조하라는 요구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군청을 찾았으나 군청 출입문은 경찰에 의해 굳게 막혀 있었다. 이강석 군의회의장은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단식농성에 들어가 있다. 오죽 주민의 뜻이 반영이 안 되고 민관의 소통이 안 되고 있기에 중앙정부로 치면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군의회의장이 단식까지 하게 되었을까 싶다. 군의회의장이 요구하는 것은 군수에게 꼭 핵발전소 유치를 반대하라는 강요가 아니라 주민의 뜻을 묻자는 주민투표다. 군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해서 당선된 군수가, 군민의 뜻을 알아보자는 군의회의 요구를 거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주민투표를 요구하며 10월 20일부터 단식농성 중인 이강석 군의회의장, 44일은 전체 릴레이 단식일자 ⓒ장재연

주민투표일로 정해진 11월 11일, 12일이 보름 남짓 남았다. 투표당일 많은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대한민국 때문에 깊은 내상을 입은 영덕군에 조금이나 도움을 주고 싶은 시민은 투개표자원봉사자로 참여할 수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전국 50여개 조직의 수백 명의 상근활동가와 임원들이 당일 자원봉사에 나서기로 결의하고 후원금도 모으기로 했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해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영덕군의 주민투표를 널리 알리고, 영덕군청이 주민투표에 협조하도록 사회적인 여론을 만들어 주시면 좋겠다.

주민투표 자원봉사자 모집 광고 ⓒ주민투표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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