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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착취대상'을 수상하신 신동빈 회장님께

일전에 회장님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대국민 사과를 하셨습니다. 저는 회장님의 일본어투 발음을 들리는 그대로 자막에 담은 어느 종편 방송사의 저급함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조롱당해야 할 것은 고작 발음 따위가 아닙니다. 회장님은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청년고용 확대를 약속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청년들을 부당하게 내쫓았습니다. 노동조합을 탄압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에 불복하여, 한 사람의 청년을 상대로 대형로펌을 앞세운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퇴직금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젊은이들을 협박해 불법각서를 쓰도록 종용했습니다.

  • 정준영
  • 입력 2015.10.24 09:22
  • 수정 2016.10.24 14:12

신동빈 회장님께 드립니다

경황이 없으신 와중에 이 무례한 글이 회장님에게까지 닿을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바로 그제 '청년착취대상'을 드릴 때의 정중한 마음을 담아 무엇이라도 써봅니다. 그래서 굳이 경어체를 택했습니다. 신동빈 회장님, 저는 청년유니온이라는 작은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요즘 회장님이 수장으로 있는 기업집단 '롯데'의 지배권을 두고 신씨 일가가 또 다시 소란스러워진 듯합니다. 서울 한복판 롯데호텔 34층에 있는 집무실에서 실랑이가 있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애쓰지 않아도 들려오는 이야기들입니다. 재벌가의 집안싸움이라는 것이 저 구름 위의 일인데도 말입니다. 사실 저는 도대체 일본 롯데는 무엇이고 한국 롯데는 무엇인지, 재벌그룹의 지배구조 문제가 그래서 어찌 되었다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순환출자라고 하던가, 돈을 돌리고 돌리는 방식으로 그 거대한 기업집단을 거머쥐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감탄했습니다.

고생이 참 많으십니다. 이럴 때일수록 좋은 일을 축하하는 데에 인색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난 9월, 주식회사 호텔롯데의 대표이사로 새롭게 등재되셨다고 압니다. 일부러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접속해 확인해보았습니다. 롯데그룹의 회장에 호텔롯데의 대표이사까지 겸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감투 하나를 더 얻으셨다니 좋은 일이 맞겠지요.

그런데 회장님은 혹시 그 호텔에서 일했던 김영이라는 청년을 아십니까? 한때 '롯데의 가족'이었지만 하루아침에 쫓겨난 사람입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라고 판정해서 세상에 알려진 그 사건입니다. 요즘은 회장님이 고용했을 대형로펌의 변호사들과 법정에서 다투고 있습니다. 이제 좀 기억이 나십니까?

때마침 호텔의 대표이사가 되셨다니, 염려할 것 없이 더 여쭤보겠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사정을 아십니까? 우려했던 것처럼 김영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롯데호텔이 매일 근로계약서를 쓰며 일해온 청년들을 무더기로 해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지난 7월의 일입니다. 잘려나간 사람들 중에는 1년 이상 일해온 이들도 많았습니다. 20대의 절반을 롯데호텔에서만 보낸 젊은이도 있습니다.

회장님의 부하직원 중에서도 꽤나 권한을 가졌을 이들은 이 청년들에게 심지어 '불법각서'까지 받아냈습니다. 법적으로 마땅히 지급해야 할 퇴직금을 볼모로 하여 합의서 작성을 강요한 것입니다. 일체의 권리를 포기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관행이었다 둘러대고 서둘러 철회하면 그만일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과부터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회장님이 경영하는 재계 5위의 기업집단인 롯데는 외식, 유통, 관광 등 서비스부문의 최강자입니다. 롯데호텔, 롯데백화점, 롯데면세점, 롯데월드, 롯데마트, 롯데슈퍼, 롯데시네마, 하이마트, 유니클로, 세븐일레븐, 롯데리아, 엔제리너스, TGI프라이데이스, 크리스피크림도넛, 나뚜루. 이름난 회사만 15개가 되고 전국에 매장만 9천 3백개에 이르니 엄청난 규모입니다. 보수적으로 따져봐도 15만 명 이상이 '롯데'의 서비스 부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서비스 산업의 어두운 그늘에는 청년노동의 비참함이 있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하루살이 근로계약'을 맺어온 청년들은 일회용품처럼 쓰이다 하루아침에 버려졌습니다. 이 기업들이 사회에 새롭게 내놓는 일자리는 평균 시급 5천 9백원에 불과한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였습니다. 법정 최저임금만 겨우 지키는 수준입니다.

현장에는 고통스러운 일들이 넘쳐나는데,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지배권을 두고 다투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습니까?

일전에 회장님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대국민 사과를 하셨습니다. 저는 회장님의 일본어투 발음을 들리는 그대로 자막에 담은 어느 종편 방송사의 저급함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조롱당해야 할 것은 고작 발음 따위가 아닙니다.

회장님은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청년고용 확대를 약속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청년들을 부당하게 내쫓았습니다. 노동조합을 탄압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에 불복하여, 한 사람의 청년을 상대로 대형로펌을 앞세운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퇴직금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젊은이들을 협박해 불법각서를 쓰도록 종용했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결국 상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아니,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롯데 신동빈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서비스부문 2015 청년착취대상을 드립니다. 부상으로 무엇을 드려야 격에 맞을지 고민이 됩니다. 부디 수상의 참 뜻을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보시고,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 사회적 책임을 진정으로 다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온 힘을 다해 고민하고 실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깨닫게 해드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부상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회장님,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의 '청년노동칼럼'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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