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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4일 06시 4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0월 24일 06시 58분 KST

임정요인 외손자 "박정희가 '비밀독립군'이라는 건 명백한 거짓"

한겨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실제로는 ‘비밀 독립군’이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에 대해, 이 사실을 처음 말한 것으로 알려진 임시정부 요인 백강 조경한 선생의 외손자가 “명백한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백강 선생의 외손자이자 독립운동사 연구가인 심정섭(72)씨는 “박정희가 우리 외조부를 찾아온 것은 맞다. 그러나 당시 박정희는 외조부께 오히려 자신의 친일 행적을 고백했다”고 주장했다.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지난 20일 국회 브리핑에서 “2004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오히려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백강 조경환(조경한의 오류) 선생님께서는 박 전 대통령을 독립군을 도운 군인으로 기억했다는 증언을 했다”고 말해 박 전 대통령이 친일파가 아닌 비밀 독립군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변인의 이런 주장은 2004년 <세계일보>에 기고된 이기청 의병정신선양회 사무총장의 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씨는 기고문에서 백강 선생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라며 ‘박 전 대통령이 백강 선생의 면목동 집에 찾아가 큰 절을 한뒤 자신을 일본군 중좌 다카키 마사오라고 소개하니, 백강 선생은 조선인 병사들을 상해 임시정부 독립군으로 빼돌렸던 다카키의 이름을 익히 들어 놀랍고도 반가워했다’고 썼다.

그러나 이씨의 이런 주장은 근거가 박약하다. 이씨의 글 외에는 백강 선생이 박 전 대통령을 비밀 독립군으로 기억한다는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초적인 사실 오류도 많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백강 선생의 이름은 조경환이 아닌 조경한이다. 또 박정희는 일본군 중좌가 아닌 만주군 중위였다. 당시 임시정부는 상해가 아닌 중경에 있어 만주에 있던 박정희가 중국 남서부의 임시정부로 조선인 병사를 빼돌렸다는 말은 성립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해방 이후 한국독립당사 근처에서 한독당 중앙상임위원 조경한(앞줄 가운데), 안재홍(앞줄 오른쪽)과 대동단 창립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권태석(앞줄 왼쪽)이 함께 한 모습.

고상만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시비에스>(CBS)의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박정희는 당시 대통령이 아니라 최고회의 의장이었고, 당시 백강 선생의 집은 면목동이 아니라 흑석동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백강 선생의 외손자로 평생을 친일문제와 독립운동사 연구에 바친 심정섭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은 “박정희와 외조부가 나눈 실제 대화는 이씨의 기고문과 그 내용이 많이 다르다”고 밝혔다.

심씨가 외조부에게 직접 전해들었다는 내용은, 쿠데타 이후 민정이양을 준비할 무렵 박 전 대통령이 백강 선생을 찾아와 큰절을 한 뒤 “저는 다카키 마사오입니다. 저는 일제 때 친일 군인으로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고, 해방 직후에는 광복군 중대장을 지냈습니다. 김구 선생님을 존경했지만 해방 후 한독당에 입당하지 못했고, 형제 때문에 남로당 입당해 공산 활동을 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자수를 해서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오늘날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나라가 반공 정신이 미약해지고 위기에 처해 이렇게 혁명을 일으켰습니다”라며 자신의 행적을 고백했다는 것이다.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생가에 박정희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은 “앞으로 혁명 정부를 이끌 만한 인물을 찾고 있는데 현재 정치인은 대부분 친일 아니면 이승만 정권에 붙었던 세력이고, 임시정부 인사는 대부분 좌파적 입장에 서있어 유독 백강 선생님이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입당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심씨의 증언대로라면 박 전 대통령은 백강 선생에게 비밀독립군으로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친일행적으로 고백한 것이 된다.

박 전 대통령의 비밀독립군설은 박영만의 소설 <광복군>(1967)과 육군본부가 간행한 <창군전사> 등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비밀독립군설을 부정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고인이 된 김승곤 전 광복회장은 2008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설 <광복군>의 저자인) 박영만은 청와대에서 돈을 받을 줄 알고 <광복군>을 썼는데, 내용을 훝어본 박 대통령은 ‘내가 어디 광복군이냐. 누가 이 따위 책을 쓰라고 했냐’며 화를 냈고, 결국 박영만은 돈 한푼 못 받고 거창하게 준비한 출판기념회도 치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5·16 쿠데타 동지인 박창암 전 혁명검찰부장도 박 전 대통령의 비밀광복군설을 부인하는 증언을 한 것이 정운현이 쓴 <실록 군인 박정희>에 나온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박 전 대통령은 적어도 자신의 부끄러운 이력을 감추고 조작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딸은 학계와 교육계의 압도적인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함으로써 유신독재 시대로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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