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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7일 12시 1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7일 14시 12분 KST

팔당유기농업 농민이 이탈리아 마을이 부러운 이유

그 동안 10여 차례 이탈리아를 가면서 백군데 넘는 레스토랑을 갔지만 한 번도 같은 파스타를 먹어보지 못했다. 들른 마을마다 레스토랑마다 모양도 재료도 소스도 달랐다. 공통점은 레스토랑마다 대개는 그 지역의 재료를 쓰고 있고 그 점을 누구나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와 너무도 비교되는 점이다. 요즘은 서울에서 먼 시골 읍내에서도 대도시와 다른 맛이나 음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제과점, 커피숍, 음식점, 구멍가게조차 대기업 프랜차이즈점들이 차지해 소비자들은 그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맛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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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맛, 가족농, 농촌경제를 살리자는 슬로푸드운동

▶ 슬로와인 프로젝트가 다시 살린 프란챠코르타 스파클링 와인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에 프란챠코르타라는 지역이 있다. 이 지역은 알프스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고여 만든 이세오(Iseo)라는 큰 호수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져 있고 산자락마다 포도나무들이 잘 가꿔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별로 안 알려져 있지만 프란챠코르타는 드라이한 스파클링 와인으로 꽤나 유명하다. 올해 5월부터 10월말까지 개최되고 있는 밀라노엑스포의 공인주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지난 6월 중순, 슬로푸드 국제본부 이사회가 프란챠코르타의 와이너리 3곳을 돌며 3박4일간 열렸다. 카를로 페트리니 회장과 전 세계에서 이사 43명, 국제본부 각 분야 스텝 등 60여명이 참가해 회의를 하는 동안 이 곳 스파클링 와인 생산자들이 슬로푸드 리더들을 대접하는 모습은 세련되면서도 풍성하고 극진했다. 3곳 모두 개인 소유의 와이너리지만 7~10만평 정도로 넓었고, 생산공정과 저장창고는 전통방식을 지키고 있었지만 현대화된 가공공장과 체험장, 전시장, 시음장은 세련된 디자인으로 설계돼 마치 갤러리나 박물관 같았다. 회의 중간 휴식시간에 20여 가지 살라미, 치즈, 쿠키 등과 자기들이 생산한 와인을 자연스럽게 시음할 수 있게 준비되었고, 식사는 매끼 성찬으로 대접했는데, 인근에서 가장 유명하고 권위 있다는 쉐프를 초빙해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수산물로 요리한 메뉴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음식들의 맛은 그 와이너리의 와인과 잘 조화를 이루도록 조리했고 초청된 쉐프는 사전에 그 점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식사 마무리 시점에 와이너리 주인이 나와 인사말을 하는데 카를로페트리니 회장과 슬로푸드 본부에 너무 감사하고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게 너무 감격스럽다며 카를로 회장과 깊이 포옹을 나누는데 상투적 인사가 아니라 진정으로 존경하며 감사하고 있다는 걸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1960년대부터 프랑스가 와인은 물론 프랑스 농산물과 요리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고급화, 상품화시키며 세계시장을 점령해 나가면서 이탈리아 와인은 설자리가 없어지고, 농가들은 가난에 시달렸다. 특히 프랑스가 스파클링 와인의 대명사는 달콤한 맛의 샴페인인 것처럼, 생일, 크리스마스, 축제에 이벤트용 샴페인으로 마켓팅 전략을 펴 소비자들을 사로잡으면서, 프란챠코르타의 드라이한 스파클링와인은 더 이상 판로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카를로 페트리니가 1986년 슬로푸드운동을 시작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카를로가 가장 먼저 이탈리아 농부들을 위해 주목한 품목이 와인과 치즈였는데, 슬로와인, 슬로치즈라는 키워드를 도입하며, 매해 슬로와인 책을 발행하고, 마켓팅을 위한 맛 워크숍, 축제 등 이벤트를 열고, 유명 쉐프들과 협력해 스파클링과 조화를 이루는 요리를 개발해 디너데이트 등을 적극 개최해 지원했다. 이러한 모든 이벤트에는 늘 세계 유수의 언론인들과 함께 했다. 2천 년대부터는 슬로푸드운동이 세계화되기 시작했고 가장 먼저 혜택을 본 건 당연히 이탈리아의 농부들이었다. 슬로푸드 국제이사회를 유치하고 지원한 프란챠코르타의 와이너리 3곳은 매해 30만~50만병의 스파클링와인을 생산하는데 생산하자마자 거의 소진된다고 한다. 그곳들의 스파클링와인은 산지가격이 한 병에 15~25유로(한화 2만~3만2천원)였다.

▶ 마을마다 다른 재료와 맛의 파스타,

마을의 농민도 주민도 지역경제도 함께 살려준다

이탈리아에서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코스별로 시키기는 정말 어렵다. 전식, 파스타, 메인, 디저트로 간단히 구별할 수 있는데 각각이 최하 십여 가지다. 재료, 소스, 요리법에 따라 메뉴가 다르기도 하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재료에 대한 것이다. 그 동안 10여 차례 이탈리아를 가면서 백군데 넘는 레스토랑을 갔지만 한 번도 같은 파스타를 먹어보지 못했다. 들른 마을마다 레스토랑마다 모양도 재료도 소스도 달랐다. 공통점은 레스토랑마다 대개는 그 지역의 재료를 쓰고 있고 그 점을 누구나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마을의 레스토랑이 자기 이웃 농민이 생산한 재료들을 사용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식당들은 재래시장이나 대형마트, 아니면 트럭으로 매일 아침 식자재를 공급하는 상인들에게 구입하는데, 그 재료가 어디서,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에 관심을 갖는 식당주인은 거의 없다. 모양은 깨끗한지, 가격은 다른 곳보다 저렴한지, 양은 넉넉히 주는지.

마을의 식당들이 자기 지역의 농민들이 생산한 것을 가지고 요리하면 그 음식이나 맛은 그 마을에서만 맛볼 수 있다. 농민들은 판로가 보장되니 그곳에서 생산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그 마을에만 있는 독특한 음식과 맛은 식도락 관광객들에게는 매력적인 점이어서 자연 관광객이 많아지게 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

우리나라와 너무도 비교되는 점이다. 요즘은 서울에서 먼 시골 읍내에서도 대도시와 다른 맛이나 음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제과점, 커피숍, 음식점, 구멍가게조차 대기업 프랜차이즈점들이 차지해 소비자들은 그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맛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슬로푸드운동을 시작할 즈음 우리가 구두 설문을 해본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1970년대에는 매해 250여 가지의 농축수산물을 먹고 살았으나 현재는 100가지도 못 먹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10대나 20대 청년들은 50여 가지 농축수산물밖에 못 먹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 농민들이 그 만큼의 품목 재배를 포기했다는 걸 보여준다.

즉, 우리 농민들은 대형마트나 가락동 상인들이 요구하는 품목만 생산하게 되고 아무리 먼 곳 오지에서도 결국 가락동으로 생산물을 보내야 하고 상인들이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돼 버렸다.

▶ '맛의 방주'를 살려서 우리 농업과 지역경제를 살리자

세계적으로 매해 2만7천여가지, 하루 평균 76가지의 생물들이 멸종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래서 슬로푸드 국제본부는 소멸돼 가는 종자, 농축수산물, 전통식품, 요리를 등재해 보존하자는 캠페인을 대대적이고 꾸준히 펼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2천7백여 가지가 등재돼 있고 우리는 2013년부터 시작해 울릉도 섬말나리, 칡소, 연산오계, 제주 푸른콩장 등 47가지를 등재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고 삼면이 바다이며 개펄이 발달해 있고 사계절이 뚜렷해 식재료가 다양하고 풍부하다. 다양한 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음식과 맛이 풍부하게 발달해 왔다. 그러나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이런 기반들이 수입농산물과 대규모 식량기업들에 의해 급격히 무너져 왔다. 대기업 식품회사들은 나날이 성장하는데 우리농업은 곤두박질치고 농촌이 피폐화 되고 농민들은 자부심과 꿈을 잃고 있다. 아직도 한국정부의 농정은 규모화, 대규모 자본투자, 전업농 육성이 국제경쟁력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슬로푸드운동은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살리는 것이 다양한 농업과 전통식품과 요리를 살리는 길이고 이런 게 곧 진정한 국제경쟁력임을 강조하고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위해 정기적으로 가족농, 어부, 전통식품 생산자, 청년, 요리사, 언론인, 선생, 소비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연대해 패스트푸드, 정트푸드가 넘쳐나는 현재의 푸드시스템에 변화를 주어 맛있고 깨끗하고, 공정한 음식세상을 만들자는 '떼라마드레'라는 대규모 음식축제를 개최한다.

슬로푸드 국제본부와 한국협회는 올해 11월 18일부터 22일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45개국이 참가하는 "2015 슬로푸드 국제페스티발"을 개최한다. 슬로푸드 행사는 여느 식품박람회와 달리 다양한 맛을 생산하는 농부, 어부, 슬로푸드 쉐프, 소비자들이 모여 밥상나눔과 평화, 슬로피쉬, 슬로미트 등의 국제컨퍼런스, 유명쉐프들과 함께 하는 맛 워크숍 등을 통해 소통하고 배우고 맛보고 서로를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 자리는 누구나 슬로푸드를 쉽게 이해하고 맛볼 수 있는 기회이면서 소규모 가족농, 전통식품 장인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글 | 김병수 (슬로푸드 국제본부 이사, 팔당유역 유기농업 농민)

* 이 원고는 내일신문에도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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