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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감염자 진료한 의자·도구, 비닐로 싸맨 병원

  • 박세회
  • 입력 2015.10.23 07:00
  • 수정 2015.10.23 07:01
ⓒ한겨레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인 박아무개(43)씨는 지난 2일 치과 스케일링을 받기 위해 서울시립 보라매병원을 찾았다. 치과 6번방에 들어섰더니 진료 의자와 의료도구는 물론 칸막이까지 김장 김치를 담글 때 쓸 법한 커다란 비닐로 감싸여 있었다. 진료실 한켠에는 ‘HIV’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의료폐기물 봉투도 놓여 있었다.

박씨는 “스케일링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공들여 몸을 씻었다”고 말했다. 박씨의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2007년 외과수술을 받기 위해 한 병원 수술대에 올랐을 때는 우주인처럼 몸을 꽁꽁 싸맨 의사들이 들어와 서로를 보며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수술대에 누운 채 두려워 아무 말도 못하는 나 자신이 수치스러웠다”고 말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는 에이즈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이지만 감염인이라도 약을 통해 조절하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지 않는다.

보라매병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감염 우려가 있는 질병을 가진 다른 환자에 대해서도 종종 스케일링 때 비닐을 씌운다”며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이라고 특별히 차별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 스스로 만든 ‘관리지침’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환자가 치과 치료를 받는다고 방포를 덮을 필요는 없다’고 돼 있다.

감염의학 전문의들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 환자를 치료한다고 해서 별도의 ‘특별한 조처’를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임승관 아주대학교 감염내과 교수는 “보편적인 감염 예방 조처만 해도 충분히 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씨와 에이즈·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관련 인권단체들은 22일 “보라매병원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을 이유로 진료실을 분리하고 비닐을 덮는 등 차별적인 의료행위를 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시정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 병원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들의 치과 진료를 거부했다가 민원이 제기되자 지난 6월 즉시 바로잡겠다는 답변서를 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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