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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2일 12시 25분 KST

태권브이 40주년을 맞아 '브이센터'에 가다

[매거진 esc] 라이프

지난 15일 개관한 태권브이 박물관 ‘브이센터’에 있는 13m 높이의 태권브이 모형

1990년대 이후 잊힌 토종 로봇 캐릭터, 내년 탄생 40돌 앞두고 전시회 등 관심 재점화

한국 최초의 로봇 캐릭터, 세계 최초의 ‘격투’ 로봇, 개봉 당시 최단기간 최다관객 기록, 국가 공인 로봇 등록 1호… 1976년 7월 개봉한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브이(V)>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유독 ‘최초’, ‘최대’를 중시했던 시절 탓도 있지만, 태권브이는 등장 자체만으로도 일대 파란을 몰고 왔다. 이후 태권브이는 1990년까지 8편의 시리즈를 이어나갔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면 동네 골목에선 주인공 훈이를 흉내 내는 꼬마들의 이단옆차기 광경이 종종 목격됐다. 태권브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 ‘깡통 로봇’이 되려고 주전자를 망가뜨린 기억도 30~40대가 공유하는 추억의 하나다.

하지만 다양한 캐릭터, 탄탄한 줄거리와 기술로 무장한 일본과 미국 애니메이션이 본격 수입되면서 태권브이의 위상은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더는 태권브이를 찾지 않았다. 여기에 일본의 마징가제트(Z)를 따라한 것 아니냐는 표절 논란과 이른바 ‘국뽕’이라 불리는 맹목적 애국주의 아니냐는 비판론까지 가세했다.

더블유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태권브이 피규어 특별전’에 전시된 피규어들

이렇듯 사라질 것 같았던 태권브이가 내년 탄생 40주년 앞두고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고덕동에 태권브이 박물관 ‘브이센터’가 문을 열었다. 태권브이만을 전시한 상설 박물관이 생긴 건 처음이다. 태권브이의 과거와 미래를 조망하는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피규어 박물관 더블유(W) 뮤지엄은 지난 6월부터 ‘태권브이 피규어 특별전’을 열고 있다. 박물관 쪽은 <로보트 태권브이>를 연출한 김청기 감독과의 대화, 태권브이 피규어 공모전도 함께 진행했다. 지난 18일 방송한 남성 전문 케이블 채널 <엑스티엠>(XTM)의 자동차 튜닝 프로그램 <더 벙커>는 쌍용자동차의 스포츠실용차(SUV) 티볼리를 로보트 태권브이 콘셉트로 튜닝해 경매에 부쳤다. 애초 중고가 2180만원에 구입한 차는 경매를 통해 2820만원에 판매됐다. 엑스티엠 관계자는 “태권브이가 한국의 대표 히어로라는 가치가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더블유 뮤지엄을 찾은 태권브이 마니아 손찬호씨(왼쪽)

태권브이가 되살아난 데는 아이(키드)와 어른(어덜트)을 합친 ‘키덜트’의 등장과 확산이 한몫했다. 주전자를 망가뜨려 혼난 기억을 가진 아이들은 이제 한국 경제의 주소비층이 됐다. 더블유 뮤지엄에서 만난 회사원 손찬호(44)씨도 ‘태권브이 키드’다. 그가 처음부터 태권브이에 빠진 것은 아니다. 다른 키덜트처럼 마징가 등 일본 피규어를 수집해왔다. 1997년 그가 유학하던 일본에선 아연 등을 도금한 초합금 피규어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거대 로봇 캐릭터 시장을 독점하던 일본에서 한국의 태권브이는 ‘듣보잡’이었다. 손씨는 일본인 친구들에게 한국에도 로봇 캐릭터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는 치과용 충전재료인 ‘레진’으로 태권브이 얼굴을 스스로 조각해 일본인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한국에도 이런 로봇이 있느냐”며 일본인들은 호기심을 나타냈다.

그때부터 태권브이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마징가를 따라했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뜯어보니 상당히 독창적이었요.” 특히 인간의 정신으로 로봇을 조종한다는 설정은 마징가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인간의 정신으로 조종하니 동작 자체가 마징가의 기계적 움직임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른바 인간의 ‘정신동력’으로 로봇 등을 조종하는 설정은 건담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건담이 처음 등장한 것이 1979년이니 이보다 3년 빠른 셈이다.

태권브이 관련 제품을 모으려고 마음먹었지만 쉽지 않았다. 태권브이가 한동안 국민들 관심에서 완전히 사라진 탓이었다. 개봉했던 필름조차 잃어버렸다가 2003년에야 되찾았을 정도다. 태권브이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는 제대로 된 피규어조차 없었다. 이른바 클래식 피규어라 불리는 1980년대의 태권브이 피규어는 좀처럼 구하기 힘들다. “지금도 시골 문방구를 뒤지는 분들이 있어요. 간혹 발견하면 대박이죠. 가격이 금세 몇 배는 뛰어요.”

요즘 태권브이 피규어는 최근 키덜트 붐을 타고 생긴 업체들이나 마니아들이 스스로 제작한다. 특히 마니아들이 직접 만드는 ‘커스텀’ 제품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런 것들은 부르는 게 값이다.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슈퍼태권브이(왼쪽)와 일본 로봇 자붕글 비교(우뢰매닷컴)

이제야 희소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태권브이지만, 이른바 ‘흑역사’라 불리는 대목이 있다. 바로 표절 논란이다. 마징가와 너무 흡사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세번째 편인 <로보트 태권브이 수중특공대>까지 초창기 태권브이는 마징가의 모습과 많이 닮았고, 특히 1982년 개봉한 <슈퍼 태권브이>의 경우 일본 애니메이션 <전투메카 자붕글>과 마치 형제처럼 유사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청기 감독도 “마징가를 참조했다”고 밝힌 상태다. 김 감독은 2006년 6월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에 출연해 “당시 기계로봇이 전무했었고 그런 상식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일본 마징가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다”며 “의도적으로 표절해야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피해갈 수 있는지가 숙제였다”고 말한 바 있다. 더블유 뮤지엄의 김혜숙 학예사는 “마징가를 참조했지만, 어떻게 하면 마징가와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손씨도 표절 논란은 인정한다. 하지만 ‘별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옛날에 좋아했던 대로 좋아하는 것뿐이에요. 오리지널 디자인이 아니면 어때요. 저는 흑역사라고 보지 않아요.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독창적인 부분도 많아요.” 손씨는 3편 <수중특공대>에서 태권브이가 물속을 다닐 때 합체하는 ‘수중 슈트’를 거론하며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성이 있다”고 말했다. 태권브이 마니아인 영화·애니메이션 감독 민병천의 생각도 같다. 그는 “마징가의 형태를 참고했다 해서 표절이라고 한다면 이전의 여타 변신 로봇을 차용한 <트랜스포머>도 표절이라고 봐야 한다. 표절 매도는 문화적 파괴주의다”라며 “캐릭터를 보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민 감독이 총감독을 맡은 브이센터는 앞으로 태권브이 마니아들의 성지가 될지도 모른다. 1500㎡ 터에 3층으로 건립된 브이센터에는 피규어, 만화책, 비디오테이프, 학용품 등 모두 3000점의 태권브이 관련 물품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설계부터 김청기 감독의 감수를 받아 실제 만화 속 태권브이 격납고를 모델로 했다. 단순히 전시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테마파크형 라이브 박물관’을 콘셉트로 하기 때문에 관람객의 능동적 관람이 가능하다. 가로 21m, 세로 13m 스크린의 아시아 최대 규모 포디(4D) 상영관은 박물관이 내세우는 대표 콘텐츠다.

관람 동선 마지막에는 높이 13m의 대형 태권브이 모형을 만날 수 있다. 순수 제작비만 10억원이 들었다. 원작 속 태권브이의 키는 56m이지만, 자문을 얻은 결과 과학적으로 제작 가능한 로봇의 최대 높이가 13m라고 한다. 일본 도쿄 오다이바에 있는 실물 크기 건담의 키는 18m다. 지난 14일 브이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난 민 감독은 “아이들과 부모가 손잡고 와서 세대차를 극복하며 공감하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입장료는 성인 2만5000원, 아동·청소년 2만원으로 적지 않은 편이다. 손찬호씨는 “나 같은 태권브이 마니아들은 비싸다는 생각을 안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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