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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한 성평등이 가능할까?

수컷에게 임신과 출산 과정을 맡김으로써 암컷은 알을 만드는 과정에만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고, 수컷이 출산을 하면 바로 다시 임신을 하게 만듦으로써 여러번 자손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수컷 해마는 출산 당일에 다시 임신할 수 있다고 한다. 임신과 출산까지 암수가 역할 분담을 철저히 하고 있으니, 해마야말로 성평등의 '최고의 경지'라고 할 만하다.

  • 장재연
  • 입력 2015.10.23 12:25
  • 수정 2016.10.23 14:12

바다생물 이야기 3. 해마(Seahorse), 이보다 더한 성평등이 가능할까?

해마는 '말'과 비슷하게 생긴 독특한 모습 때문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바다생물이다. 수컷이 임신을 하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왜 해마는 수컷이 임신을 하게 되었을까? 아직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과학자들은 번식 효율의 최대화를 위한 암수의 역할 분담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기 해마들은 물속에 무방비 상태로 떠다니면서 쉽게 다른 생물들의 먹잇감이 되기 때문에 생존율이 매우 낮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자손을 생산해야 하고, 이를 위해 여러번의 반복적인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도록 암수가 역할을 분담한다는 것이다.

수컷에게 임신과 출산 과정을 맡김으로써 암컷은 알을 만드는 과정에만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고, 수컷이 출산을 하면 바로 다시 임신을 하게 만듦으로써 여러번 자손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수컷 해마는 출산 당일에 다시 임신할 수 있다고 한다. 임신과 출산까지 암수가 역할 분담을 철저히 하고 있으니, 해마야말로 성평등의 '최고의 경지'라고 할 만하다.

가시해마(Spiny Seahorse) ⓒ장재연

수컷 해마는 배 아래쪽에 불룩한 알주머니를 갖고 있다. 암컷이 수컷의 알주머니에 알을 쏟아넣으면 수컷이 정액을 뿜어 수정시키고 2-4주간 알을 품고 있다가 출산을 한다. 수컷 해마가 임신을 담당하기 때문에 아주 좁은 구역 안에 정착해 있는 반면에, 암컷 해마는 수컷보다 훨씬 활동 반경이 넓다. 수컷 해마가 알을 품고 있는 기간에 암컷은 매일 아침마다 찾아와서 약 6분간 머물고 떠났다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온다고 한다.

해마의 알주머니, 배에 주름이 겹쳐진 부분이 아기를 배출하는 구멍 ⓒ장재연

지난 9월에 수컷 해마가 임신을 하면 나타나는 변화를 유전자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연구한 학술논문이 발표되었는데, 포유류나 파충류의 암컷의 경우와 매우 비슷하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수컷 해마는 배아(embryo)의 골격 형성에 필요한 지질과 칼슘 등 영양성분과 질병예방을 위한 면역물질을 제공하며, 산소 등 가스교환과 배설물 제거 등도 이뤄지는 증거를 확인했다고 한다. 수정란을 알집에 품고 보호하는 단순한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포유류의 임신기간 중에 진행되는 복잡한 기능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같은 방식의 유전자 관찰 실험이 인간에게서 진행된 적은 없지만,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 결과가 쥐 실험에서의 결과와 동일하기 때문에 인간과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류, 파충류, 포유류 등 분류학적으로 크게 다른 생물들이 임신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역할, 나아가 생명 탄생의 비밀스러운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 연구다.

대표적인 해마 ⓒ장재연

해마는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50종이 넘는, 각기 다른 종이 있다. 몸통의 색깔이 주변에 따라 변화하고 변종도 많아서 단순히 색깔이나 외모만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몸통의 가시의 모습, 머리위에 있는 관, 머리와 주둥이의 길이, 눈, 코, 턱 등에 있는 가시의 모습이나 숫자 등으로 종을 구분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그리 쉽지는 않다.

옆에 나무막대를 꽂아주자 꼬리를 감고 그 자리에 머무는 해마 ⓒ장재연

해마는 모든 물고기가 갖고 있는 꼬리지느러미가 없고 대신 물체를 감싸서 몸을 지탱할 수 있는 꼬리를 갖고 있다. 꼬리지느러미 없이 작은 가슴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만으로 움직이고 똑바로 서서 헤엄친다. 그러다보니 해마는 가장 헤엄을 못 치는 바다생물이다. 헤엄친다기보다 말처럼 톡톡 튀거나 슬슬 미끄러지듯이 움직인다. 해마는 수줍음이 많아 항상 어디론가 숨으려고 하는데, 그럴 때 해마 옆에 나무막대 같은 것을 살짝 꽂아주면 꼬리로 감싸고는 제자리에 머문다. 바다 속에서 해마를 만났을 때, 찬찬히 보고 싶을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피그미 해마 (Pygmy seahorse) ⓒ장재연

해마의 존재는 고대시대부터 잘 알려져 있었지만, 피그미 해마는 아주 최근에 확인되었다. 1969년에 뉴칼레도니아 학자에 의해 우연히 부채산호에 사는 아주 작은 생물이 발견되었는데 해마와 모양은 똑같고 크기는 매우 작아서 피그미 해마로 불리게 되었다. 이 신기한 바다생물은 꼬리까지의 전체 길이가 2cm에 불과하기 때문에 꼬리를 감고 있으면 아주 작고, 주변과 같은 보호색을 갖고 있어서 발견하기 매우 어렵다. 2000년 이후에는 새로운 종이 계속 발견되고 있고, 귀엽게 생긴 용모로 수중사진가들이 매우 좋아 하는 모델이다.

임신한 폰토이 피그미 해마 (Pontoh's pygmy seahorse) ⓒ장재연

임신한 쎄번 피그미 해마 (Severn's pygmy seahorse) ⓒ장재연

해마는 정력에 좋다는 등 잘못된 정보로 인해 한약의 원료로 남획되는 양이 연간 1억5천만 마리에 달해서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해마를 분석해 본 결과, 다른 식품에 없는 특별한 유용성분은 없었다. 잘못된 정보가 어떻게 인간을 '죄 없는 생물들을 멸종위기로 몰아넣는' 악행을 저지르는 존재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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