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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3일 08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3일 14시 12분 KST

핀란드 헬싱키 파실라 인근 벼룩시장 | 추억까지 판매하는 북유럽 빈티지의 천국

핀란드 곳곳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은 디자인 강국의 자긍심은 그대로 남기고, 비싼 가격은 체에 걸러 휘발시킨 합리적인 공간이다. 그러니 핀란드의 디자인 감각을 제대로 소비하고 싶다면, 주말을 통째로 벼룩시장 투어에 할애해도 절대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다. 또 피다(Fida)나 UFF처럼 평일에도 갈 수 있는 세컨드핸드숍들도 많다. 벼룩시장은 주로 광장을 중심으로 열리는데, 히에타라하티(Hietalahdentori) 벼룩시장이 대표적이다. 키아스마 현대미술관을 가게 된다면 미술관 뒤편 공터에서 벼룩시장이 열려 애써 찾지 않아도 마주칠 확률이 크다.

헬싱키로 가는 핀에어 항공편의 옆자리, 핀란드 가족이 앉았다. 헬싱키로 여행을 떠나는 나와 달리, 예쁜 핀란드 아기를 안은 아기 엄마는 한국 여행을 마치고 헬싱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대화는 핀란드 식기 브랜드 '이딸라 (Iittala)'로 이어졌는데, "참 예쁜데 역시 너무 비싸서......"라는 내 말에 의외로 "그럴 만한 가격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컵 하나가 6~7만 원을 호가하지만, 핀란드를 대표하는 브랜드이기도 하고 디자인과 품질이 제대로 갖춰진 물건이기에 그만큼의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핀에어를 타고 가는 동안 핀란드 의류 및 식기 브랜드인 '마리메꼬 (Marimekko)'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기내 일회용품을 사용하면서(한 번 쓰고 버리기에는 정말 아까운 것들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가 디자인 강국의 국민으로서 갖는 긍지를 수긍하게 됐다.

핀란드 곳곳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은 디자인 강국의 자긍심은 그대로 남기고, 비싼 가격은 체에 걸러 휘발시킨 합리적인 공간이다. 그러니 핀란드의 디자인 감각을 제대로 소비하고 싶다면, 주말을 통째로 벼룩시장 투어에 할애해도 절대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다. 또 피다(Fida)나 UFF처럼 평일에도 갈 수 있는 세컨드핸드숍들도 많다. 벼룩시장은 주로 광장을 중심으로 열리는데, 히에타라하티(Hietalahdentori) 벼룩시장이 대표적이다. 키아스마 현대미술관을 가게 된다면 미술관 뒤편 공터에서 벼룩시장이 열려 애써 찾지 않아도 마주칠 확률이 크다.

하카니에미 마켓홀(Hakaniemen Kauppahalli)은 영화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가 식재료를 구매하는 곳으로 등장하기도 해 핀란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마켓 광장으로 등극했다. 순록 고기와 연어 스프 같은 북유럽 음식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복합 공간. 1941년에 문을 연 이곳은 신선한 식재료 용품점 외에도 2층에는 마리메꼬 패브릭을 저렴하게 파는 아웃렛, 핀란드라는 뜻의 '수오미(Suomi)'가 새겨진 핸드메이드 모자와 카디건 등을 파는 상점이 있다. 중고 서점과 마리메꼬 그릇을 파는 생활용품점도 있어 꺅 소리가 절로 나온다. 마리메꼬 패브릭이나 수오미가 새겨진 스웨터, 모자 같은 것들을 사오는 걸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나는 이곳에서 1960~1970년대 어린이 방 도면과 인테리어 도록이 실린 책을 찾아냈는데,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책이라 그런 것을 구매해낸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좀더 난이도를 높여서 적극적으로 벼룩시장을 찾아 나설 마음가짐이 됐다면, 하가헬리아 대학(HAAGA-HELIA University) 캠퍼스가 있는 파실라(Pasila) 근처 벼룩시장을 찾아가길 권한다. 이 벼룩시장은 주말에 열린다. 이른바 '창고형 벼룩시장'으로 겉에서 보면 그저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공장 같지만, 들어서는 순간 엄청난 광경이 펼쳐지니 잔뜩 기대를 하고 가도 좋다. 트램에서 내려 벼룩시장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벌써 양손 가득 득템한 짐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미 괜찮은 물건들이 팔려나갔다는 쓰린 속을 달래며 문을 여니 눈앞에 천국이 펼쳐졌다.

1950년대 패턴이 그려진 패브릭, 각종 식기류, 오래된 책, 부츠.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젊은이들까지 각자 가지고 나온 생활용품들이 압도적 크기의 실내 매장 안에 펼쳐졌다. 물건의 종류도 상당하고, 판매자도 많고, 구매자 역시 그만큼 많다. 일찍 가면 일찍 갈수록 기쁨은 배가 되는 곳이랄까. '북유럽' 브랜드라는 가치 때문에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그릇이나 패브릭도 이곳에서면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다. 가방이 허락하는 대로 사면 살수록 집안의 진귀한 소장품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이곳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금발의 할머니와 만난 시간이었다. 탁자 한가득 할머니가 판매하는 물건은 모두 액자였다. 금속 재질의 삐걱거리는 낡은 액자들이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으로 종류별로 모아져 있었다. 제대로 걸렸다. 유리나 금속 틀, 나무로 구성된 액자는 무게가 꽤 나가기 때문에 사기그릇만큼이나 구매를 기피하게 되는 물건이지만, 나는 늘 좋은 액자에 대한 욕구를 뿌리치지 못한다. 할머니의 액자는 그러니 여행자로서의 감당해야 할 무게와 액자 애호가로서의 욕망 사이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금단의 열매였다. 무얼 사야 할지가 아니라 무얼 포기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 고르는 데 애를 먹자 할머니가 자신을 가리키며 "내가 쓰던 물건이야"라고 말을 거신다. 쓰던 물건이라 헐값에 처분하는 거란 말씀이다. 이유를 물으니 "자식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 액자에 있던 가족사진을 꺼내서 넣어줬어" 하신다. 진부한 표현일 수 있지만, 그 순간 입가에 미소를 띤 할머니의 눈망울이 촉촉해진다.

오랫동안 그 액자에 담겨 있었던 사진을 생각해본다. 사각의 혹은 둥근 프레임 안에 사람들이 가두고 싶어하는 것들. 어릴 적 가족과 함께 떠났던 교외 나들이 사진, 대견한 자식의 졸업사진, 주름도 흰머리도 없던 젊은 날 자신의 흑백사진. 액자를 통과해서 개인이 간직한 추억의 한 장면으로 등극하자면 늘 까다롭고 엄정한 자기만의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흐트러지지 않고 단단하게 이 추억을 고정시켜줄 액자는 그래서 미적으로 아름답고 견고해야 한다. 특히 내부의 사진을 꾸며주되, 사진의 아름다움을 침범하지 않을 정도로 적정선의 아름다움을 지켜야 하며, 쉽게 질리지 않아야 하는 까다로운 미학의 산물이다. 그런 엄청난 가치를 지닌 액자를 나는 적은 돈을 지불하고 손에 넣는다. 깨지지 않도록 신문지에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주는 할머니의 손길에 조금 미안한 마음을 느끼면서.

역시, 추억의 무게는 상당하다. 다시 한번 깨닫지만 액자는 무겁다. 이걸로 충분하다 싶어 돌아 나오려는데, 시장 안쪽의 작은 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 나온다. 어깨는 이미 무겁지만 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이 경우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해 두자. 그 문을 열면 배송 문제로 당신이 사올 수 없는 엄청난 빈티지 가구들이 어지럽게 눈을 괴롭힐지니. 삶이 그대를 유혹하더라도, 너무 슬퍼하고 노여워하지 말길! 추억을 고정시켜주는 낡은 액자로 만족하기로 했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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