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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1일 06시 1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1일 14시 12분 KST

스포츠와 치팅, 페어 플레이를 생각하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두 가지 치팅이 논란이 됐습니다. 10월 10일 잠실에서 열린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 9회말. 두산의 타자 김재호는 넥센의 투수 조상우가 던진 공에 움찔한 뒤 몸에 맞는 공 판정을 받고 출루를 합니다. 비디오 리플레이에서는 김재호의 몸에 공이 맞지 않았습니다. 에스케이의 투수 김광현은 7월 9일 삼성과의 대구 경기 4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플라이볼을 잡지도 않았는데 잡은 것처럼 해서 홈으로 들어오던 최형우를 태그 아웃시켰습니다.

연합뉴스

속여서라도 이기는 게 맞는 것인가, 속여서 이긴 것은 부당한 것인가.

프로화된 현대 스포츠에서 '페어 플레이'와 '치팅'(속임수)은 쌍생아입니다. 페어 플레이라는 근본 가치의 소중함은 큰 변함이 없지만, 치팅도 여전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명예와 참여를 중요하게 여겼던 초기 아마추어 스포츠에서 돈과 명성, 영화가 따르는 프로 스포츠로 지형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알게 모르게 스포츠 치팅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는 절충주의적 생각이 퍼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페어 플레이라는 스포츠의 근간이 없다면 스포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치팅은 어떤 식으로든 억제되고 사멸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치팅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인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경기 때 나온 마라도나의 '신의 손'이 있습니다. 마라도나는 측면에서 올라온 공을 공중에서 손을 써 넣었는데, 주심은 헤딩슛으로 착각해 득점을 인정했습니다. 잉글랜드는 1-2로 져 탈락했고, 아르헨티나는 4강에 이어 결승까지 이겨 우승컵을 차지합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 아르헨티나-잉글랜드전에서 마라도나가 손으로 골을 넣는 장면.

하지만 마라도나가 속이 편했을까요? 마라도나는 거의 30년이 돼가는 옛일에 대해 잘못했다고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손에 의해서 들어갔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당한 입장에서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잉글랜드의 기자들이나 작가들은 아마 기회 때마다 마라도나의 정정당당하지 못한 행위를 조롱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두 가지 치팅이 논란이 됐습니다. 10월 10일 잠실에서 열린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 9회말. 두산의 타자 김재호는 넥센의 투수 조상우가 던진 공에 움찔한 뒤 몸에 맞는 공 판정을 받고 출루를 합니다. 결국 이 이닝에서 조상우는 밀어내기 볼넷으로 3-3 동점을 내줬고, 넥센은 10회말 3-4로 역전패합니다. 비디오 리플레이에서는 김재호의 몸에 공이 맞지 않았습니다. 김재호가 그대로 타석에 서 있었다면 경기는 그냥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음날 염경엽 넥센 감독은 작정하고 한 마디를 했습니다. "타석에 서면 (승부욕에) 나라도 맞았다고 할 것이다. 김재호는 잘못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은 해봐야 한다. 결국 피해자는 선수다. 요즘 같으면 비디오 리플레이로 사실이 드러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한테 간다"라고 따끔하게 짚었습니다. 저는 염 감독의 말에 100% 동의합니다. 비디오 테크놀로지가 없던 과거에는 판정이 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하지만 미세한 동작까지도 잡아내는 요즘에는 뒷말을 남기게 됩니다.

에스케이의 투수 김광현은 7월 9일 삼성과의 대구 경기 4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플라이볼을 잡지도 않았는데 잡은 것처럼 해서 홈으로 들어오던 최형우를 태그 아웃시켰습니다. 당장은 이닝을 끝내서 좋았겠지만, 역시 비디오 화면에 그대로 잡혀서 김광현한테는 오점으로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히 경기는 삼성이 이겼습니다.

축구나 럭비, 야구 등 현대 스포츠의 룰은 1800년대 잉글랜드나 미국에서 형태를 갖췄다고 얘기됩니다. 선수와 룰, 심판의 세 요소가 완성된 것이죠. 룰은 경기를 세련되고 만드는 동시에, 극단화된 승부에 의해 발생하기 위한 폭력 등도 제어하게 됩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오면 달라집니다. 프로리그가 활성화되면서 승리가 돈이고, 전부인 세상이 됐습니다. 아니 '승리가 전부는 아니다. 유일한 것'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아마추어 정신을 강조해온 올림픽조차 인기와 재정 확충을 위해 1984년을 기점으로 프로에 문호를 개방하는 쪽으로 접어 듭니다. 실격이 될 만한 일이든, 부끄러운 일이든 신경 쓰지 않고 승리만을 향해 나가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도핑 또한 대표적인 치팅입니다.

스포츠의 근본 원리나 철학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의 승자를 인정하고 그 노력을 평가하는 것은 공정한 룰이 있다는 전제 때문입니다. 룰은 공정성이 생명인데, 룰을 위반한 치팅이 받아들여진다면 스포츠의 근본을 부정하는 것이어서 어불성설이 됩니다. 스포츠는 몸과 마음의 최고 상태를 겨루는 경기이고,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것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규칙으로 제재하고, 그 규칙이 무너지면 스포츠가 무너져 버립니다. 지난해 3월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브레멘의 아론 훈트 선수는 뉘른베르크 진영의 벌칙구역 안으로 파고들다가 넘어져 페널티킥을 얻습니다. 하지만 주심에게 다가가 "스스로 넘어진 것이지 상대 수비의 반칙이 아니다"라며 판정을 번복시킵니다. 팬들은 그런 모습에서 진짜 스포츠의 매력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국내 프로축구에서는 사후 비디오 판정으로 심판이 보지 못한 선수의 폭력 행위 등을 잡아내 징계하고 있습니다. 물론 경기의 결과나 당시 이뤄진 판정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페어 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팬과 시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 의식으로 제도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과거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보수적인 생각에서도 벗어나고 있습니다. 야구는 폭력행위 등 명백한 선수 위해 행위는 처벌하지만, 기타 경기 중 발생한 크고 작은 속임수에 대해서는 사후 징계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종목의 특성상 딱 꼬집어서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기에는 미묘한 상황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경기 중 발각되지 않았다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세상이 됐습니다. 팬들은 다 압니다.

올해 발생한 프로야구의 치팅이 선수들로 하여금 좀더 의식적으로 치팅을 경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음달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에는 김광현과 김재호가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팬들에게 사과하면 더 좋구요.

훈트 선수의 페널티킥 번복 동영상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