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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때도 "국정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와 맞지 않다"

  • 허완
  • 입력 2015.10.20 06:53
ⓒ한겨레

박근혜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지키기’를 내세우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지만, 30년 전 군사정권 시절인 전두환 정부 때도 ‘국정 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가 나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보고서는 또한 교과서 국정체제가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성이 필요한 미래세대 교육에 적합하지 않고 나아가 학문의 발전에도 저해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19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이 1986년 작성한 ‘교과서와 교과서 정책’ 보고서를 보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은 교과서 정책에 있어서 자유발행제를 기조로 하고 있다. 권위주의 또는 통제사회에 어울리는 교과서 정책(국정체제)으로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실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중앙의 결정에 의하여 획일화를 유발하는 조처는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부합되기 어렵다”며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비추어서도 자율과 경쟁에 의해서 질 좋은 교재가 개발되도록 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1985~1987년 대통령 직속기구로 교육개혁을 추진했던 교육개혁심의회가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을 검토하던 과정에서 작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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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각 개인으로 하여금 위로부터의 권위에 의해서 주어지는 결정에 따라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과 참여에 의해서 각자가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지도록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창의와 경쟁에 의해서 결정의 질을 보장하도록 하며, 결정의 다양성을 허용(해야 한다)”이라고 말했다. 이런 지적은 헌법재판소가 1992년 교과서 발행체제에 대해 내린 헌법소원 판결에서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하여 획일화를 강제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이념에 부합하는 조처라 하기 어렵다”고 밝힌 내용과 유사한 것이다.

보고서는 “지난 74년부터 국정화된 교과서가 선을 보이자… 학생들은 단일 교과서에서 한가지 내용만을 배워, 역사의식을 배우기보다는 단편적 지식을 알기만 하면 역사 공부가 끝나는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현행 교과서 정책(국정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그 경직성과 폐쇄성으로 인하여 학습의 효과를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교육부가 내세우고 있는 대표적인 슬로건인 ‘창의 인재 양성’과 관련한 대목도 있었다. 보고서는 “다양성은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우리는 교육 과정에서 이러한 다양성을 적절히 포용함으로써 보다 개방적이고 창의로운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며 “현행 교과서 정책(국정체제)은… 여러 대안들이 경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함으로써 획일적인 교육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래세대를 살아갈 학생들이 특정한 내용과 사고방식에만 붙박이도록 하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결론에서 “2000년대를 내다보는 장기적 전망하에서 국가가 발행을 담당하고 있는 1종 도서(국정 교과서)는 점차 검인정으로 확대(해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양정현 부산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권위주의 정부라는 조건 속에서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책연구기관도 국정 교과서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했다. 국정화를 강행하는 박근혜 정부가 80년대도 아닌 70년대로 거꾸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보고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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