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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0일 06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0일 14시 12분 KST

'헬조선'은 불평분자들 마음속에 있다고?

남 씨가 쓴 글의 요지는 노력도 안 한 것들이 뼈 빠지게 노력한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가당찮게 질투한다는 것이다. 남 씨가 보는 세상은 엄청나게 단순하다. 출발(부모 등 출생)이 완전히 평등하고, 경쟁의 룰이 철저히 공정하며, 특권과 지대 등이 전부 소거된 세상에서 오직 개인이 노력을 통해 이룬 "학벌과 실력"에 따라 공평한 보상이 주어지는 세상이 남 씨가 아는 대한민국이다. 물론 이런 대한민국은 남 씨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월드다.

한겨레

〈조선〉에 남정욱이라는 사람이 헬조선을 비판하는 젊은이들을 준엄하게 꾸짖는 글을 기고했다.([Why] '헬조선'은 불평분자들 마음속에) 칼럼의 일부를 인용하겠다.

나도 서울대 가고 싶었다. 일단 폼이 난다. ... 대학에 가서 알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신나게 놀아 젖힌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지를.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소개팅 자리에서는 석조(石造) 인간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실력이 없어서 못 간 것이라 하나도 분하지 않았고 서울대 다니는 애들이 대접받는 것을 시샘해 본 적도 없다. 서울대 못 간 놈이 비슷한 대접을 바란다면 그건 정말 나쁜 놈이다. 최소한 나쁜 놈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삼성 가고 싶었다. 같은 이유로 역시 못 갔다. 대신 정규직이라는 사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직원 열 명 미만의 회사를 전전했다. 대접 못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인격적인 모독이나 불합리한 근무 조건을 감수해야 했고 임금은 수시로 떼였다.

... 청년 실업이 심각한 문제라고 하는데 100% 동의하기 어렵다.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다. 학교에 부스를 설치하고 취업 상담을 하는 업체들에 물어보면 작은 회사에는 전혀 관심을 안 보인단다. 작은 데다 지방이면 절대 안 간다. 학벌이나 실력에 따라 차등의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피나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눈앞의 즐거움을 희생해가며 도서관을 들락거린 애들에 대한 모욕이다. 노력의 대가를 바라는 것이 당연하듯 노력하지 않은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세상은 고수들에게는 놀이터고 하수들에게는 지옥이다'라는 영화 대사가 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이 대사에 정신이 번쩍 들어야 한다. '헬조선'은 분수(分數)를 상실한 불평분자들의 마음속에 있다. '헤븐 조선' 역시 마음속에 있듯.

남 씨가 쓴 글의 요지는 노력도 안 한 것들이 뼈 빠지게 노력한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가당찮게 질투한다는 것이다. 남 씨가 보는 세상은 엄청나게 단순하다. 출발(부모 등 출생)이 완전히 평등하고, 경쟁의 룰이 철저히 공정하며, 특권과 지대 등이 전부 소거된 세상에서 오직 개인이 노력을 통해 이룬 "학벌과 실력"(남 씨가 생각하는 노력은 주로 입시에서 높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노력이고, "학벌과 실력"은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 같다. 즉 남 씨는 입시에서 높은 성적을 올려 명문대에 진학한 사람은 "헤븐 조선"에서 살 자격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헬조선"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에 따라 공평한 보상이 주어지는 세상이 남 씨가 아는 대한민국이다. 물론 이런 대한민국은 남 씨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월드다.

리얼 대한민국은 출생(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물려받는 재능, 교육 받을 수 있는 기회, 상속받는 자산 등이 천지 차이다)에 따라 거의 운명이 규정되는 신분제 사회이고, 게임의 룰은 메인스트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며, 자리와 지위와 위치에 따라 특권이 넘치는 사회다. 좋은 부모를 만난 사람은 우월한 환경에서 부모의 전폭적인 물적, 심적 지원 아래 입시에 전념해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진학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좋은 일자리를 독식하며,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부동산 등 자산으로 호의호식한다. 그리고 이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어김없이 대물림된다.

남 씨가 오로지 노력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는 것처럼 묘사한 입시 매커니즘을 살펴보자. 사회경제적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전쟁이라 할 입시에서 명문대 출신들은 터무니없이 과도한 특권을 누린다. 이들이 이룬 성취라고 해 봐야 10대 후반에 입시에서 남들보다 더 많은 점수를 올린 것 뿐이다. 이룬 성취에 비해 보상이 터무니없이 불비례하는 것도 문제지만, 성취의 원인도 문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시험 잘 보는 게 부모의 재력과 관심 때문일까? 아니면 개인의 노력 때문일까? 몇몇 예외가 있지만 단연 부모의 재력과 관심이 자녀들의 높은 성적의 원인이다. 그리고 공부가 머리와 습관의 결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개인의 노력조차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공부와는 담쌓은 가난한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란 자녀가 공부를 잘 할 수 있겠는가? 그건 너무나 뻔뻔하고 부당한 요구다.

그 동안 〈조선〉을 필두로 한 비대언론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불평등의 대물림을 애써 외면해왔다. 그런데 놀랍게도〈조선〉에 실린 남 씨의 칼럼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오직 개인의 노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호도하며,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강력히 옹호하고 있다.〈조선〉에 묻는다. 〈조선〉의 생각도 남 씨의 생각과 같은 것인가? 〈조선〉의 솔직한 대답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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