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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맘사건'이 아니라 '벽돌사건'이다

이번 사건은 한 무고한 시민이 갑자기 떨어진 벽돌로 인해 사망한 '비극'이었다. 하지만 경찰의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와중에 우리들은 사건의 초점에서 벗어나, 길고양이 자원봉사자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상처주기를 목도해야만 했다. 자극적이며 불필요한 속칭 '캣맘 VS 캣맘 혐오자'의 대립을 부추기는 기사가 양산된 것은 물론이며, 각종 포털에는 연관 검색어로 '캣맘 괴롭히기' 혹은 더 도를 넘어 '고양이 살해 방법' 등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 강민영
  • 입력 2015.10.17 09:31
  • 수정 2016.10.17 14:12

지난주, 아파트에서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자원봉사자 한 분이 아파트 상단에서 떨어진 벽돌에 머리를 맞아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현장의 증거물인 '벽돌'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했으나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하던 찰나, 한 초등학생의 자백으로 인해 '벽돌 사망 사건', 속칭 '캣맘 사건'은 용의자 수배 단계에서 벗어나 다른 국면으로 흐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사건의 진행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무척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사건 자체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지칭하는 관점으로 조망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이었다.

그 동안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을 보살피는 활동, 이른바 '구조' 혹은 '치료'활동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벽돌 사건'은 길고양이 자원봉사자를 혐오하는 사람에 의한 고의적인 행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은 맞다. 이는 곧 우리 사회에 거리의 동물을 보살피려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있었던 것, 그리고 그 갈등이 장기적으로 해결되어야만 한다는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갈등과는 무관하게, 이번 사건은 한 무고한 시민이 갑자기 떨어진 벽돌로 인해 사망한 '비극'이었다. 하지만 경찰의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와중에 우리들은 사건의 초점에서 벗어나, 길고양이 자원봉사자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상처주기를 목도해야만 했다. 자극적이며 불필요한 속칭 '캣맘 VS 캣맘 혐오자'의 대립을 부추기는 기사가 양산된 것은 물론이며, 각종 포털에는 연관 검색어로 '캣맘 괴롭히기' 혹은 더 도를 넘어 '고양이 살해 방법' 등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모 매체에서는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일을 놓고 '캣맘 행위 놓고 설전'이라는 비하성 기사의 제목을 사용하기도 했다. 마치 용인 벽돌 사망 사건이 피해자의 잘못이며, 이는 곳 '캣맘'이라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이 살해 동기를 제공했다는 식의 무책임하고 자극적인 기사들이 수십 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용인 벽돌 사건'이 발생한 이후, '카라'에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가 하루 십 여 통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가 막히게도 '길고양이가 많아 분쟁이 있는 지역의 촬영을 도와달라' 혹은 '길고양이 혐오자로부터 피해를 입은 캣맘을 소개해달라' 또는 '길고양이로 인한 분쟁 사례를 알려달라'는 요청들뿐이었다. 길고양이 자원봉사자, '케어테이커'들은 길고양이 문제를 유발한 사람들이 아닌, 오히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역사회의 시민임을 알려주거나, 갈등이 해결되어 유기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나갔던 지역의 소개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수많은 언론들은 위와 같은 자극적인 기사 배포를 통해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기보다는 '캣맘'과 '살해 동기'를 엮으려는 시도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언론의 이러한 잘못된 태도는, 현재 '용인 벽돌 사건'이 초등학교 4학년의 어린이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경찰 조사 결과 발표 이후에도 화살의 방향만 돌려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초등학교 어린이에 대해 서슴없이 '살인용의자'라는 말을 기사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경이다. 이 문제가 사회 잘못이라거나 사건이 일어난 장소의 안전성에 대한 잘못으로부터 야기되었다는 사실로부터 멀리 벗어나, 대상만을 바꾸어 어떻게든 흑백논리를 끼어 맞추고 마녀사냥을 서슴지 않는 시각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발표 및 자수가 일어나고 나서 한 매체는 "길고양이를 '닭둘기'처럼 유해동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찬반논쟁이 붙었다"라는 기사를 쓰며 또 다시 동물과 사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길고양이'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기도 했다. '닭둘기'나 '길고양이'도 결국 사람이 만든 단어이며 현재 혐오의 끝을 달리고 있는 '길고양이 이슈' 또한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 결국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우리라는 것을 왜 외면하고만 있는 것일까. '생명과 동물에 대한 사회 정의의 합의', '공존을 위한 논의' 등 거창한 단어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공정한 언론이라면 최소한 어떤 자극성으로 진실을 치장하기보다 '사실'에 입각한 보도를 통해 여론에 호소하여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각종 대형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는 '캣맘'이라는 단어로 도배되어 있다. 이 단어가 다른 수많은 단어들을 제치고 화두에 오를 수밖에 없음은, 범죄 동기를 집착적으로 찾아 어떻게든 인과관계를 생성하려 노력하는, 다시 말해 '지나치게 과열된' 현 사회를 비추는 단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용인 벽돌 사건'을 지켜보는 시간은 곧, 사람으로 인해 버려지고 사람으로부터 학대당한 길 위의 많은 생명들에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녹록지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고하게 희생당하신 한 시민께 깊은 조의를 표하고 싶다. 또한 사건의 수사가 명확하게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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