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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6일 10시 5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16일 14시 12분 KST

법은 하나의 '방법'일 뿐

낙인이 찍힌 소수자 집단의 구성원이 겪는 만성적 스트레스를 뜻하는 '소수자 스트레스'는 사회적 지지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음으로 인해서도 발생하지만, 편견과 차별이 주된 요인이라는 사실이 여러 경험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차별금지법조차 없는 한국의 경우라면 그 정도가 더 심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성소수자 중 28.4%가 자살을, 35%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다는 구체적인 보고도 있었다(친구사이·2014). 특정한 속성을 가진 소수자들이 다수자들의 편견과 차별 때문에 그 공동체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공적 개입이 불가피하다.

홍성수의 혐오시대유감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 행동과 무지개 농성단이 지난해 12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발언한 박원순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시청에서 점거 농성을 벌였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한국 사회에서 혐오표현이 문제되기 시작한 게 벌써 수년 전이다. 아직 관련 법규는 없지만 인종차별적 표현을 모욕죄로 처벌한 판결이 나왔고, 국회에도 혐오표현 규제 법안이 여러 차례 제출된 바 있다. 한두 해 전부터는 시민사회와 학계에서의 논의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혐오표현의 개념과 본질에 대한 합의 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혐오표현의 본질이 '차별'이라는 점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혐오표현을 '차별'로 보는 것이야말로 혐오표현 규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범죄화, 화끈하지만 단점 뚜렷해

혐오표현의 규제 방법에는 형사처벌 등의 강경론으로 대응하는 '유럽식 접근'과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는 '미국식 접근'이 있다. 형사처벌을 하더라도 직접적 행동을 야기하는 선동(incitement)에 한정된다면 약한 버전의 유럽의 길이 될 것이다. 형사처벌보다는 민사적 구제나 차별 시정이 선호된다면 미국의 길에 좀더 가까운 해법이다. 아예 법을 동원하지 않고 언론이나 교육, 문화적 해법을 선호하는 쪽이라면 비규제론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가장 강경한 대응은 혐오표현을 '범죄화'하는 것이다. '인종차별 철폐 협약'에는 인종에 관련한 혐오표현이 범죄로 명시되어 있고, 유럽 차원에서도 회원국들이 인종 혐오표현을 범죄화하라는 취지의 협약이 채택된 바 있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이나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캐나다·브라질 등의 나라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혐오표현에 대한 형사처벌 법규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도 인종 및 출생 지역 등을 이유로 한 혐오를 처벌하는 형법 개정안이 제출된 바 있다.

범죄화는 화끈한 해법이지만 그만큼 장단이 뚜렷하다. 일단 국가가 공식적으로 혐오표현을 '범죄행위'로 확정하는 것 자체가 갖는 효과는 엄청나다. 모든 혐오표현을 남김없이 처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해도, 그 상징적 의미가 갖는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인이 "동성애자 무리는 더러운 좌파"라고 공개적으로 얘기해도 아무런 정치적·사회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거꾸로 동성애 장면을 제재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혐오표현 범죄화는 너무나도 먼 얘기다.

설사 혐오표현에 대한 범죄화가 추진된다고 해도, 혐오표현에 대한 판단 권한을 국가가 독점할 때의 위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혐오표현은 여전히 그 개념조차 불분명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상적인 구성 요건으로 혐오표현을 규제한다면 사법기관에 지나치게 광범위한 재량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직접적 선동이나 허위 사실에 해당하는 혐오표현에만 적용되도록 적용 범위를 좁힌다면 본래의 규율 목적이 무력화될 수도 있다. 한 사전(Contemporary Legal Issues: Homosexuality and the Law - A Dictionary, 2001)에서는 혐오표현의 단계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3, 4, 5번 표현만 처벌해야 할까?

1. "나는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믿는다."

2. "동성애는 병이며 죄악이다."

3. "Fags는 지옥에 떨어져 불타버려야 해."

4. "죽어버려라, 이 Fag야."

5. "이 Faggot야, 너는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Fag(got)는 남성동성애자를 비하하는 표현임.

위쪽으로 갈수록 표현의 수위도 낮고 물리적 폭력을 야기할 선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신념·의견에 가깝고 아래쪽으로 갈수록 그 반대다. 그렇다면 형사처벌은 어느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할까? 만약 3번에서 5번 정도의 표현만 규율 대상으로 삼는다면, 1번과 2번과 같이 점잖은 표현으로 은밀하게 차별을 조장하는 발언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노골적이고 위협적인 표현만 처벌되고, 점잖게 편견을 드러내는 것은 처벌되지 않을 수도 있다. 쉽게 흥분하고 부주의한 사람만 처벌 대상이 되고, 교묘하고 전략적으로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은 법망을 쉽게 빠져나갈 수도 있다. 아마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같은 곳에서는 1번과 2번같이 하고 싶은 얘기는 하면서 법망을 빠져나가는 '기법'이 널리 소개될 것이다.

형법의 판단은 일도양단이다. 죄 아니면 무죄다. 이론상 무죄는 '국가형벌권을 동원할 문제가 아님'이 소극적으로 표명된 것에 불과하지만, 현실에서의 무죄는 '문제 없음'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혐오표현 중 '일부'가 범죄화되면, 그동안 도덕/비도덕, 사회적/반사회적 등 다양한 가치판단에 의해 논의되던 것들이 급격하게 법/불법이라는 논점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전에는 반사회적이라고 비판받던 것들이 '합법이라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엉뚱한 정당화 기제를 갖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형사처벌은 문제의 진정한 원인과 핵심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물만을 처벌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범죄를 낳은 것은 '사회'인데, 처벌받는 것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문제다. 혐오표현 문제를 야기한 주범 중 하나인 일베의 경우, 일베 이용자들보다는 일베로부터 얻는 이익을 즐기는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봐야 마땅하다. 그들의 침묵과 암묵적 지지가 일베를 사회적으로 위험한 존재로 승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베 이용자를 법정에 세우기보다는, 정치인과 사회지도층 인사에게 일베에 대한 입장을 집요하게 따져물음으로써, 일베를 정상적인 사회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해법일지도 모른다.

지난 6월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16회 퀴어문화축제. 한겨레 이종근 기자

공적 개입 불가피한 수준인 '소수자 스트레스'

이러한 형사처벌의 한계 때문에 혐오표현 범죄화는 최대한 신중해야 하며, 범죄화한다고 해도 좁은 범위만을 한정적으로 규율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남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력한 방법은 차별금지법과 차별시정기구를 통한 비사법적 구제(non-judicial remedies)다. 구체적으로는 조정, 시정권고(차별 행위의 중지, 피해의 원상회복, 차별 행위의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 기타), 시정명령, 이행강제금 부과, 사법적 구제(법원 임시조치, 손해배상 등) 지원 등이 순차적 또는 병렬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형사처벌보다 강력하진 않지만, 어쨌든 국가기구가 혐오표현의 불법성을 확인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혐오표현을 '차별 행위'로 보고 다른 차별 행위와 함께 통일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접근성이 높고, 사안을 다루는 절차나 구제 방법이 사법 절차보다 유연하고 피해자 친화적이라는 점도 문제 해결에 유리한 지점이다. 하지만 비사법적 구제는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일반적인 표현을 다루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혐오표현도 표현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에 내버려두자는 '불개입'의 입장도 있다. 하지만 혐오표현 규제에 대한 국제적 합의 수준이 상당한데다 민주주의 국가치고 혐오표현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경우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불개입'의 대표적인 나라로 알려진 미국만 해도 혐오표현이 실제 차별을 야기하는 순간부터는 철저하게 규제하거나 다양한 비공식적인 제재 수단을 작동하고 있다.

굳이 외국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혐오표현이 규제가 필요한 수준의 실질적 해악을 야기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낙인이 찍힌 소수자 집단의 구성원이 겪는 만성적 스트레스를 뜻하는 '소수자 스트레스'는 사회적 지지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음으로 인해서도 발생하지만, 편견과 차별이 주된 요인이라는 사실이 여러 경험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혐오표현이 그냥 흘려듣거나 맞대응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님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차별금지법조차 없는 한국의 경우라면 그 정도가 더 심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한국에도 최근 소수자 스트레스가 성소수자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나왔고(이호림·2015), 성소수자 중 28.4%가 자살을, 35%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다는 구체적인 보고도 있었다(친구사이·2014). 특정한 속성을 가진 소수자들이 다수자들의 편견과 차별 때문에 그 공동체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공적 개입이 불가피하다.

'표현의 자유' 축소로 이어지지 않게

결국, 법적 개입의 대략적인 개요는, 차별금지법이 혐오표현에 대한 전반적인 규제를 주도하도록 전체 판을 짜고, 직접적인 차별 선동에 대해서는 좁은 범위의 형사처벌 가능성을 모색하는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향의 입법운동에 박차를 가하되, 여전히 법은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는 점이 간과되어선 안 된다. 소수자들이 온전하게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투쟁이다. 법은 그 결과물일 뿐, 법이 그러한 싸움을 주도해서도 안 되고, 궁극의 승리를 보장해주는 수단이 될 수도 없다. 혐오표현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여전히 자율적 시민사회의 몫이며, 법은 오로지 자기 제한적인 방식으로 기껏해야 부분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 필요한 전제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우려했던 문제, 즉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전반적 축소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제동장치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겨레21과 함께 연재한 '홍성수의 혐오유감시대'는 이번 글을 끝으로 마칩니다. 앞선 연재 글은 여기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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