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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5일 11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0월 15일 11시 43분 KST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인 싱가포르는 어떻게 LGBT 인권을 제한하고 있는가

케네스 치(왼쪽)와 게리 림은 18년 째 사귀고 있다. 싱가포르의 커플인 그들은 2012년에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는 식민지 시대 법인 377A조가 헌법에 부합하는지 소송을 냈다. “우리는 ‘불법’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치의 말이다.

이 기사는 동남아의 LGBT 커뮤니티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활동가들의 용감한 행동을 조명하는 동남아 LGBT 인권에 대한 10편 시리즈의 세 번째 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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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 케네스 치와 게리 림은 거의 20년 동안 함께 해왔지만, 법적으로는 그들은 범죄자이다.

그들은 1997년에 싱가포르의 쇼핑 몰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때 내 ‘게이다’가 켜졌던 것 같아요. 그냥 그에게 가서 전화번호를 물었어요.” 그 뒤로 그들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동성 결혼이 여기서 합법이었다면 우리는 당장 결혼할 거예요.” 림이 말한다. 치가 그의 옆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동성 결혼은 싱가포르에서 합법이 아니다. 동성 결합도 인정되지 않으며, 젠더 표현이나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에서 보호해주는 법도 없다.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싱가포르는 2007년에 식민지 시대 형법 377조를 폐지해 화제가 되었다. 377조는 항문과 오럴 섹스를 포함한 ‘자연의 규칙에 어긋나는 섹스’를 범죄로 규정했다. 1860년에 만들어져 여러 영국 식민지에 적용되었던 이 법은 아직도 인도, 말레이시아, 미얀마에서 살아있다. 이 법은 ‘영국이 수출한 가장 사랑스럽지 않은 법’이라 불린다.

377조는 없어졌지만, 관련 조항인 377A 조는 남아 있다. 377A 조는 두 남성 사이의 성관계를 명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동성애는 범죄가 되고 최고 2년형까지 처벌 받을 수 있다.

싱가포르의 LGBT 커뮤니티는 격분했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림과 치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왜 우리를 지목해서 처벌하는 거죠? 이성애자들이 항문 섹스, 오럴 섹스를 하는 건 합법인데, 왜 우리를 범죄자로 보는 거죠? 이 법이 우리의 뇌리를 떠나지 않아요.” 림의 말이다.

‘노골적인 차별’에 분노한 이들은 법정에서 이 법에 도전하기로 했다. 분명 흔치 않은 행동이었다.

“나는 이 터무니없는 낙인을 받아들이길 거부합니다. 우리는 ‘불법’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치의 말이다.

2010년, 탄 엥 홍이라는 싱가포르 남성이 공공 화장실에서 다른 남성과 오럴 섹스를 했다가 377A에 의해 기소 당했다. 당시 탄은 이 법이 합헌인지 도전했다. 2년 후, 림과 치가 두 번째로 도전했다.

이들의 변호사인 피터 로우에 의하면 싱가포르의 현대 역사에서 법의 합헌성을 도전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지난 10월, 법원을 오가던 이 사건의 최종 판결이 나왔다. 싱가포르 최고 법원은 377A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싱가포르에서 동성애는 지금도 불법이다.

“우리는 아주 실망했습니다. 메시지는 분명했어요. 우리는 변화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거죠.” 림은 음울한 표정으로 입술을 오므린다.

싱가포르 정부는 377A 조를 ‘주도적으로 강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단 엥 홍의 경우, 그의 혐의는 후에 ‘공공 장소에서 음란 행위를 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LGBT 인권 단체 사요니의 공동 창립자 진 총은 이 법은 강제되든 되지 않든 싱가포르의 LGBT 커뮤니티와 전반적인 인권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377A 조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연쇄적인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여론을 조성하고, 정책에 영향을 주죠. LGBT 커뮤니티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그녀의 말이다.

30세 게이 남성인 스콧 텡은 이 법에 대한 정부의 자세가 마치 “사람 머리에 총을 대고 ‘우린 절대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그게 싱가포르의 상황입니다. 과연 어느 시점에 방아쇠를 당길지 늘 의문을 품게 되죠.”라고 말한다.

이런 법은 소외를 부추길 수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사람들이 당신을 열등한 싱가포르인으로, 열등한 인간으로 대하는 걸 정당화시켜 준다. 그에 따른 영향으로 개인적인 경험까지 달라진다.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말을 사용하게 된다.” 브랜드 컨설팅 회사의 부책임자인 텡의 말이다.

“어머니에게 처음 커밍 아웃했을 때는 끔찍했다. 우리 가족은 아주 전통적이고, 내가 처음 받았던 대답은 ‘내 집에서 나가, 이 악마의 자식!’이었다. 어머니는 아주 힘들어 하셨다. 그러나 몇 달 걸리긴 했지만, 어머니는 받아들이셨고 이제 어머니는 정말이지 최고의 엄마다.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엄마는 네 편이다.’” 스콧 텡의 말이다.

사요니는 몇 년째 싱가포르의 LGBT 커뮤니티에 대한 폭력과 차별의 사례들을 기록하고 있다.

총은 대부분의 학대는 신고가 잘 되지 않고, 자신이 들은 여러 이야기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트랜스젠더 여성들과 동성애자 여성들은 외모 때문에 공격 받았던 이야기를 한다. 성적인 공격도 가끔 있다. 어느 트랜스젠더 여성은 호텔 방에서 윤간 당했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트랜스젠더이고 과거에 성 노동을 했기 때문에 편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총은 가난하고 학력이 낮은 사람들이 특히 학대에 취약하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할 어휘가 부족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원도 적다.” 이들은 아직 작지만 성장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LGBT 커뮤니티에 접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아빈 탄은 30세 게이 남성으로, HIV 감염자이다. 탄에 의하면 싱가포르에서 HIV에 걸린 게이 중 자신의 상태를 공개적으로 밝힌 사람은 둘 뿐이라고 한다. 1999년에 HIV 합병증으로 숨진 패디 츄가 첫 번째였고, 탄은 두 번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커밍 아웃을 해야 한다. 배짱이 필요하고 분명 위험이 따르지만, 온갖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다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만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싱가포르 TV 드라마 최초의 게이 주인공은 2003년에 채널 U에서 방영된 다큐-드라마 ‘크런치타임’에 등장했다. 기념비적인 순간이었으나 실화에 근거한 드라마는 동성애 혐오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드라마에서 동성애는 정신 질환으로 묘사되었다. 주인공 샤오후아는 ‘올바르고 정상적인’ 길을 찾기 위해 카운셀링을 받는다. 드라마가 끝날 때 샤오후아는 여성과 결혼해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산다.

이런 스토리라인은 싱가포르에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좋은 직업이나 가족들의 지원을 받는 행복한 LGBT 캐릭터는 싱가포르 텔레비전에서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들은 슬프고 힘들어 하거나 자살 충동을 느껴야 한다. 중국 드라마에서는 게이 캐릭터는 연쇄 살인범이거나 코믹한 조연인 경우가 많다.” LGBT 활동가이자 기업 변호사인 파에린 초아의 말이다.

싱가포르의 매체 발전 당국이 만든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동성애 라이프스타일의 옹호나 미화’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남성 동성애, 여성 동성애, 양성애, 성전환, 복장 도착, 소아성애, 근친상간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정보, 테마, 부차적 줄거리는 극도로 주의하여 다뤄야 한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을 어떤 식으로든 옹호, 정당화, 미화해서는 안 된다.” 가이드라인의 내용이다.

매체 발전 당국은 또한 ‘마약, 대안적 라이프스타일(동성애 등)이나 오컬트 내지 악마 숭배와 관련이 있는 음악’은 방송되어서는 안 된다고 정했다.

활동가들은 이러한 매체 제한이 그들이 조직하고 옹호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싱가포르에서 HIV 진단을 받은 6천 명 중 50% 이상이 게이 남성이지만, ‘매체 법 때문에 우리는 LGBT를 대상으로 한 캠페인을 펼칠 수 없다.” 싱가포르에서 HIV/AIDS에 대한 경각, 치료, 예방을 알리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는 유일한 단체인 액션 포 AIDS 싱가포르의 지지 및 파트너십 담당자 아빈 탄이 허핑턴 포스트에 전했다.

그는 심지어 주류 매체에 ‘콘돔 광고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우리는 클럽에 포스터를 붙이거나 소셜 미디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 목소리는 커뮤니티의 10%까지밖에 닿지 않아요.”

HIV 감염자인 탄은 이러한 제한이 옹호자들을 좌절시킬 뿐 아니라, 자신들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취약한 사람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진단 받지 않은 감염자들이 HIV 진단을 받은 사람들만큼 있어요. 현재 HIV/AIDS에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심각한 정보 부족입니다.” 탄이 아직 발표되지 않은 액션 포 AIDS의 연구를 인용해 말한다.

싱가포르 국립 대학교 건축학 박사과정인 32세의 칭 S. 시아는 올해 오스트레일리아에 가서 난자를 냉동할 예정이다. “어렸을 때부터 언젠가는 가족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동성애자 여성으로서, 내가 원할 때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그러나 싱가포르의 LGBT 커뮤니티가 여러 장애물을 마주하고 있긴 하나, 싱가포르 국립 대학교 법학 조교수이고 ‘게이 싱가포르를 동원하다 Mobilizing Gay Singapore’의 저자인 리넷 추아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학자로서 오직 결과만을 연구하고, 법전의 법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가 주된 관심사라면, 싱가포르의 행동주의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다른 결과를 보고,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본다면 분명 진보가 이루어졌어요.”

싱가포르의 LGBT 행동주의는 25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추아에 의하면 1990년대 초반에 작은 커뮤니티 단체들에서부터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에야 활동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싱가포르의 첫 공개적 게이 프라이드 행사인 핑크 도트가 시작되었고, 사요니는 2012년에 설립되었다.

추아는 LGBT 운동이 지난 10년 동안 덩치가 커졌다고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더 일찍 커밍 아웃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활동가들이 많아졌고, 정부는 “게이 행동주의의 존재를 인정하려는 의지를 더 많이” 보이고 있다고 한다.

“2009년에만 해도 ‘게이’라는 단어는 아주 터부시 되었다. 매체에서 사용되지 않았고, 공개적으로는 잘 쓰이지 않았다. LGBT 행사는 은밀한 곳에서 열렸다. 사람들은 아웃팅을 두려워 했고, 직장을 잃고 가족들이 알게 될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서서히 바뀌고 있다.” 핑크 도트의 대변인 파에린 초아의 말이다.

LGBT 커뮤니티의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정말로 공통된 감정이 느껴진다. 희망이다.

“내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 ‘게이’라는 단어는 내게 무척 역겨운 단어였다. 나는 그 단어를 입에 담기조차 힘들어 했다. ‘게이’라는 단어에 관련된 자긍심이 전혀 없었다. 부정적인 힘만 가진 단어여서, 나는 내가 그렇게 불리고 싶은지 자문하곤 했다.” 텡의 말이다.

그러나 상황이 ‘상당히 변했다’고 그는 말한다.

“이제 게이라는 것에 여러 가지 긍정적인 속성이 연관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더 좋은 맥락으로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게이 롤 모델이 없었지만 이제 그것도 달라졌다.” 텡의 말이다.

최근 싱가포르 셀러브리티 몇 명이 커밍 아웃했다. 유명 코미디언 쿠마르가 몇 년 동안이나 부정하다가 2011년에 게이라고 밝혔다. 작년에는 배우이자 연극 연출자인 이반 헹이 감동적인 페이스북 포스트를 올려 오랫동안 사귄 남자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밝혔다.

핑크 도트의 대변인인 파에린 초아는 LGBT 커뮤니티가 ‘더 겁이 없어졌다’고 한다. 젊은 세대는 ‘사회의 규범을 많이 두려워하거나 속박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핑크 도트 참가자 수를 봐요. 첫 해였던 2009년에는 2,500명이 참가했어요. 다음 해에는 4,000명이 왔고, 2015년에는 28,000명이 왔어요.”

(그러나 보수적인 크리스천과 무슬림 집단이 신자들에게 핑크 도트에 반대할 것을 요구하는 등 나름의 어려움은 있었다.)

다른 방식으로도 진보를 볼 수 있었다.

24세의 트랜스젠더 영화 제작자 크리스토퍼 코르는 내년에 싱가포르의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대한 획기적인 다큐멘터리를 발표할 예정이다.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는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내가 아는 최초의 트랜스젠더였다. 우리는 이 영화가 트랜스젠더를 ‘타인’으로 보는 시각에 도전장을 내길 바란다.” 코르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법률 전문가와 활동가들 모두 377A 조가 곧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내 생전에 없어지진 않을 겁니다.” 변호사 피터 로우의 말이다.

활동가들은 목표를 이루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잔뜩 있다고 말한다.

“긴 싸움이 될 거예요. 활동가들은 기초를 다져야 하고,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거예요. 미국을 보세요. 동성 결혼을 어떻게 얻어냈죠? 활동가들이 여러 해 동안 기초를 다지고,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교육시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자원이 있어야 하고, 끈기가 있어야 해요. 일이십 년 동안 헌신적으로 버텨내야 해요. 포기하지 않아요 해요. 쉽지 않을 겁니다.” 총의 말이다.

림과 치는 그들이 변화를 볼 수 있기를 빈다고 말한다.

“미국은 사오십 년 걸려서 지금의 성과를 이뤄냈어요. 우리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시간 문제예요. 난 80세가 되어 결혼한다 해도 괜찮아요. 할 거예요.” 림의 말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How One Of The World's Richest Countries Is Limiting Basic Human Rights

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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