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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죽어도 좋아!'

지난 2001년 박찬욱 감독은 지인들과 모인 자리에서 "엄청난 한국 영화를 발견했다"며 그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되면 담뱃가게를 하며 외롭게 사는 한 할아버지가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한 할머니를 만난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간다. 70대가 넘은 두 사람은 마치 청춘 남녀처럼 뜨거운 섹스를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섹스가 끝나면 달력에 표시를 한다. 낮에 한 날은 '낮거리'라고 써놓기도 한다.

  • 조원희
  • 입력 2015.10.15 11:08
  • 수정 2016.10.15 14:12
ⓒ청어람

<죽어도 좋아!> 감독 박진표 | 출연 박치규, 이순예 | 2002

'제한상영가'란 청소년 관람불가보다 더 높은 상영 등급으로 일반 극장에서 상영될 수 없고 일체의 광고를 할 수 없는 등급이었다. 쉽게 말해 "극장에서 상영할 수 없음을 허가한다"는 모순어법으로 표현된다. 이 '제한상영가'는 지난 2008년 헌법재판소에서 헌법 불일치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법원에서는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는 신비로운 등급이다. 이 등급을 받은 작품으로 유명한 것은 김곡·김선 형제 감독의 <자가당착>과 멕시코 영화 <천국의 전쟁>이 있다.

<천국의 전쟁>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이유는 장시간에 걸친 성기 노출과 성행위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난 2005년 칸영화제 국제 경쟁부문에 출품돼 다르덴 형제의 <아들>, 홍상수의 <극장전>, 라스 폰 트리에의 <만덜레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지난 2001년 박찬욱 감독은 지인들과 모인 자리에서 "엄청난 한국 영화를 발견했다"며 그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되면 담뱃가게를 하며 외롭게 사는 한 할아버지가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한 할머니를 만난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간다. 70대가 넘은 두 사람은 마치 청춘 남녀처럼 뜨거운 섹스를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섹스가 끝나면 달력에 표시를 한다. 낮에 한 날은 '낮거리'라고 써놓기도 한다.

정말 대단한 사실은 이것이 실화이며 영화 속의 두 배우가 실제 사건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노인의 성'이라는 주제의 쇼킹함,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스타일, 그리고 실존 인물이 카메라 앞에서 실제 정사를 행했다는 엄청난 사실까지 모든 것이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한 작품이었다.

지금은 유명 감독인 박진표 감독이 독립영화로 제작한 <죽어도 좋아!>는 2002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국제 영화제에서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개봉되기까지 고초를 겪었다. '성기 노출, 구강성교 등이 국내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것이다.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얻기 위해 3차례에 걸친 재심의를 하면서 영화는 조금씩 약해졌다. 일부는 삭제되고 일부는 어둡게 처리됐다.

결국 2002년 연말에 개봉된 이 영화는 이미 박찬욱 감독이 칭찬했던 그 영화와는 조금 다른 영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죽어도 좋아!>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최연소 베드신의 기록이 깨질 가능성은 있지만 이 영화가 가진 최고령 베드신 기록이 깨질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단순히 선정주의로서가 아니라 '노인들도 사랑하고 노인들도 그 사랑 때문에 섹스한다'는, 아주 당연하지만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부분을 건드려준 것은 이 영화가 오랫동안 기억돼야 할 이유다.

* 이 글은 필자의 전자책 '한국영화 사상 가장 에로틱한 순간 51' (페이퍼크레인, 2015)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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