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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선 토론에서 이기고도 진 버니 샌더스는 누군가?

뉴햄프셔에서는 52대 30으로, 또 아이오와에서는 43대 33으로 클린턴을 앞서기 시작했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었다. 특히 미국인이 듣고 보기만 해도 치를 떠는 "사회주의"라는 글자를 포함한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자기를 칭하는 사람이 이런 인기를 획득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한국에서도 그 차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사회주의를 공산주의와 동일하게 인식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 김태성
  • 입력 2015.10.15 12:14
  • 수정 2016.10.15 14:12
ⓒDavid McNew via Getty Images

CNN 주최로 10월 14일 오전 9:30(현지 시간으로는 화요일 저녁)에 열린 토론회는 민주당 토론회 역사상 가장 많은, 약 1530만 명이 시청했다. 그런데 정말 재밌는 부분은 이 프로그램을 TV와 인터넷으로 시청하면서 직접 투표한 약 10만 명의 사람들이 이번 토론의 승자는 버니 샌더스라고 CNN/패이스북 여론조사를 통해 확실히 표시했건만 수많은 정치 평론가와 미국 미디어는 클린턴을 승자로 지목했다는 것이다.

이런 억울한(?) 대접을 받은 버니 샌더스는 누구이며 왜 이런 대우를 받고 있는지 잠깐 살피고자 한다(필자는 1% 보다는 99%를 위해 싸우는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다).

출연진:

주연: 버니 샌더스 - 미 상원의원, 하원의원, 벌링턴 시장, 인권 운동가

주연: 힐러리 클린턴 - 전 영부인, 미 상원의원, 국무장관, 변호사

조연: 마틴 오말리 - 전 메릴렌드 주지사, 볼티모어 시장

조연: 짐 웹 - 미 상원의원, 전 미 해군 참모

조연: 링컨 채피 - 로드아일렌드 주지사, 전 미 상원의원, 워윅 시장

이 블로그는 이번 토론회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아마 우리 국민에게는 아직도 생소한 버니 샌더스의 정체와 그리고 왜 그가 미국 미디어에서 소외를 받는지에 대한 것이다.

버니 샌더스 - 인권 운동가

유대계 미국인인 샌더스는 1941년에 뉴욕에서 태어나 시카고 대학을 나왔는데 학창시절에는 "청년사회운동" 회원으로서 인권운동에 열심이었다. 당시 이런 말을 했다 "대학 산하의 기숙사에서 백인과 흑인 학생들이 함께 주거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수많은 반전 시위에도 참여했다. 자신은 군인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참전 군인을 가장 열렬히 지지하는 상원의원 중 한 명이다.

버니 샌더스 - 시장

1986년. 4명이 치른 박빙의 벌링턴 시장 선거를 겨우 10표 차이로 이기고 시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3번 더 당선되었다. 그 비결은 간단했다. 약자의, 즉 99%의 측면에서 모든 일을 해결했다. 예를 들어 정부 지원하에 운영되어 온 노스 게이트라는 저가 임대 아파트를 법의 허점을 이용해 그 주인이 재개발하려고 하자 그는 책상을 치며 "열심히 일하는 336 가족을 내쫓겠다고요? 날 먼저 죽이고 그렇게 해보라고 하세요. 노스 게이트를 고급 주거 단지로 바꾸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는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적극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우선 주 정부와 당시 버먼트 상원의원 패트릭 레이히의 지원으로 1200만 달러로 노스 게이트 아파트 단지를 구매했고 복구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각 임대 아파트를 임차인의 소유로 전환하는 작업도 시작했다. 노스 게이트는 현재 안정적인 장기 임대료를 준수하는 거주자 소유 아파트로 운영되고 있다. 샌더스는 또 법을 개정해 임대 아파트 주인이 부동산 전환을 하려면 적어도 2년 전에 공고를 해야 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샌더스의 진보적인 정치 영향이 벌링턴 시에 계속 이어지며 지금은 시의 가장 큰 마트도 시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한 코업으로 운영되고 있고 또 전력은 시 산하의 재생 에너지 발전소가 공급하는데 벌링턴은 재생 에너지만 이용하는 첫 중형/대형 도시가 되었다.

버니 샌더스 - 미 하원/상원의원

샌더스는 민주당도 공화당도 아닌 북유럽 경제 모델을 추구하는 무소속이자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자신을 지난 25년 동안 표현해 왔으며 정책적으로는 대체로 민주당을 지지한다(약 98%). 1991년엔 원내 "진보회의"를 설립했고 첫 8년간 그 그룹을 이끌었다. 그는 2003년 이라크 점령을 큰 목소리로 반대했는데 이 문제는 점령/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라이벌 힐러리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2006년부터 상원 의원으로 활동한 샌더스는 2008년 긍융위기 후 대형 미국 은행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려는 재무부의 의도를 결사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놓았는데 8,000명이나 함께 동의 서명하였다.

또 2010년 12월 10일에는 부시 시대 세금 정책을 유지하는 내용을 담은 오바마 정부가 제시한 "경기부양법"을 비난하며 장장 8시간 반 동안 상원에서 연설하였다. 사실 이 연설이 계기가 되어 샌더스가 대선에 참여하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연설이 끝나자마자 수백명의 새로운 지지자들이 그를 대선 후보로 지명하자는 청원을 올렸다.

버니 샌더스 - 대선 후보

미국 경선 차원에서는 아이오와 코커스(Iowa Caucus)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New Hampshire Primary)가 가장 먼저 치러진다. 따라서 이 두 주의 지표에 엄청난 관심이 쏟아진다. 초기에는 샌더스의 인기가 그의 지역구인 버몬트 주와 인접한 뉴햄프셔 주에 제한됐다고 평론가들은 말했다. 올 4월 중순 "Real Clear Politics"의 조사에 따르면 그는 클린턴의 55.8%에 훨씬 못 미치는 9.4%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었다. 미국의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에서는 참으로 형편없는 5.3%였다.

그런데 고작 5개월이 지난 허핑턴포스트 9월 13일 기사에 의하면 뉴햄프셔에서는 52대 30으로, 또 아이오와에서는 43대 33으로 클린턴을 앞서기 시작했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었다. 특히 미국인이 듣고 보기만 해도 치를 떠는 "사회주의"라는 글자를 포함한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자기를 칭하는 사람이 이런 인기를 획득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한국에서도 그 차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사회주의를 공산주의와 동일하게 인식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어제 첫 경선 토론회에서 비난보다는 정책에 중점을 두면서 시청자들의 확실한 지지를 얻었다. 사실 현재 힐러리의 가장 큰 족쇄인 이메일 스캔들이나 벵가지 문제를 언급할 수도 있었는데 그는 오히려 "힐러리 이메일 이야기는 그만"을 외치며 오히려 그녀를 옹호했다. 반면에 클린턴은 샌더스가 늘 총기 소지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을 유지한 걸 뻔히 알면서도 그가 총기 제조업체들을 총기 사건 책임 주체에서 제외했다는 이유를 들며 공격했다. 사실 샌더스의 인기 상승을 보고 놀란 클린턴은 상당 부분에서 정책을 더 진보 쪽으로 틀었지만 이전에 쓴 엘리자베스 워런에 대한 블로그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런 그녀의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미국 유권자들의 날카로운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버니 샌더스 - 정치 평론가와 미디어(모든 미디어는 아님)의 희생양

이번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은 당연하고 불가피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목되었다. 남편의 유명세는 물론 상원의원과 외무부 장관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며 오바마에게 당한 패배를 만회할 기회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당 대선 후보 중 아무도 그녀를 명성 차원에서나 경력 차원에서 능가할 만한 인재가 없었다. 그리고 수많은 정치 평론가들과 미디어도 아주 초기부터 같은 배를 타기로 결심했다. 따라서 이전에 장담한 자기들의 주장이 무안해서도 그렇고 또 무슨 오묘한 이해관계 때문에라도 그들은 클린턴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형국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영부인으로서 상원 의원으로서 외무장관으로서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정치와 미디어 관계자들과 밀접하게 일해 왔다. 또 1%의 일원으로서 미디어 오너들 그리고 광고주들과 암묵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반대로 사사건건 비주류를 고집하는 샌더스는 올 초까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곤 아예 미디어의 레이더에 걸리지도 않았고 정치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지도 못 했다. 또 한사코 일반 시민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정책은 현실성이 없다는 무시를 당했다. 그런데 세법 개정, 연금 혜택 확장, 대형 은행 해체, 총기 규제, 흑인 인권 보장 등 정책을 구체적으로 그가 설득하고 나서는 상황에서 이들은 자기들이 이제까지 틀렸다는 사실은 인정을 못하는 것이다. 미국 시민들이 버니 샌더스를 선택했는데도 말이다.

그 증거로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모든 이들이 힐러리 클린턴이 이번 토론회의 큰 승리자였다고 외친다"라는 기사가 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그녀의 승리에 나팔을 분 폴리티코(Politico.com) 마저도 "모든 이들"이 다름 아닌 "정치 운동가, 관계자, 평론가"라고 정의한다. 즉, 이번 토론회를 시청한 일반 미국인들의 80% 이상의 샌더스 지지와 무관하게 "정치꾼"들의 의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을 조명한 기사와 블로그도 있었다. 허핑턴포스트 블로거 H.A. 굿맨은 샌더스가 토론회 승리자라는 사실을 다양하게 나열함과 동시에 로이터 통신을 인용해 10월 4일에서 9일 사이에만 클린턴의 민주당 지지율이 51%에서 41%로 추락했다는 정보를 공유했다. 또 AlterNet은 모든 여론 조사와 포커스 그룹이 샌더스가 이번 토론을 이겼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는 클린턴이 이긴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샌더스는 영어로 말해 클린턴만큼 "household name" 즉 누구나 아는 명사가 아직 아니다. 하지만 이번 토론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책을 알게 됐고 그의 인간 됨을 목격했으며 99%를 위한 그의 열정과 의지를 보았다. 그래서 난 샌더스가 또 한 번의 정치 혁명을 이룰 것이라고 믿는다. 후세인이라는 아랍계 이름을 가진 사람이 8년 전에 당시 상상을 초월한 업적을 이루었듯이 말이다.

* 이 글은 koryopost.wordpress.com에 포스트 된 글입니다. Terence Kim(김태성)의 글은 여기서 더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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