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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교과서, 잘못된 시작

"청소년 역사 인식 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69%가 한국전쟁이 북침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교육이 잘못됐다."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발언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국정 교과서란 단어가 대통령 마음 속에선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설문조사는 서울신문과 입시업체인 진학사가 이메일로 실시한 설문조사였으며 질문내용은 "한국전쟁은 남침인가? 북침인가?" 였습니다. 북침을 '북한이 침략했다'라고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질문이었으며 당시 서울신문도 오해를 줄 수 있는 설문지라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 김남훈
  • 입력 2015.10.15 06:08
  • 수정 2016.10.15 14:12
ⓒ연합뉴스

한국 전쟁은 남한이 일으켰다? 69% vs 0.7%

"얼마 전 청소년 역사 인식 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69%가 한국전쟁이 북침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교육이 잘못됐다."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발언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국정 교과서란 단어가 대통령 마음 속에선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설문조사는 서울신문과 입시업체인 진학사가 이메일로 실시한 설문조사였으며 질문내용은 "한국전쟁은 남침인가? 북침인가?" 였습니다.

북침을 '북한이 침략했다'라고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질문이었으며 당시 서울신문도 오해를 줄 수 있는 설문지라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진학사 또한 학생들이 용어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메일' 설문조사에 학생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응했는지도 의문입니다.

반면 2004년 5월 국가보훈처가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보훈의식 여론조사'에서는 '6.25 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라고 질문했고 이에 '남한'이라고 대답한 학생들은 0.7% 였습니다. 통계자료로 활용하기에 부적절한 자료를 가지고 첫 운을 뗀 것부터가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국정교과서를 그대로 밀어붙일 태세입니다. 그런데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매우 촉박합니다. 1974년 국정 교과서를 집필했던 한영우 전 규장각 관장은 국정 교과서는 명분과 실리 모두 취약하기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며 "필자간 조정을 하고 원고를 쓰고 윤문, 교정 등의 과정을 거치려면 아무리 촉박하게 잡아도 3년 이상은 있어야 교과서가 제대로 나올 수 있다. 그래도 짧다. 2017년 현장 보급이라는 현재 일정은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또한 연세대,고려대,경희대 사학과 교수들이 국정교과서 일절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에서 이런 흐름이 더 거세진다면 아예 필진 자체를 구성하는 것이 어려워질수도 있습니다.

국정교과서 논란은 세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 38선 이남에선 북한 없이도 자가발전으로 이념갈등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북한의 구체적인 군사적인 행동이나 김정은 같은 최고위층 인물의 발언이 필요했습니다. 노무현 정상회담 NLL 포기 논란만 하더라도 김정일이라는 북측 인물이 필요했지요. 하지만 이제 없어도 됩니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갈등은 앞으로 자주 생겨날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 국정 교과서 폭탄은 내년 총선을 앞둔 상태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에 대한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친박을 넘어 純박에 가까운 이들을 가려내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당대표가 적극 지지를 표하며 미국 순방을 나가는 대통령을 배웅하러 나간 것이나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당론은 아니다'라고 했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세 번째, 10월 13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오늘하루에 출연한 정치평론가 김선의 코멘트인데 바로 '지극한 효심'입니다. 임기 절반이 지났고 정치,경제,외교 모든 상황이 난망한 상태에서 이런 밀어붙이기식 결단은 결코 청와대와 새누리당에도 유리하지 않으며 이는 오직 '효심' 이외에는 다른 말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국정 교과서는 행정부인 교육부 권한이고 입법부에 속하는 야당이 브레이크를 걸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마 이대로 통과될 확률이 큽니다. 영화 변호인에서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법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몰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책을 읽으신 분들은 이 구절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그러고 보니 당시 수사검사였던 분은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지금의 우리에게 무언가 질문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린 어떤 답변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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