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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4일 16시 03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0월 14일 16시 11분 KST

'콜럼버스의 날'을 없애야할 때가 되었다

올해에도 미국의 여러 학교들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기린다. 우리가 콜럼버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가 아메리카 대륙에 무엇을 가져왔는지에 대해 아는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보면, 이건 중단돼야 한다.

콜럼버스는 1494년 2월 초, 처음으로 타이노 족 수십 명을 스페인에 보내면서 대서양을 통한 노예 무역을 시작했다. 콜럼버스는 자기가 노예로 만든 사람들을 '잘 만들어졌으며 아주 지적이다'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페르디난드 왕과 이사벨라 여왕에게 노예 운송에 세금을 물려 서인도 제도(북미 동남부와 남미 북부 사이의 여러 섬들)에서 필요한 보급품을 댈 수 있다고 제안했다. 1년 후, 콜럼버스는 카리브 해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드는데 엄청난 노력을 들였다. 그가 예전에 '정말 사랑으로 가득하고 탐욕이 없다'고 묘사했던 타이노 족 1,600명이 노예가 된 것이다. 당시 목격자인 미첼레 데 쿠네오에 의하면 '최고의 남녀' 550명을 사슬로 묶어 스페인에 노예로 보냈다. '남은 사람들은 누구나 원하는 대로 가져갈 수 있다고 선포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데 쿠네오가 남긴 글이다.

스페인에서 타이노 족의 노예 거래는 이익을 남기지 못했지만, 이후 콜럼버스는 '성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팔 수 있는 모든 노예들을 계속 보내기로 하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

저명한 아프리카 역사가인 바질 데이비슨은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아메리카 대륙에 보내기 시작한 것도 콜럼버스의 책임이라 한다. 데이비슨에 의하면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을 카리브 해로 보낼 수 있는 최초의 허가는 왕과 여왕이 1501년에 발급했는데,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를 지배할 때였다. 그래서 데이비슨은 콜럼버스를 '노예 매매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시작부터 콜럼버스는 발견이 아닌 정복과 착취를 목표로 했다. 그는 자신의 원정을 라 엠프레사(la empresa), 즉 사업이라고 불렀다. 노예 매매가 돈이 되지 않자, 그는 조공 제도를 도입해 14세 이상의 모든 타이노 족이 3개월에 한 번씩 호크 벨(매 사냥에 사용하는 종) 하나 분량의 금을 내도록 했다. 금을 내는 타이노 족은 3개월 동안 자유를 유지할 수 있었고, 금을 내지 못한 타이노 족에게는 콜럼버스는 양 손을 자르거나 개들을 풀어 공격하는 '벌'을 내리도록 명령했다. 스페인 신부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가 적었듯, 이 조공 제도는 '불가능했고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의 첫 테러리스트로 기억될 만하다. 스페인인들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 일었을 때, 콜럼버스는 무장 세력을 보내 '인디언들에게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공포를 퍼뜨리게 했다'고 스페인 신부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는 기록했다. 커크 패트릭 세일은 자신의 저서 '낙원의 정복'에서 콜럼버스의 부하들이 1495년 3월에 이스파니올라 섬의 계곡에서 타이노 족들을 만났을 때를 이렇게 적었다.

"군인들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집중 사격을 해서 수십 명을 죽였고, 개들을 풀어 팔다리와 배를 찢었으며, 도망치는 인디언들을 덤불 속으로 몰아 칼과 창으로 꿰뚫었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전기를 쓴 콜럼버스의 아들 페르난도에 의하면] '신의 도움으로 곧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고, 여러 인디언들을 죽이고 사로잡은 인디언들 또한 죽였다."

이 모든 것,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사실들이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기록되어 있다. 1942년 퓰리처 상을 받은 전기 '대양의 제독'에서 새뮤얼 엘리엇 모리슨은 카리브 해에서 콜럼버스가 펼친 정책은 '완전한 종족 학살'을 불러왔다고 이미 적었다. 모리슨은 콜럼버스를 존경했던 작가였다.

우리 사회에서 원주민들과 흑인들의 생명이 중요하다면, 노예 매매의 아버지를 국경일까지 만들어 기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미국에 이런 국경일이 있다는 것은 유색 인종의 생명을 경시하는 커리큘럼을 정당화하는 일이다. 초등학교 도서관에는 아직 피터 시스가 쓴 '꿈을 따라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야기' 같은 책이 있다. 콜럼버스를 찬양하고, 스페인 식민주의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파괴한 삶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책이다.

물론 25년 전 콜럼버스 500주년을 앞두고 일어난 운동의 반향은 컸으며,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상륙에 대한 더 진실되고 중요한 역사가 알려졌다. 전국의 교사들은 콜럼버스와 제국 시스템을 시험대에 올렸고, 이른바 아메리카의 발견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아메리카 대륙에 먼저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관점에서 썼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교과서들은 진실을 에둘러 가고 있다. 호튼 미플린의 '미국 역사: 초기'에서는 타이노 족의 죽음을 '전염병' 때문이라고 하며, 콜럼버스에 대한 부분을 이렇게 결론내린다. '콜럼버스의 교환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이득을 주었다.' 이 부분에 딸린 유일한 질문은 타이노와 아프리카의 사람들을 삭제하고 있다. '콜럼버스의 교환은 유럽인들의 식단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2015년이 된 지금마저도 콜럼버스의 이야기는 어린 아이들에게 다른 민족, 문화, 국적이 만났을 때의 첫 사례로 소개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콜럼버스에 대한 글을 보면 그가 깃발을 꽂고 '산 살바도르'라는 이름을 붙이며 머나먼 제국의 땅이라고 선포하는 게 나온다. 아이들은 백인들은 유색 인종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배우고, 강한 나라들은 더 약한 나라들을 괴롭힐 수 있다고 배우고, 그들이 지난 역사에서 귀를 기울여야 할 목소리는 콜럼버스 같은 힘센 백인 남성들의 목소리뿐이라고 배운다. 이걸 노골적으로 말하는가? 그럴 필요 없다. 말을 하는 것은 침묵이다.

예를 들어, 피터 시스가 자신의 유명한 책에서 콜럼버스와 원주민들의 첫 만남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보라. '1492년 10월 12일, 정오 직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흰 산호초 해변에 도착해 이 땅을 스페인의 왕과 여왕의 땅이라고 선포하며 무릎을 꿇고 신께 감사드렸다...' 해변에서 콜럼버스를 맞은 타이노 족들은 이름도 목소리도 없다. 아이들이 그들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 말고 어떤 결론을 내리겠는가?

이제 그만 좀 하자. 특히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사회 생활의 모든 면을 깊이 들여다 보며 우리의 관행이 모든 인간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것을 촉구하고 있는 지금, 콜럼버스를 다시 생각해보고 그의 범죄를 기리는 국경일을 폐지할 때도 되었다.

'콜럼버스의 날'을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의 저항과 회복을 기리는 날인 원주민의 날로 바꾼 버클리, 미네아폴리스, 시애틀의 사례를 따르는 도시와 학구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이건 아주 오래된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의 일이다. 콜럼버스가 노예로 삼고 괴롭혔던 사람들인 타이노 족을 연구하고 기리는 것은 어떨까. 콜럼버스는 그들이 온화하고 너그러우며 지적이라고 했지만, 타이노 족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떻게 살았는지는 둘째치고, 오늘날 타이노라는 이름을 아는 학생들이 몇이나 될까?

작년 시애틀 시의회 위원인 크샤마 사완트는 시애틀이 콜럼버스의 날을 버리기로 한 결정을 설명하며 이런 훌륭한 설명을 했다. '콜럼버스의 역사를 배우고 이 날을 원주민을 기리고 사회 정의를 기리는 날로 바꿈으로 인해 ...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역사와 아직도 계속되는 소외, 차별, 그리고 원주민 커뮤니티가 아직도 겪는 가난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연방 정부가 콜럼버스의 날을 개선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기후 정의 운동이 화석 연료를 다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커뮤니티와 학교가 콜럼버스를 버리게 만들 수 있다. 콜럼버스의 폐기는 기념할 만한 일일 것이다.

Bill Bigelow is curriculum editor of Rethinking Schools magazine and co-director of the Zinn Education Project. He co-edited Rethinking Columbus: The Next 500 Yearsand A People's Curriculum for the Earth: Teaching Climate Change and the Environmental Crisis.

This article is part of the Zinn Education Project's If We Knew Our History series. Learn more about the Zinn Education Project and how you can help bring people's history to the classroom.

© 2015 The Zinn Education Project.

 

허핑턴포스트US의 Time to Abolish Columbus Day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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