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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손은 누구의 것일까? 며칠 전 카메라로 찍은 손이다. 어렸을 적 잡았던 할아버지의 거친 손 같기도 하고, 평생 농삿일을 했던 어느 농부의 손 같기도 하고, 지하도에서 스쳤을 어느 노숙자의 손 같기도 하다. 굳은 살 박힌 손바닥, 짧게 깎은 손톱, 깨작깨작 묻은 손때.

  • 남종영
  • 입력 2015.10.14 12:27
  • 수정 2016.10.14 14:12

이 손은 누구의 것일까?

며칠 전 카메라로 찍은 손이다. 어렸을 적 잡았던 할아버지의 거친 손 같기도 하고, 평생 농삿일을 했던 어느 농부의 손 같기도 하고, 지하도에서 스쳤을 어느 노숙자의 손 같기도 하다. 굳은 살 박힌 손바닥, 짧게 깎은 손톱, 깨작깨작 묻은 손때.

그러나 이 손은 동물의 손이다. 서울대공원에 사는 침팬지의 손이다. 지난 5일 서울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침팬지 '광복이'를 가까이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철창 사이로 그는 나를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바라봤고, 나 또한 그를 하나의 공간에 있는 사람처럼 지켜봤다.

우리는 동물을 바라보면서 '차이'를 찾는 데 익숙하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게 철학과 종교의 임무였다.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한다, 인간만이 언어를 이용한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동물과 차이를 말하면서 그들을 아무렇게나 이용하고 착취해도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본능적으로 동물과 마주하면서 '같음'을 발견한다. 이 손은 본질적으로 우리와 그들이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 지루함과 들뜸, 배려와 복수를 가진 동류의 존재라는 어떤 직관을 준다. 손에 낀 세월의 두께들이 어떤 공감을 일으킨 거 같다.

사진: 고든 갤럽의 침팬지 거울실험

1838년 진화학자 찰스 다윈은 런던동물원에 있는 오랑우탄 '제니'를 보고는 호기심에 거울을 가져다준다. 면밀히 조작되고 계획된 실험은 아니었다. 다윈은 제니에게서 자기를 인식하는 어떤 특이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130여년 뒤,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갤럽이 침팬지 네 마리에게 거울을 가져다준다. 평생 거울을 한번도 본 적이 없던 동물들이다. 당연히 거울을 보는 법도, 자신의 모습을 알 리도 없다. 그러나 열흘 이상 진행된 실험에서 오랑우탄은 서서히 거울 속의 이미지가 자신임을 깨닫는다. 이빨에 낀 먹이찌꺼기를 바라보고, 코딱지를 제거하고, 잘 안보이는 항문과 생식기를 비쳐봤다. 입으로 거품을 만들고 자신의 외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고든 갤럽은 이 실험을 토대로 1970년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침팬지: 자의식'이라는 논문을 쓴다. 그는 "인간 이하 종의 자아 개념에 대한 최초의 실험적 증명"이라고 밝혔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1379회 인용되면서, 동물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었다. 그뒤 침팬지, 고릴라, 돌고래 등 여러 동물에 대한 거울실험이 진행되었고, 거울실험은 동물의 자의식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황금 기준'이 되어왔다. 그간 동물은 "아무 생각 없는 사물의 세계"에서 타인의 정신세계에는 괘념치 않는다고 간주되어왔다. 그러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남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이며, 복잡한 정신세계와 지적, 윤리적 진화의 토대가 있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인간은 대략 두 살 때 이 능력이 형성된다.

이번에 거울을 마주하게 될 서울대공원 오랑우탄 보라. 2007년 서울대공원이 촬영한 것이다.

국내 최초로 오랑우탄 거울실험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한겨레신문사와 국립생태원의 김예나 박사, 서울대공원의 사육사들들이 함께하기로 했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는 실험을 지켜보며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지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거울실험은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자의식을 발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감동적인 시간이 될 것이다.

이번 실험은 시민 참여로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고 한다. 크라우드 사이트 '펀딩21'에서 후원금을 내면 거울실험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다큐멘터리 엔딩크레딧에 이름이 게재된다. 많은 사람들이 실험과정과 다큐제작에 참여해 감동적인 시간에 함께해주었으면 좋겠다.

* 다큐멘터리 제작기금 후원: 국내 최초 오랑우탄 거울실험 프로젝트를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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