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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독점하려는 자

대한민국 사서의 역사는 암담하였다. 해방 이후 우리 사서는 친일사관을 극복하지 못한 채 시작되었다. 사학계에서도 친일파들이 청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단과 6·25 동란의 영향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한 축은 역사에서 지워졌다. 더욱이 독재 및 권위주의 정부의 오랜 집권으로, 이에 반대하는 이들의 역사 또한 왜곡되고 말살되었다. 이렇게 암울했던 역사 교육은 87년 체제로 전환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정상화된다. 우리도 비소로 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사서 체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시 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한다.

ⓒ연합뉴스

글 | 서누리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선임연구원

일찍이 왕조 시대에 왕이 된 자는 우선 사서(史書)부터 손을 본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름과 공적을 후세에 길이 전하려고 함일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스스로 용꿈을 꾸었던 많은 사람들이 왕좌에 앉기 위해 도전하였으나 대부분 실패하였다. 그 실패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 중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꿈을 이루어 왕좌를 차지한 것이다.

왕좌를 차지한 이들은 민망할 정도로 자신의 생애와 공적을 미화시켰다. 왕좌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목숨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들은 후대 역사가의 붓끝이 두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그 사서라는 전리품은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고 자신과 함께 목숨을 건 공신(功臣)들의 이름까지 챙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또한 사서는 통치의 수단으로도 애용되었다. 사서를 통해 왕조 성립 혹은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체제의 유지 및 공고화를 위한 교육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위와 같은 수준은 반드시 '왕조'임을 전제해야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 또한 있다. 이는 바로 역사를 독점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역사를 쓰기 위해 지난 왕조 혹은 패자의 역사를 왜곡하고 말살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반쪽짜리 사서만을 물려받았다. 우리는 삼국시대를 보려면 고려인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보아야 한다. 고구려인, 백제인, 신라인들이 스스로 적은 본인의 역사는 말살되었기 때문이다. 역사까지 포함한 모든 권력을 왕이나 통치 그룹의 사적소유물로 여긴 왕조시대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의 시대로 돌아오자. 우리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권력투쟁은 왕조시대의 그것과 비교하면 리스크가 확 줄어든다. 권력투쟁에서의 패배가 패배자의 목숨을 요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수평적 정권교체가 가능한, 규칙적이며 공정한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제도적 고안은 물론 국민주권을 지키기 위함이다. 모든 권력은 특정한 개인이나 그룹이 아닌 국민의 것이기에 역사의 주인 또한 당연히 국민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시대에선 승자의 역사도 패자의 역사도 그대로 남아야 한다. 국민들은 승자의 역사뿐만 아니라 패자의 역사도 알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서 누군가 역사를 독점하고자 한다면 이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고 훼손하는 일인 것이다. 단순한 진리다.

대한민국 사서의 역사는 암담하였다. 해방 이후 우리 사서는 친일사관을 극복하지 못한 채 시작되었다. 사학계에서도 친일파들이 청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단과 6·25 동란의 영향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한 축은 역사에서 지워졌다. 더욱이 독재 및 권위주의 정부의 오랜 집권으로, 이에 반대하는 이들의 역사 또한 왜곡되고 말살되었다. 이렇게 암울했던 역사 교육은 87년 체제로 전환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정상화된다. 우리도 비로소 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사서 체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시 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비정상화의 정상화라고 한다.

누가 다시 역사를 독점하려고 하는가?

누구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국정화인가? 어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국정화인가?

우리가 지금 왕조 시대에 살고 있는지 의문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지도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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