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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오늘 읽은 노벨경제학상 해설기사는 엉터리다

  • 허완
  • 입력 2015.10.13 13:57
  • 수정 2015.10.22 06:38
Angus Deaton speaks at a gathering at Princeton University after it was announced that he won the Nobel prize in economics for improving understanding of poverty and how people in poor countries respond to changes in economic policy Monday, Oct. 12, 2015, in Princeton, N.J.  Deaton, 69, won the 8 million Swedish kronor (about $975,000) prize from 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for work that the award committee said has had
Angus Deaton speaks at a gathering at Princeton University after it was announced that he won the Nobel prize in economics for improving understanding of poverty and how people in poor countries respond to changes in economic policy Monday, Oct. 12, 2015, in Princeton, N.J. Deaton, 69, won the 8 million Swedish kronor (about $975,000) prize from 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for work that the award committee said has had ⓒASSOCIATED PRESS

올해 노벨경제학상앵거스 디턴(Angus Deaton) 미국 프린스턴 교수에게 돌아갔다. 그는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소비와 빈곤, 복지에 대해 연구해왔으며, 마침내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당신이 오늘 읽은 국내 언론의 노벨경제학상 해설기사는 엉터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간지와 경제신문 등 국내 주요 언론들은 디턴 교수의 수상 의미를 놓고 이런 ‘해석’을 쏟아내고 있다.

‘불평등과 빈곤의 해결책은 성장이다!’

‘불평등은 경제성장을 촉진시킨다!’

‘노벨상이 피케티의 평등주의와 대립각을 세운 디턴의 손을 들어줬다!’

디턴 교수의 업적은 정말 그런 것이었을까?

노벨상위원회가 밝힌 선정 이유는 이렇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디턴 교수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여하는 3가지 이유를 밝혔다. 이를 번역 및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전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1. 수요측정 체계(estimation of demand systems) 에 대한 연구를 정교함과 보편성의 새로운 단계로 끌어 올렸다. 그가 35년 전에 존 뮬바우어와 함께 소개한 ‘준이상수요체계'(AIDS·Almost Ideal Demand System)’와 그 이후의 후속 작업들은 오늘날 학계는 물론, 실무 영역의 정책 평가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2. 총소비(aggregate consumption)에 대한 디턴의 연구는 소비와 저축 변동 분야를 다루는 미시계량경제학 영역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특정한 불확실성과 유동성 제약 하에서 나타나는 각 개인의 역학적인 소비 행태에 대한 분석 영역을 개척했다. 그는 반복되는 횡단자료에서 패널을 설계하는 방법을 고안했으며, 이는 실제 패널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도 각 개인의 행동 경과를 연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3. 디턴은 개발도상국에서의 서베이 자료, 특히 소비에 대한 자료를 생활수준과 빈곤 측정에 활용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그는 개발경제학(development economics)을 대강의 거시 데이터에 기반한 이론적 영역에서 고품질의 미시 데이터에 기반한 실증적 연구가 주가 되는 영역으로 전환시켰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이런 얘기다

미국 온라인매체 쿼츠는 그의 수상 소식을 전하며 다음과 같이 그의 업적을 요약했다.

디턴은 경제학 모델이 ‘이래야 한다’고 상정하는 세계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의 소비자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빈곤은 각 나라마다 철저하게 다른 특질을 드러낸다.

“세계 빈곤율이 사상 처음으로 10% 밑으로 떨어졌다는 뉴스를 읽을 때, 당신은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고 싶을 겁니다. 답은 가계 서베이와 자료 수집, 복지 측정에 대한 디턴의 작업에 있습니다.”라고 ‘Marginal revolution’의 알렉스 테브록은 적었다. “디턴의 주요 업적은 세계 빈곤을 이해하고 측정하는 부분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쿼츠 10월12일)

디턴의 학문적 성취를 이해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실증주의’와 ‘개인주의’다. 경제학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이론의 ‘큰 그림’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에서 나타나는 각각의 개별적 특성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 그는 이를 통해 빈곤과 불평등 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원을 끌어올렸다.

또 그는 미시경제학의 분야를 다루면서도 거시경제학 연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왕립과학원은 이렇게 소개했다. “소비와 수입에 대한 디턴의 심층적 연구는 현대 거시경제학 연구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케인즈 이후 이전까지의 거시경제학 연구자들은 오직 총자료(aggregate data)에만 기댔다. (이와 달리) 오늘날 연구자들은 거시적 층위에서의 관계를 다룬다 하더라도 보통 개별적 층위에서 출발하며, 전체 경제에서 산출된 숫자와 개인의 행동을 주의 깊게 결합시킨다.”

이건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디턴 교수의 선구자적인 연구 덕분이다. (가디언 10월12일)

복스는 디턴의 업적을 소개하며 그 기본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경제적 상황은 장소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과는 다른 종류의 것들을 소비하며, 이런 패턴들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도 다르다.

이건 빈곤을 측정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빈곤을 해결하려는 정부나 비정부기구들은 빈곤이 장소에 따라 어떻게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세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빈곤선을 하루 1.90달러로 정해놓고는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루 1.90달러가 나이지리아에서, 네팔에서, 난징에서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살펴봐야 한다. (복스 10월12일)

쿼츠에 따르면, 디턴은 지난해 쓴 에세이에서 많은 경제학자들의 ‘나쁜 습관’을 통탄했다. 그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PDF)

“학계의 경제학자들은 자료를 만들고 생산하는 이들에게 예전보다 훨씬 더 적은 노력을 기울인다.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작업하는 자료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상당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와는 다른 의미의 자료 또는 별다른 이유 없이 관례적으로 주의를 덜 기울이는 다른 자료에 의해 반박된 자료에 기반하고 있다.”

노벨위원회 측은 “복지를 강화하고 빈곤을 줄이기 위한 경제 정책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개인의 소비 선택을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노벨위원회는 이어 “그 어느 누구보다도 앵거스 디턴은 이런 이해를 발전시켰다”고 강조했다.

디턴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무엇이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주는지,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늘 관심을 기울여왔다”며 “나 자신을 위해서도 기쁜 일이지만, 이런 종류의 작업이 평가받았다는 사실에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의 일부 언론들은 그의 업적을 이렇게 왜곡했다

노벨위원회는 물론이고, 해외 언론 중 디턴 교수의 업적을 소개하며 ‘성장이 불평등을 해결한다’거나 ‘불평등이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주장을 한국 언론들처럼 집중 조명한 곳은 없다. 그의 이론이 ‘토마 피케티의 평등주의와 대척점에 서있다’는 평가도 마찬가지다.

성장이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한다?

그는 저서 '위대한 탈출 :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를 통해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점을 입증했다.

특히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은 빈곤과 건강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왔다는 점을 입증했다. (매일경제 10월12일)

디턴 교수는 경제 성장에 따라 세계의 불평등과 빈곤이 개선됐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성장이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한다’는 인과관계로 해석하는 건 오해에 가깝다. 그건 그런 뜻이 아니다.

미국에서의 불평등 확산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그는 개발도상국에서의 연구를 바탕으로 더 나은 행복(wellbeing)을 위해서는 서구 (선진국의) 원조 정책을 통해 소비를 지원하기보다는 경제 성장을 촉진시키는 것이 핵심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가디언 10월12일)

다시 말하면, 이건 개발도상국의 경우 선진국의 원조정책보다는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이 빈곤과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맥락에서 나온 얘기다.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식의 주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불평등은 경제성장을 촉진시킨다?

불평등은 경제를 성장시키고 삶을 개선한다. 그 결과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평등해졌다는 그의 분석 결과는 학계에 조용한 파장을 일으켰다.

(중략)

성장과 진보를 이끌어내는 불평등의 힘. 이 본질을 이해해야 현실을 개선하고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그는 결론 내린다. 이때 불평등은 ‘좋은 불평등’이다. (한국경제 10월13일)

이런 해석 역시 과장된 왜곡에 해당한다. 디턴 교수는 ‘불평등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가 이런 식으로 ‘좋은 불평등의 힘’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했다는 근거는 없다. 그는 다만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실증적 연구에 매달렸을 뿐이다.

불평등 문제를 연구해 온 김낙년 동국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는 "디턴이 '위대한 탈출'에서 불평등이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기라고 얘기하기는 했지만 의료 불평등에 관한 서술 등을 보면 불평등을 옹호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했다.

김 교수는 "전체적으로 보면 불평등이 인간이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는 만큼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디턴 교수는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10월12일)

디턴은 빈곤율이 낮아지고 건강상태도 좋아지는 등 세계가 그동안 많은 발전을 이뤘음에도 여전히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수상 이후 그가 내놓은 첫 공개 발언에 따르면, 디턴은 지난 20~30년 동안 극심한 빈곤은 급격히 감소했고 이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맹목적인 낙관주의자”처럼 받아들여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디턴 교수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아직 (빈곤의) 숲을 벗어나온 건 아니라는 점을 계속 기억해야 한다. 또 세계의 많은 이들은 여전히 매우 나쁜 상황에 처해 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맥락에서 불평등이 확대되는 현재의 추세는 매우 우려스럽다”고 그는 덧붙였다. (로이터 10월12일)

피케티의 평등주의와 대립각을 세웠다?

이 때문에 노벨위원회가 디턴 교수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긴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부 경제학계에서 피케티류의 평등주의적 접근 방식에 힘이 실리는 것에 대한 경계감을 나타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보편적 복지보다는 선별적 복지가 경제 전체의 생산성과 효율적인 소비를 촉진시켜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시각이다. (조선비즈 10월12일)

디턴 교수가 ‘21세기 자본’으로 명성을 날린 토마 피케티 교수와 대척점에 서있다는 평가도 심각한 오해에 해당한다. 해외 언론들은 피케티 등의 연구가 디턴의 연구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두 학자의 연구가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소개하고 있다.

피케티의 베스트셀링 저작인 ‘21세기 자본’은 디턴 교수와 토니 앳킨슨 교수가 수행한 구체적인 미시경제학 연구에 빚지고 있다. 올해 경제학상은 이 두 사람에게 공동으로 주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가디언 10월12일)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 이코노미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디턴 교수의 주장은 ‘빈곤국이 빈곤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성장’이라는 것”이라며 “디턴 교수의 불평등 연구는 이 주장의 연장선이지 불평등이 본 주제는 아니다”라면서, “디턴 교수는 신흥국의 불평등에, 피케티는 선진국 불평등을 다루고 있어 둘은 보완 관계이고, 디턴 교수 또한 저서 ‘위대한 탈출’에서 피케티 교수의 연구를 인용하며 이를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비즈 10월13일)

한편 국내에 번역된 디턴 교수의 책은 '위대한 탈출' 한 권 뿐이다. 이 책은 한국경제신문 그룹의 출판사인 한경BP가 번역해 국내에 소개했다.

진짜 마지막.피케티 vs. 디턴의 대결 구도를 만든 사람은 '위대한 탈출' 번역본의 서문을 쓴 자유경제원 현진권 원장이다. '시장 실패에 대한 정부 개입' 논리를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한 지난주 조선일보 칼럼의 필자이기도 하다.

Posted by 오석태 on 2015년 10월 12일 월요일

* 수정 : 노벨위원회가 밝힌 수상 이유 중 '미시경제학'을 '미시계량경제학'으로 수정합니다. (2015년 10월14일 09:25)

Portrait of a Laureate: Angus Dea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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