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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건물 앞에서 '결혼피로연'을 올렸다(사진)

지난 11일 저녁, 집회·시위로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서울 강남역 인근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모처럼 ‘잔치’가 열렸다. 가을비를 피하기 위해 임시로 둘러친 천막 안에는 막걸리와 족발, 김밥, 떡 등이 차려졌고, 곧이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랑, 신부가 등장했다. 이날 백년가약을 맺은 이서용진(39)씨와 권영은(36)씨 부부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반올림)의 24시간 농성장을 결혼식 피로연장으로 선택했다.

“삼성과 반올림의 조정회의가 무기한 보류된 지금 상황의 심각함을 알리고 싶었어요. 또 피해가족과 활동가들이 농성하고 있는데 혼자 신혼여행 가서 따뜻한 방에서 잘 생각을 하니 미안하기도 했고요.” 반올림은 지난 7일 삼성과 가족대책위원회가 개별 합의에 착수한 것을 이유로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가 조정을 보류하자 곧장 삼성 본관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신부 권씨는 반올림의 활동가로 3년째 일하면서 얼마 전까지 농성 대열에 있었다.

신부의 뜻에 신랑 이씨도 흔쾌히 동의했다. “우리를 이어준 것도 ‘삼성 백혈병’”이라고 여겨서다. 금속노조법률원 소속 노무사인 이씨는 반올림을 지원하는 노무사 모임을 통해 신부 권씨를 처음 만났다. 둘은 지난해 12월 열린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 출판 기념 토크쇼에 함께 간 뒤 가까워졌다고 한다.

부부는 이날 피로연에서 ‘작은 이벤트’도 마련했다. 삼성전자 엘시디(LCD)사업부에서 6년간 일하다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37)씨에게 자신의 부케를 건넨 것이다. 삼성에서 일하는 동안 시력·언어·보행장애(1급)를 얻은 한씨는 올해 1월 대법원에서 산재 불승인 결정을 받았고 줄곧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투병중인 한씨는 ‘아직’ 결혼할 계획이 없다. 권씨는 “결혼식에서 부케를 줄 때는 받는 이에게 행운이 따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알고 있다”며 “(신혼여행으로) 내가 없는 동안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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