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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과 대학주점의 거리

학생들이 주점을 돈벌이용으로 생각했다면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뭘 해야 했을까 싶다. 미디어에선 연일 회사 이력보다 룸살롱 접대에 얼마를 쏟아부었는지가 계약 한 건 따오는 데 더 효과적이란 걸 친절히 소개해 주고 있고 대기업들은 TV 광고에 자사 브랜드보다 아슬아슬하게 벗은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우기 바쁘고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다른 무엇보다 섹시 코드가 돈벌이 하는 데는 최고라는 걸 앞장서서 증명해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안다. 가격 몇천 원 줄이는 것보다 여학생들 옷 좀 야하게 입히고 자극적인 문구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게 더 돈벌이에 좋다는 것을. 목적이 돈일진대 무엇하러 이미 확고히 증명된 방식을 놔두고 '지식인다운' 방식을 추구하겠는가.

  • 임영민
  • 입력 2015.10.13 13:39
  • 수정 2016.10.13 14:12
ⓒ한겨레

그날 처음으로 룸살롱에 발을 들였다

말로만 듣던, TV에서나 보던 진짜 룸살롱이었다. 문을 열자 팀장이 나를 반겼다. 팀장 옆엔 내 나이 또래의 여자가 팀장 어깨에 기대고 있었고 맞은편엔 조금 더 어린 여자 하나가 내게 어렴풋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뭐해? 빨리 앉지 않고.

팀장의 윽박에 나는 곧장 자리에 앉았다. 뭐가 뭔지도 모르게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옆에 앉은 아가씨가 메뉴판을 펼쳐 내게 건넸다. 양주 한 병에 15만 원, 안주는 기본 5만 원. 제일 싼 거 두 개를 고르니 핀잔이 돌아왔다. 야이 새꺄, 없는 거 티 내는 것도 아니고 좀 괜찮은 거로 시켜. 팀장 옆에 있던, 베테랑으로 보이는 아가씨도 거들었다. 그래 오빠, 오랜만에 왔는데 맛있는 거 먹어야지. 처음 오는 자리인데 그녀는 내게 오랜만이라고 표현했다. 아마 직업 특성상 내뱉는 어떤 관성이리라 싶었다.

팀장 말대로 가장 저렴한 것보다 한 단계 위의 술과 안주를 골랐다. 차이는 현격했다. 양주는 한 병에 25만 원, 안주는 12만 원이었다. 그것만 해도 37만 원이었다. 분위기를 봐선 한 병으로 끝날 것 같지도 않았다. 머리가 핑 돌았다.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그 술값을 모두 내가 계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작년 2월, 퇴사했던 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팀장은 인사도 생략한 채 다짜고짜 자기와 같이 일을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내가 지금 다니는 곳보다 조건을 더 잘 쳐 줄 테니 함께하자는 이야기였다. 마침 사장의 아집과 독단에 염증을 느끼던 차였다. 어딜 가든 여기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한 달 뒤 팀장네 회사에 면접을 보고, 연봉을 협상하고, 입사를 나흘 앞둔 어느 날 밤, 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야, 그래도 내 덕에 좋은 회사 들어온 건데 술은 한잔 사야지 않겠어? 그렇게 좋은 회사도 아니어서 조금은 염치없다 느끼긴 했지만, 팀장 덕에 이직한 건 사실이니 일이십만 원 어치 거하게 한 번 사는 게 예의겠다 싶었다.

네, 그럼요. 한잔 사야죠. 당연히.

팀장은 익숙한 듯 잘도 놀았다. 자기 딸 또래의 여자애 가슴을 자기 살갗인 양 주물렀고 보기 민망한 스킨십도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쭈뼛쭈뼛 앉아 보리차를 홀짝였다. 술을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내가 이런 곳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불쾌했고, 무엇보다 내 지갑에서 나갈 돈이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안주가 하나 추가될 때마다 나는 내 통장에 얼마가 남아 있는지, 그리고 현재 술값은 얼마인지 머릿속으로 쉴 새 없이 계산기를 두드려댔다.

그러던 중 뻘쭘하게 앉아 있는 날 보곤 팀장이 내 옆의 아가씨에게 말을 건넸다. 야 이년아, 너 옆에 오빠가 심심해하잖아. 니 허벅지라도 좀 만지게 하든가, 좀 적극적으로 해봐. 그때 나보다 대여섯 살은 어려 보이는 그 아가씨와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정말,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선배님, 이번에 새로 들어온 새내기입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몇 달 뒤, 오랜만에 남자 동기들과 연락이 닿았다. 밤새 수다를 떠는데 동기 하나가 축제에 가자고 아우성을 피웠다. 다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껏 들뜬 맘에 그 자리에서 날짜를 잡았다. 그렇게 축제 마지막 날, 우린 졸업한 지 5년 만에 학교를 찾았다.

괜히 후배들에게 부담이 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후배들은 고작 인사 몇 번 주고받던 우리를 세차게 반겼다. 자리를 잡고, 일반 술집보다 몇 배나 비싼 술과 안주를 시키고, 안면이 있는 후배 한둘을 불러다 근황을 물어보며 이야기를 틔웠다. 그러던 중 한 남학생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예비역 회장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그 녀석은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더니 스무 살 남짓 돼 보이는 여자애 셋을 데리고 왔다.

선배님, 이번에 새로 들어온 새내기입니다.

예비역 회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새내기들은 어디선가 들고 온 간이 의자를 우리 사이에 욱여넣으며 자리를 차지했다. 짙은 향수 냄새가 났다. 시키지도 않았건만, 새내기들은 알아서 스스로를 소개했다. 몇 학번이고, 몇 살이며, 어디에 살며, 왜 이 학과를 지원했는지 그리고 이름이 무엇인지를 줄줄이 읊었다. 그리고 내내 우리 동기들의 빈 잔에 술을 따르느라 바빴다. 기분이 좀, 많이, 안 좋았다.

오원춘 세트 그리고 넣어줘, 빨아줄게

인터넷 뉴스를 뒤적거리던 중 익숙한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왔다. 오원춘, 그리고 고영욱. 저 반인륜적인 범죄자들 이름이 왜 갑자기 등장한 걸까. 검색어를 클릭하자 수십 개의 기사가 쏟아졌다. 모 대학교에서 안주 이름을 오원춘 세트, 고영욱 세트로 짓고 팔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운영위원회는 즉각 사과문을 올리고 축제 전면 취소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해당 주점을 기획/운영한 이들은 연락 두절 상태라고 전했다. 어쩌다 저런 무식한 행동을 벌였는지 참 안쓰러웠다.

그런데 기사들을 접하며 내 눈에 들어온 건 따로 있었다. 그 주점 사진 옆에 있다 우연찮게 찍힌 한 여학생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주점 비닐 앞에 쭈그려 앉아 이런 문구를 새겨 넣고 있었다. 넣어줘, 빨아줄게.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 때는 저러지 않았는데, 저게 배울 만큼 배운 지식인들이 할 짓인가, 하는 꼰대 같은 소리를 하고 싶진 않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생들 복장이 유흥업소 종사자들과 다름없다며 현실을 개탄하는 지식인들의 글이 각 언론사 메인을 장식하곤 했다. 이제 우리는 저 개탄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자기중심적인지, 또 이율배반적인지를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러할진대 내가 뭐라고 그들 문화에 어떤 잣대를 들이밀 수 있을까.

하지만 예상대로 기사마다엔 어마어마한 악플이 달렸다. 오원춘 세트, 고영욱 세트를 기획한 이들 못지않게 그녀는 우리 사회에서 퇴출되어야 할 빗치(Bitch)로 몰렸다. 전국의 모든 대학생을 저급한 수준으로 깎아내린 몰상식한 인물로, 지식 탐구보다는 남학생들과의 자유로운 섹스를 성인의 자격으로 착각한, 그런 멍청한 창녀로 매도됐다. 심지어 몇몇 댓글엔 내가라도 대신 고소해 주고 싶을 정도의 성희롱 발언이 서슴없이 달려 있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성을 촉구했다.

학생들이 돈을 버는 방식

몰랐어? 요즘 누가 추억 만들자고 주점을 벌이냐? 다 돈벌이로 하는 거지.

학교 주점에서 나온 뒤 무슨 놈의 술값이 그렇게나 비싼지,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으냐고 한 동기가 성을 내자 다른 한 명이 그렇게 답했다. 하긴, 생각해 보니 과거 친목을 다지기 위해 운영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던 것도 같다. 그냥 선배들 이용한 용돈벌이라 생각하니 나름 이해가 갔다. 돈벌이. 그제야 후배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갔다.

얼마 전, 친구가 게임 하나를 소개해줬다. <모두의 경영>이라는, 참 골 때리는 모바일 게임이었다.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 경영을 보좌할 비서를 골라야 했는데 침착함, 냉철함으로 표현되는 남자 캐릭터와 달리 여자 캐릭터엔 황당하게도 나이와 쓰리사이즈가 당당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남자 캐릭터는 정장을 말끔히 차려 입은 반면 여자 캐릭터는 가슴골이 깊게 파인 원피스에 망사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저렇게 입어선 일하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을 텐데. 수행비서로서 여성은 업무 스타일보다는 얼굴, 몸매로 평가되는 게 당연한 일로 치부되는 것 같아 상당히 불쾌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 <미생>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극 중 유능한 여성으로 설정된 안영이가 처음 계약을 따내던 장면이었다. 유창한 외국어 실력, 명석한 두뇌, 꼼꼼한 일 처리도 결국 계약을 따내는 데는 섹스어필만 한 게 없는 모양이었다. 허벅지가 드러나는 짧은 스커트에 한껏 풀어헤친 셔츠, 패드를 넣어 볼륨감을 높인 가슴과 엉덩이. 안영이보다 더 뛰어난 인재라 하더라도 만약 못생기고 몸매가 좋지 않았다면 저 계약이 성사될 수 있었을까. 비단 미디어 속에서만 등장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학생들이 주점을 돈벌이용으로 생각했다면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뭘 해야 했을까 싶다. 미디어에선 연일 회사 이력보다 룸살롱 접대에 얼마를 쏟아부었는지가 계약 한 건 따오는 데 더 효과적이란 걸 친절히 소개해 주고 있고 대기업들은 TV 광고에 자사 브랜드보다 아슬아슬하게 벗은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우기 바쁘고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다른 무엇보다 섹시 코드가 돈벌이 하는 데는 최고라는 걸 앞장서서 증명해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안다. 가격 몇천 원 줄이는 것보다 여학생들 옷 좀 야하게 입히고 자극적인 문구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게 더 돈벌이에 좋다는 것을. 목적이 돈일진대 무엇하러 이미 확고히 증명된 방식을 놔두고 '지식인다운' 방식을 추구하겠는가.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여성의 기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부터 논해야 할 문제다. 학과 성적이 어떠하든, 재량이 무엇이든지에 상관없이 돈벌이에 투입되는 '여성'의 쓸모란 얼굴과 몸매만 한 게 없다는 걸 학생들은 알고 있다. 단지, 그릇된 사회 관념을 무의식적으로 답습하고 있는 저들을 누가 욕할 수 있을까. 결국 자성해야 할 건 넣어주면 빨아준다는 그 여학생이 아니라 지금도 건재한 남성 위주 사회, 뿌리 깊은 가부장제 문화의 적폐가 아니겠는가.

그 10만 원은 어떤 돈이었을까

계산을 하고 나서는데 예비역 회장이 우릴 찾아왔다.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와 함께 후배들이 밤늦게까지 주점을 운영하느라 참 고생이 많다며 말을 에둘렀다. 각자 지갑에서 돈을 꺼내 10만 원을 맞춰 건넸다. 예비역 회장은 만족한 듯 연신 허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아, 정말 고맙습니다. 선배님들, 즐거우셨죠? 다음에 또 오세요.

즐거우셨죠? 다음에 또 오세요. 내가 룸살롱에 처음 발을 디딘 날 그때 그 웨이터도 그랬다. 술값 72만 원을 계산하고 나서는데 그놈이 날 붙잡았다. 바로 옆엔 내 옆에 앉았던 아가씨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형님, 얘 오늘 새로 들어온 앤데 집이 멀대요. 요즘 밤길도 무서운데 조심히 가라고 택시비나 좀 챙겨 주십쇼. 거절할 자신이 없어 어색하게 웃으며 3만 원을 건넸다. 그러자 내게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형님. 즐거우셨죠? 다음에 또 오세요.

그날 우리 동기들이 예비역 회장에게 건넨 10만 원은 어떤 돈이었을까? 정말 고생하는 후배들을 위로하는 격려금이었을까, 아니면 풋풋한 스무 살 여자들의 술잔을 받아 본 대가였을까. 아직도 분간이 가질 않는다.

룸살롱에서 나와 팀장이 타고 갈 택시를 잡았다. 기사에게 팀장이 사는 동네를 말하고 문을 닫으려는데 팀장이 내게 말을 건넸다. 역시 기집은 여의도가 좋아, 어린 맛이 있잖아. 그치?

나는 네. 그렇죠. ㅎㅎ, 하고 문을 닫았다.

이 글은 직썰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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