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로버트 드 니로'를 보러 갔다

벤 휘태커는 뛰어난 실력이 있고, 일에 무섭게 집중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경력을 과신하지 않고 어떤 일이건 단정하지 않는다. 산전수전 다 겪었을 벤 휘태커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수준에서 겸손하게 조언한다. 벤 휘태커는 간섭하지 않고, 가르치려 들지 않고, 배우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벤 휘태커는 유머감각이 있고, 따스함이 넘친다. 그런 벤 휘태커를 누구나 좋아하고 사랑한다. 드 니로를 통해 벤 휘태커는 살과 피를 얻었다.

  • 이태경
  • 입력 2015.10.12 11:11
  • 수정 2016.10.12 14:12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를 보러 갔다. 정확히 말하면 드 니로가 나온 영화 '인턴'을 봤다. 전성기가 지났지만 드 니로는 건재했다. '인턴'에 나온 드 니로는 극중 벤 휘태커로 분해 열연한다. 벤 휘태커는 70살의 은퇴자인데 전화번호부를 만들던 회사에서 40년을 일하며 부사장까지 역임했고 부인과 사별한 후 혼자 산다.

여행과 중국어 배우기 등을 통해 시간을 보내던 벤 휘태커는 인터넷 쇼핑몰의 시니어 인턴 모집 공고를 보고 인턴에 지원해 채용된 후 사장인 줄스 오스틴(앤 헤서웨이)을 모시고 직장생활을 한다. 벤 휘태커는 너무나 성실하고, 누구에게나 예의바르며, 친절하다. 벤 휘태커는 뛰어난 실력이 있고, 일에 무섭게 집중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경력을 과신하지 않고 어떤 일이건 단정하지 않는다. 산전수전 다 겪었을 벤 휘태커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수준에서 겸손하게 조언한다. 벤 휘태커는 간섭하지 않고, 참견하지 않으며, 가르치려 들지 않고, 배우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벤 휘태커는 유머감각이 있고, 따스함이 넘친다. 그런 벤 휘태커를 누구나 좋아하고 사랑한다. 드 니로를 통해 벤 휘태커는 살과 피를 얻었다.

70년대 초반부터 20년 동안 드 니로가 나온 영화들은 광휘로 가득하다. 드 니로는 수 많은 영화들에서 영화라는 장르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기억될 연기를 선 보였다.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드 니로는 방향을 잃고 비틀대는 듯한 모습을 보여 퍽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떤 배우건 연기 생활 내내 정점의 연기만 보일 수는 없는 법이다. 드 니로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고, 70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는 드 니로에게 표할 것은 존경과 찬사 뿐이다.

내가 직접 드 니로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꼽았다.

대부2 (1974)

드 니로가 젊은 비토 꼴레오네(대부 1에서는 그 유명한 말론 브란도가 연기했다)역을 맡았다. 드 니로는 시칠리아에서 마피아에게 가족 모두를 잃고 가까스로 미국으로 탈출해 뒷골목의 보스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훌륭히 연기했다. 특히 대부2에서 드 니로는 비토 꼴레오네의 후계자 마이클 꼴레오네 역을 맡은 알 파치노와 숨막히는 연기 대결을 펼친다. 이 두 사람이 한 장면 안에 등장하는 일은 없지만, 연기의 신들이 젊은 날에 펼치는 절정의 연기는 보는 사람을 전율케 한다. 폭력의 세계에 살면서도 가족과 친구를 지키며 그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젊은 날의 비토 꼴레오네를 드 니로가 아니었으면 과연 누가 연기할 수 있었을까?

택시 드라이버(1976)

드 니로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이자 사회부적응자인 트래비스로 분해 불면의 밤을 택시 운전을 하며 보낸다. 세상이 악으로 가득 차 있다고 여기는 트래비스는 짝사랑한 미녀 베티와의 첫 데이트 장소를 하필 자주 가던 포르노 극장으로 정하는 바람에 베티에게 버림 받는다. 트래비스는 우연히 만난 12살 창녀 아이리스를 구하기 위해 총으로 무장하고 아이리스가 있는 사창가로 진입해 격렬한 총격전 끝에 포주를 살해한다. 당신이 택시 드라이버를 본다면 포주 등과의 총격전에서 총상을 입고 피로 흥건한 바닥에 누워 출동한 경찰들을 향해 자신의 머리에 대고 손가락으로 만든 총을 쏘던 드 니로를, 어린 창녀를 구한 영웅이 된 후 자신을 찾아온 베티를 태우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그녀를 내려준 후 차 안에 있는 룸 밀러를 불안하게 응시하던 드 니로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디어 헌터(1978)

펜실베니아에 있는 제철소에서 일하던 친구 마이클, 닉, 스티븐은 베트남전에 참전한다. 마이클로 분한 드 니로와 친구들은 베트콩에게 포로가 돼고 러시안 룰렛에 내몰린다. 러시안 룰렛을 이용해 가까스로 탈출한 마이클 등은 도중에 헤어지고 마이클과 스티븐만 미국으로 돌아온다. 참전 전 결혼한 스티븐은 반신불수가 된 상태다. 닉은 전쟁과 러시안 룰렛이 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이공에 남아 러시안 룰렛 선수가 된다. 닉이 사이공에 있다는 사실을 안 마이클은 패망 직전의 베트남으로 가 닉을 빼오려 하지만, 이미 마약으로 인해 정신과 육체가 붕괴한 닉은 마이클의 마지막 호소를 뒤로 하고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다. 디어 헌터는 베트남전이 남긴 상처와 비극을 너무나 잘 보여준 영화다. 특히 마이클과 닉이 베트콩들 앞에서 목숨을 걸고 러시안 룰렛을 하는 장면은 언제 봐도 소름이 끼친다. 마이클과 닉의 사이공에서의 마지막 러시안 룰렛 장면은 정말 심금을 울린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드 니로가 분한 누들스는 친구들과 뉴욕의 뒷골목에서 좀도둑질을 해 돈을 벌다 커서는 밀주에도 손을 대 큰 돈을 번다. 하지만 친구 중 한명인 맥스의 배신으로 누들스를 제외한 친구 모두가 죽는다. 노년에 접어든 누들스는 장관의 초대로 장관의 사저를 방문하고 거기서 어릴 때 사랑했던 연인과 죽은 줄 알았던 맥스를 만난다. 누들스는 배신자 맥스를 용서하고 이미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린 맥스는 자살을 택한다. 영화의 마지막 아편굴에 누워 미소 짓는 드 니로의 얼굴은 세상의 비밀을 모두 안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다. 그건 영화사적 기적이고, 배우가 구현할 수 있는 연기의 끝이다.

스탠리와 아이리스(1990)

스탠리와 아이리스는 앞에 언급한 4편의 영화들에 비하면 중량감이 떨어지는 영화다. 하지만 글을 읽지 못하는 요리사 스탠리역을 맡은 드 니로의 연기는 말이 필요 없다. 핍진하기 그지 없는 삶을 사는 여자 아이리스와의 데이트날 표지판을 읽을 수 없어 데이트 장소에 밤 늦게 나타난 스탠리의 표정을, 아스피린을 달라는 아이리스의 말을 듣고도 아스피린 철자를 읽을 수 없어 다른 약이 든 약통을 화난 듯, 겁난 듯 연거푸 내밀던 스탠리의 표정을 드 니로 외에 그 누가 지을 수 있을까?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로버트 드 니로 #인턴 #영화 #문화 #이태경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