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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0일 08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10일 14시 12분 KST

창비 편집위원들의 글을 읽고 | 누가 거친 비판을 하는가

신경숙과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을 극단적으로 정형화시켜 놓고, 그 논리에 문제가 있다면서 창비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것은 설득력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비판자들은 훨씬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만 해도 이응준 소설가가 신경숙 표절을 지적하던 바로 그날 페이스북 댓글에 "이 글로 신경숙 작가의 수작까지 매도할 필요는 없지만, 저는 당연히 표절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분명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라고 쓴 바 있습니다. 이런 입장이 김종엽 편집위원의 주장대로 신경숙 "작품 전체를 쓰레기"로 보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창비가 이러한 프레임을 깨지 않는 한 어떤 생산적인 논의도 이루어지기 힘들 겁니다.

한겨레

신경숙과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을 극단적으로 정형화시켜 놓고, 그 논리에 문제가 있다면서 창비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것은 설득력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비판자들은 훨씬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신경숙 표절에 대해 비판적인 언급을 한 여러 문인들, 현기영, 김주영, 조정래, 이시영, 이응준, 이순원, 고종석, 함성호, 김응교, 황규관, 심보선, 김곰치, 김진석, 임우기, 정문순, 이재무, 김도언, 김주대, 손아람 등등의 입장이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문학동네에 의해 이상한 방식의 토론 초대를 받은 비평가 다섯 명의 생각도 조금씩 다 다릅니다. 저만 해도 이응준 소설가가 신경숙 표절을 지적하던 바로 그날 페이스북 댓글에 "이 글로 신경숙 작가의 수작까지 매도할 필요는 없지만, 저는 당연히 표절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분명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라고 쓴 바 있습니다. 이런 입장이 김종엽 편집위원의 주장대로 신경숙 "작품 전체를 쓰레기"로 보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창비가 이러한 프레임을 깨지 않는 한 어떤 생산적인 논의도 이루어지기 힘들 겁니다.

신경숙의 「전설」과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스토리 구조나 형식의 유사성은 영향관계로 치더라도,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는 개성적인 번역문을 포함한 열 줄 정도의 문장이 거의 동일하며, '청일한'과 같은 일본어 번역본 고유의 표현과 유사한 문장들이 여러 대목에 존재한다는 것은 의도적인 표절이 아니라면 불가능합니다. 설사 필사나 기억의 영향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의 동일성은 '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지요.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전설」이 발표된 지,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기에, 작가자신이 「우국」의 일부 대목을 베껴 썼다는 사실을 망각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도 표절이라는 책임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으며 작가가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신 씨의 표절 부분은 백번 양보해 본인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쓸 당시에 '의도적인 베껴 쓰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표현이다."(동아일보 사설, 2015.9.7)라는 기사가 바로 이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딸기밭」의 경우도 나중에 작가가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밝히고 출처를 밝히기는 했지만, 애초에 유고를 어떠한 출처도 없이 그대로 가지고 온 것도 문제입니다. 안승준 씨의 유족이 처음에 강력한 문제제기를 했다면 사태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평론가 이명원의 주장대로 "안승준 씨의 책은 독자 대중에게는 사실상 인지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최재봉 기자가 작가에게 해당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독자들은 소설 속에서 진술되는 아래의 편지를 신경숙 개인의 창작으로 끝까지 이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별인사」 같은 작품도 다른 작가의 개성적이며 특이한 표현들('물기척')을 가져온 흔적이 발견됩니다. 이 점을 표절이라고 보는 것은 과도한 판단이지만, 신경숙 작가가 다른 작가의 고유한 표현을 차용하는데 일부 습관화된 점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개성적인 문체를 강조하면서, 문체미학의 아름다움에 커다란 비중을 두는 저명한 작가 신경숙이라면 이런 점에 대해 좀 더 조심하고 예민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요. 물론 저는 신경숙을 상습적인 표절 작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신경숙이 바라마지 않았던 진정으로 개성적이며 창조적인 작가로 평가받으려면 자신의 글쓰기 습관에 대해 근본적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만약 「전설」 표절이 당시에 처음부터 제대로 알려졌다면 이후 신경숙이 받은 여러 가지 커다란 혜택과 명예, 엄청난 금전적 이득, 작품의 활발한 번역, 상금이 3억원에 달하는 호암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 독자들의 지속적인 사랑,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로 인정받는 일 등등이 가능했을까요? 바로 이 점이 이번 표절 사태를 바라보는 하나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작가와 출판사는 정말 마음 깊이 우러나온 사과를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신경숙이 추앙받고 높이 평가받은 만큼 엄중한 자기 성찰과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경숙이 과연 그런 책임감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는지요? 신경숙의 책이 잘 팔리는 만큼, 다른 개성 있는 작가들의 책이 안팔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창비 편집위원들은 이런 점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요?

윤지관 비평가, <문학과사회> 좌담에 참여한 일부 비평가(황호덕 등)는 문학권력 비판자들이 거칠고 부주의한 논리를 구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어느 쪽이 거친 논리를 구사하는지 공개토론을 할 것을 제안합니다. 어떤 주장을 하는 일군의 문인이나 비평가들을 거칠다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 개개인이 지닌 섬세한 차이에도 주목해야 하고 참으로 구체적이며 정교한 논리가 필요합니다..그러나 이들은 대단히 '거칠게' 이런 주장을 합니다..

문학권력 비판이나 신경숙 비판에 한계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제가 존경해마지 않는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이 당신의 작품 난쏘공에 대해 언급했던 비유를 빌자면, 아마 문학권력 비판에는 수천개의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십 수년전의 문학권력 논쟁을 하면서도 저는 그 한계에 대해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은 늘 필요합니다. 제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이른바 문학권력에 대한 의미 있는 문제제기, 아니 '거친' 비판도 거의 하지 않다가, 문단에서 고립될 것을 각오하고 비판하는 사람을 쉽게 매도하는 '부주의한' 양비론자와 방관자의 문제입니다.

창비 편집위원들께 부탁합니다. 신경숙을 옹호하는 것도 좋고, 비판자들에 대해 반론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아끼지 않았던 독자와 문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생각하면서 글을 써주시길 마음 깊이 바랍니다.

* 이 글은 권성우 교수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제목 중 부제는 편집 과정에서 추가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신경숙 표절과 창비를 보는 4가지 시선>

<1>표절 논란, '의도'보다 '결과'가 본질이라면 - 황정아 (문학평론가,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2>표절과 자비의 원칙 - 김종엽 (사회학자, 한신대 재직, 창비 상임편집위원)

<3>창비 편집위원들의 글을 읽고 | 누가 거친 비판을 하는가 - 권성우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문학평론가)

<4>'자비의 원칙'과 '비판의 원칙' | 창비 김종엽, 황정아 편집위원의 글을 읽고 - 오길영 (문학평론가, 충남대 교수)

*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 이응준 (소설가, '문장전선'의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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