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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 감별사, 고영주 이사장은 누구인가?

  • 김병철
  • 입력 2015.10.10 07:16
  • 수정 2015.10.10 07:25
ⓒ한겨레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을 변론한 이재화(52) 변호사는 1985년 대학 4학년 때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된 적이 있다. 당시 덕수궁 옆에 있던 서울지검으로 끌려가면서 잔뜩 긴장했단다. 악명 높은 공안검사를 처음으로 보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공안검사는 너무도 신사적이었다. 손찌검도 없었고 말투도 정중했다. 하얀 얼굴에 검은 뿔테는 학구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검사로 기억에 남았다. 고영주 검사였다. 지금의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다.

이재화가 고영주를 다시 만난 건 1998년이다.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찰에서 시보 생활을 할 때다. 방으로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13년 전 기소하신 학생인데 지금 시보로 나와 있습니다.” 부장검사 고영주는 처음에는 당황하더니 이내 “내가 기소한 피의자가 법조인이 돼서 나타난 건 처음”이라며 반겨주었다.

점심도 사줬다. 자신이 직접 차를 운전해 이재화를 비롯한 운동권 출신 시보 4명을 두부집으로 데리고 갔다. 분위기가 좋은 건 거기까지였다. 고영주 부장은 앉자마자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불순분자가 침투해 있다”고 말했다. 점심 자리는 갑자기 얼어붙고 말았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변호사 이재화와 세 번의 인연

이재화가 세 번째로 고영주와 인연을 맺은 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이다. 이재화는 통합진보당 쪽 변호인이었고 고영주는 해산을 처음부터 주도한 사람이었다. 직접 부닥치진 않았지만 논리 대 논리의 대결을 벌였다. 이재화 변호사는 사실 통합진보당과는 거리가 멀다. 지지하던 정당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정당 해산을 밀어붙이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변론을 자처한 것이다. 그래도 고영주 이사장의 기준으로 보면 이재화 변호사도 ‘법조계의 김일성 장학생’쯤으로 비칠 것이다.

이재화 변호사가 겪은 것처럼 고영주의 삶은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비교적 온화하고 유연한 검사 초기, 자기 확신에 가득 찬 검사 후기, 그리고 검찰을 떠나 ‘아스팔트 우파’로 나선 전투적 시기다.

1980년대 공안검사들은 대부분 ‘악질’ 소리를 들었다. 김원치, 이사철 등이 대표적이었다. 고영주는 좀 달랐다. 그는 법대가 아닌 공대 출신이다. “군에 입대해 법 공부를 시작했다. 사법시험을 보면 휴가를 보내 준다고 해 휴가 가고 싶어서 사시 1차 시험을 장난스럽게 봤는데 합격했다. 고교 선배가 공부를 계속해 보라고 해서 검사로 살게 됐다”는 게 그의 회고담이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부드러워 보인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실제 일처리도 유연한 편이었다. 1995년 7월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불후의 명언을 남기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불기소했다. 그런데 다섯 달도 지나지 않은 그해 12월 스스로의 결정을 뒤집고 전두환을 구속했고 결국 사형까지 구형했다. 자기모순에 빠진 검찰에 논리를 제공한 게 당시 고영주 대검 공안기획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때 검찰은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하면서 “이 사건은 피고인들이 군 통수체계 및 민주헌정질서를 뿌리째 와해시키고 건전한 경제구조를 왜곡시킨 반국가적 반역사적 범죄”라며 “결국은 정의가 불의를 이긴다는 것을, 진실보다 더 큰 힘은 없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 달라. 이 재판이 이 땅에 법과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이정표로 승화될 수 있도록 추상같은 법의 심판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지금의 고영주 이사장의 머리에서 이런 문장이 나왔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다른 평가도 있다. 이미 김영삼 대통령이 ‘처벌하라’고 지시를 내린 상황에서 이론적으로 뒷받침했을 뿐이라는 거다. 그렇더라도 20년 전에는 지금처럼 꽉 막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변형된 출세주의자인가.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6일 오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던 중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고영주의 머리는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져간다. 금태섭 변호사가 들려준 얘기다. “검사 초임 시절에 법무연수원에서 고영주 공안기획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박홍 서강대 총장이 하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해서 놀란 적이 있다.”

고영주와 함께 공안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후배 검사는 그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일을 참 열심히 하시는 분이었다. 당시 공안부는 검찰 안에서도 엘리트 집단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대기업으로 따지면 그룹 기조실에서 일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다. 게다가 대부분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니 공대 출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자기 확신을 극도로 밀고 간 게 아닌가 싶다.”

“노무현만 아니면 내가 검찰총장…”

고영주가 본격적으로 ‘강성’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한 건 2006년 서울 남부지검 검사장(지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면서부터다. 위의 후배 검사는 이렇게 말한다. “얌전한 성격이었는데 옷을 벗자마자 우파 시민단체를 조직하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뒤 몇 번 뵐 기회가 있었는데 표현의 강도가 더 세져 있었다. 나도 공안 출신이지만 세상이 변하니 생각도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분은 옛날보다 더 강해졌다.”

고영주의 사고방식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건 이제 온 천하가 알게 됐다. 하지만 보도되지 않은 장면들도 많이 있다. 방송문화진흥회가 대주주인 엠비시(MBC) 관계자가 들려준 사례다.

“한번은 어느 라디오 디제이가 방송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동물에 비유하며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고 해서 난리가 났다. 한 달 정도 샅샅이 찾았는데 아무리 지난 방송을 되돌려 들어봐도 그런 방송이 나간 적이 없었다. 알아보니 그 발단은 고영주 이사장이었다. 고 이사장이 ‘애국진영의 한 인사로부터 받은 제보’라며 문제의 방송을 언급해 진짜 그런 줄 알고 조사에 나선 것이다. 결국 ‘환청’이었던 걸로 밝혀졌다. 고 이사장이 애국진영, 애국세력이란 말을 즐겨 쓰는데, 그쪽 분들은 없는 말까지 들어가며 적대 세력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자리에서는 고 이사장이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우리 국사교과서는 좌파들이 만든 거라 문제가 많다. 차라리 일본 교과서가 양호하다. 국사교과서를 역사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나 정치학자에게 맡겨 쓰게 해야 한다.”

‘역사학자의 90%가 좌파’라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같은 생각이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개입 혐의가 무죄로 판결나자 환호했다거나,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해 입에 담기 어려운 비난을 퍼부어댔다는 증언들은 이제 대수롭지도 않은 얘기가 돼버린 상태다.

검사 고영주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하는 분석은 인사에 대한 불만이다. 고영주 서울남부지검장은 2006년 초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e)-프로스’에 이런 작별인사를 올렸다. “소신에 반해 행동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아도 27년간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해준 검찰 조직에 감사합니다. 큰 허물 없이 떠날 수 있는 걸 축하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글은 짧고 담백했지만 속내는 그러지 않았나 보다.

그는 2013년 1월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식에서는 이런 말을 했다. “노무현 정권이 저에게 보복을 했다.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핍박을 받다가 더럽다고 하고 검사를 그만뒀다. 그때 청와대에 있으면서 나에게 비토권을 행사한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다. 문재인은 청와대 있으면서 나를 계속 비토하는 사람, 그 사람은 내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자신이 탄압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가까운 법조인들에게 “노무현만 아니었다면 내가 검찰총장을 하고 나왔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고 한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말이다. 그렇다. 황교안 총리의 심리구조와 비슷하다. 황 총리는 예전에 스스로를 ‘좌파정권의 희생자’로 부각시키는 데 애썼다. 대표적인 게 2011년 5월 부산지역의 한 교회에서 한 특강이다. 당시 부산고검장이었던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로 규정하고 자신을 포함한 공안검사들이 부당하게 탄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황교안 총리

김기춘과의 관계를 잘 살펴보라

고영주 검사장은 정말 불이익을 받은 것일까? 비슷한 연배의 공안검사 출신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그는 대뜸 “고영주가 그래? 하하. 김대중, 노무현 때 탄압은 내가 받았지 왜 자기가 받아. 고영주는 그래도 할 것 다 해봤잖아.”

실제로 고영주의 화려한 경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검 공안기획관과 서울중앙지검 1차장 등의 요직을 맡았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청주지검 검사장으로 승진하고 대검 감찰부장을 거쳐 요처인 서울남부지검 검사장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서 검찰 인사를 담당했던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도 물어봤다. “고영주라… 별로 기억에 없는데.” 특별히 불이익을 주지도 않았고 혜택을 주지도 않아서 기억에 남는 게 없다는 취지다. 그래도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인사라는 게 워낙 주관적인 거고 개인의 기대치는 다 다를 수 있다. 섭섭하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인사에 대한 불만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서운한 감정 때문에 세계관이 그토록 광포하게 치닫는다면 세상사는 너무나 불안할 것이다. 그보다 더 큰 동기가 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고영주 이사장과의 관계를 잘 살펴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박근혜 정부 들어 김기춘 실장의 힘은 막강해졌고 그걸 뒷받침하는 게 검찰 조직이다. 그러나 사실은 김 실장이 검찰 조직을 잘 모른다. 떠난 지가 오래됐고 연배 차이가 많이 나 현직 검사들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김 실장으로서는 그 틈새를 메울 전직 검사들이 필요했다. 어떤 검사가 유능하고 충성심도 강한지 알아야 사람을 쓸 것 아닌가. 그래서 과거 눈여겨봤던 후배 검사들, 특히 공안부 출신들을 가까이 두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정홍원 전 총리, 황교안 현 총리, 그리고 고영주 이사장이다. 정기적으로 만나며 정권 안보에 필요한 사항을 논의하고 인사 추천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총애'를 받았던 정홍원 전 총리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기사가 하나 있다. 2013년 10월 <조선일보>는 “김기춘 실장이 지난 10월 초 우파 시민단체 대표 10여명을 만나 식사를 하며 여러 의견을 들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우파 단체 대표들은 이날 김 실장에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는 데 박근혜 정부가 흔들림이 있어선 안 된다”고 얘기했고 김 실장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자리에 고영주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이 있었다.

두 가지 사실을 묶어보면 김기춘 실장과 고영주 이사장은 과거 1970년대의 공안검사처럼 좌파로부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켜내기 위해 함께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좌파를 척결하는 데 온몸을 바친다면 그만큼의 보상도 따르리라는 심리가 작용할 법하다. 검사 고영주로서는 김대중·노무현 때 평가받지 못했던 공로를 김기춘 실장을 통해 한꺼번에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맞은 셈이기도 하다.

실제로 고영주 변호사는 오랫동안 통합진보당을 연구하고 자료를 모으며 정당 해산의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 인사로 꼽힌다. 정당 해산 심판 청원서를 직접 쓴 것도 고영주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를 만들어 정부를 뒷받침했으니 1등 공신인 셈이다.

그런데 사실 공로는 황교안 총리가 다 가져갔다. 법무부 장관에서 국무총리로 영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정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낸 점이다. 그에 비하면 고영주가 방문진 감사에서 이사장으로 승격한 건 참으로 약소하다.

고영주 이사장은 "노무현은 변형 공산주의자, 박정희는 전향 공산주의자"라고 말했다.

황교안 법무장관 내정 때의 반응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결정을 내린 직후 사적인 자리에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볼 기회가 있었다. 여전히 입이 무거워 아무리 이것저것 찔러봐도 그저 웃음으로 넘길 뿐이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해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답지 않게 자기 자랑을 한참 늘어놓았다.

“다른 검사들은 그저 사건 하나하나를 처리하는 데 그쳤지만 저는 10년 넘게 통합진보당의 역사와 강령을 분석하고 사건들 사이의 연관 관계를 파악했습니다. 잘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캐들어간 겁니다. 오랫동안 축적한 자료가 있었기에 헌법재판소를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고영주 이사장 쪽 설명은 다르다. “법무부는 우리가 제출한 청원서를 풀어서 쓰고 우리가 제공한 자료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전공을 둘러싸고 둘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두 사람 사이가 편한 사이는 아니라고 분석하는 사람이 있다. 둘을 다 잘 아는 어느 법조인은 “박근혜 정부 초기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내정되자 고영주 변호사의 반응이 썩 호의적이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니 변호사 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청문회를 어떻게 통과하려고 덥석 받나?’ 하는 것이었다. 경기고 후배인데다 공안부에서 직접 가르치다시피 한 후배이니 감정이 미묘할 수 있다.”

오래전 검찰을 출입하면서 검사들끼리의 경쟁을 지켜본 적이 있다. 서울지검의 공안1부와 공안2부가 경쟁하고, 특수1부와 특수2부가 부닥친다. 이게 부장끼리의 경쟁이라면 같은 부서 안에서는 검사 개개인이 실적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아무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소리 없는 총성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김기춘 실장은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하다. 공안검사 출신들은 지금 30년 전쯤으로 돌아가 ‘김기춘 공안부장’을 모시고 좌익 소탕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목소리가 커져서 전직 대통령들도 줄줄이 ‘빨갱이’가 되고 있다.

지나친 비약이라고? 하지만 뭐 대수인가. 고영주 이사장도 사람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말하지 않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그러니 고영주 이사장의 인식을 그대로 돌려줘도 될 성싶다. “고영주 이사장은 변형된 출세주의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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