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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9일 07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19일 14시 12분 KST

포르투갈 생태마을 타메라 기행기 | 모든 존재의 평화를 꿈꾸는 실험

타메라의 경험을 통해 이들에게 생태마을에 산다는 것은 단순히 생태적으로 지어진 집에서 살며 몸에 좋은 유기농 음식을 먹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가슴으로 몸으로 배울 수 있다. 이들에게 마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모두 던져 자신의 내면, 이웃, 자연 나아가 지구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평화의 공간을 만드는 것임을 느꼈다. 이들의 삶에 깊은 존경심을 보내며 맑고 진실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거창한 관념들이나 사상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손, 발 그리고 영혼이 이어진 위대한 일상의 온기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시절부터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여행을 떠났고, 그 여정은 유럽의 생태마을과 공동체로 이어졌습니다. 그 길 위에서 만났던 마을과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 마을에서 한국 청년으로서 겪었던 경험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야기 2. 포르투갈 생태마을 타메라 기행기 | 모든 존재의 평화를 꿈꾸는 실험

포르투갈의 무더운 한여름, 생태마을 타메라에서 열리는 여름대학에서 호리호리한 젊은 독일 여성이 강단 위에 올랐다. 젊은 여성의 눈은 깊은 바다처럼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대륙에서 찾아온 사람들을 천천히 바라보고 나서는,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 글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 세계를 바라보면, 어머니 지구인 거대한 배는 가라앉고 있습니다. 전 세계는 지금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우리 모든 사회구조는 착취, 불신, 전쟁에 기반하고 있습니다......저는 이런 것을 마주하기 위해 용기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저는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이런 삶이 정말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인지를......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이 순간을 느껴봅니다." 그녀는 '절망'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꾹 참았던 눈물을 목으로 넘겼다.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은 한 가족입니다. 지금 이 시기는 깨어남의 시기이며 지구를 향해 연민을 가져야할 때입니다. 인간 존재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할 때입니다......저는 젊은 여성으로 역사를 돌아보며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어난 혁명, 프로젝트 그리고 그것을 이끌었던 이들에게 깊이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저는 그들의 길을 잇는 것에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녀는 역사의 수많은 장면을 떠올리는 것처럼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여기서 우리는 당신이 전쟁을 반대하고 있다면 평화에 대한 비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평화가 행복에 가득 찬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 사람과 우주가 서로 신뢰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200명이 넘는 사람들은 모두 고요해졌다. 지구에 사는 모든 존재를 향한 깊은 연민, 세상을 향한 용기와 희망에 대한 타메라 마을에 사는 젊은 여성의 진실한 고백은 다른 언어, 다른 피부색을 넘어 모두의 가슴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그 순간 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그 젊은 여성의 용기를 배우고 싶었고, 오랜 역사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 그 길을 함께 걸어 나가고 싶었다. 나는 강렬했지만 따뜻하게 영혼이 흔들리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타메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한여름, 땀 냄새와 무더운 여름의 열기가 혼재한 기차 안이었지만 미지의 세계를 만난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흥겨운 노래에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기차가 도시를 빠져 나갈수록 밖의 풍경은 낯설었다. 아니 이상했다. 서유럽의 울창한 여름 풍경과는 정반대로 마치 며칠 전 화재가 일어났던 것처럼 몇 그루의 큰 나무만 겨우 푸른빛 잎을 보였고, 잡목과 풀들은 모두 누렇게 마르다 못해 타버린 것 같았다. 이 땅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펑체리아역에 내려 마을 사람의 차를 타고 먼지가 자욱이 날리는 시골길을 25km 달렸다. 연이어지는 이런 풍경을 보며 내 마음속에 흐르던 흥겨운 음들은 포루투갈의 민중가요인 파두(Fado)처럼 애잔한 음들로 가득 차올랐다.

타메라 마을의 전경

차에서 내리니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온몸을 태우는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이 사람들은 이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때 독일 할머니 두 분이 우리 앞으로 다가오셨다. 뜨거운 태양 아래 그을려 구릿빛 피부를 한 할머니들은 건강해 보이셨고, 독일인 특유의 영어 악센트로 투박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타메라에 온 걸 진심으로 환영한단다. 너희들이 이곳에 온 첫 한국인이란다." 할머니는 이가 드러나게 환히 웃으시고는 굵고 거친 손으로 물 한 잔과 신선한 채소들이 가득 담긴 점심을 내오셨다. 그 생기 넘치는 밥상과 미소 가득한 얼굴을 보며 물 한 잔을 쭉 들이켜니 타들어갈 것 같던 가슴에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들어갔다. 물을 단숨에 들이켜고 옆을 바라보니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아이들이 호수에서 연신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젖은 온몸을 뜨거운 태양 아래 말리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이곳에서 지낼 날들의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고 있었다.

자연과 사람이 평화롭게 상생하는 삶을 실험하는 마을

타메라(Tamera)는 포르투갈의 남쪽 아렌타고 지역에 있는 국제생태마을로 20년이 된 젊은 공동체다. 마을에는 현재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170여 명이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대부분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고, 그 밖에 전 세계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힐링 바이오톱(Healing Biotope)'이라는 비폭력 문화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지속가능한 삶의 모델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1978년부터 독일의 작은 농장에서 시작되었다. 타메라의 리더인 사비나와 디터는 농장에서 함께 살아가며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과학, 사회학, 영성 분야에 걸쳐 오랜 연구와 실험을 했다. 그리고 진정한 삶이라는 것은 자연과 인간,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 젠더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빚어내는 현대사회의 폭력을 동반한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나갈 때 가능하다고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 여성 리더인 사비나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들의 꿈을 실현할 터전을 찾았고, 1995년 포루투칼의 남쪽 땅에 뿌리를 내렸다.

타메라의 신성한 장소인 스톤써클(Stone Circle)에서 아침 해를 맞는 마을 사람들

마을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아버지와 아이

'아침의 춤(Morning Dance)', 타메라 호수

나는 한 달 동안 친구들과 대형텐트에서 지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지냈던 텐트에서의 생활은 비교적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뜨거운 한낮 날씨였다. 냉장고가 두 대밖에 없는 이 마을에서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기대할 수 없었고, 오전 11시쯤 해가 뜨거운 얼굴을 하늘 높이 드리울 때면 마을사람들과 다 같이 훌러덩 벗고 호수로 향했다. 그러면 호수는 우리의 뜨거운 몸을 식혀 주었다. 어느 날, 호수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나는 호수를 향한 경이로움에 휩싸였다.

타메라 사람들이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는 작은 연못 하나도 없는 먼지만 날리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1940년대 스페인 시민혁명 기간 동안 농부들은 산업곡물생산에 주력했고, 포르투갈 남부 지역의 땅들은 파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하수 층이 점점 내려갔고, 내가 기차를 타고 올 때 보던 풍경처럼 나무들은 잘 자라지 못해 결국 화재가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 슬픈 것은 이곳은 점점 사막화가 되기 시작하고, 곧 10년에서 15년 안에 사막이 될 것이라고 했다.

타메라 사람들이 상처 받는 땅에 와서 처음 시작한 일은 물줄기를 되살리는 일이었다. 마을의 생태그룹은 오스트리아 퍼머컬처 전문가인 젭 홀저와 함께 빗물을 양을 해마다 재보면서 누수의 원인은 빗물이 양이 적은 것이 아니라 지력이 약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 지역의 전반적인 자연환경, 생물의 다양성, 계절의 흐름을 신중하게 살펴가면서 가장 자연스러운 호수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천연 진흙을 사용해 호수를 만들었고, 호수의 깊이를 36미터 깊은 곳부터 얕은 곳까지 고르게 했다. 이런 깊이의 차이를 통해 물의 따뜻한 층과 차가운 층이 서로 순환하며 호수는 숨을 쉬었다. 또한 호수의 가장자리에는 해바라기와 콩을 심고 텃밭을 가꿔서 비가 내리지 않는 여름철에 호수의 물이 마르더라도 지하수는 마르지 않도록 했다.

이 호수를 중심으로 작은 호수들을 더 만들어 나가며 마을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땅은 스펀지같이 물을 빨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빗물은 더 이상 바다로 빠져나가지 않았다. 또한 떠나갔던 수달과 자라와 같은 야생동물이 호수에 찾아들게 되었다. 이른 아침 새들이 지저귀는 호수에 물안개가 피어올랐고, 건조하던 공기는 습기를 조금씩 머금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호수에 안개가 춤추듯 번져 오르는 것을 보며 기쁨에 넘쳐 이것을 '아침의 춤(Morning Dance)'이라 불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며칠 후, 분홍빛 저녁노을이 호수에 비칠 때쯤, 마을 사람들은 호수를 빙 돌아 침묵 속에 고요히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200명이 넘는 이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는 경건하지만 따뜻하게 울려 퍼져왔다. 이들의 노래에 화답을 하는 듯 호수에는 잔잔히 물결이 일고 있었다. 그러자 멀리 호수 끝에서 띄운 촛불들이 그 파동으로 호수 반대편까지 천천히 흘러갔다. 그 모습은 마치 아름다운 빛들이 호수 위에서 너울너울 춤추는 것 같았다. 이 모습을 보며 이들에게 호수는 물줄기를 마르지 않게 하는 장소를 넘어 이들의 영혼을 기대고 쉴 수 있는 살아있는 신성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 누이여, 우리 함께 호수로 내려가 기도 드려요...... 오! 어머니, 나의 어머니, 우리 호수로 내려가요. 그 곳에서 기도 드려요" 이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호수를 천천히 걸으며 자연과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델을 만든 다는 것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가슴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마을에 호수가 생기고 자란 사과나무

볏짚으로 지은 대형 강당이 보이는 호수 가에 자라고 있는 해바라기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의 아침

(사진 출처: 타메라 마을)

태양의 마을, 자립을 꿈꾸는 실험 모델

타메라는 사람들은 상처받은 자연환경을 복원하면서 동시에 의식주와 에너지 자립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이들은 태양열을 이용한 마을(Solar Village)을 호수 동쪽에 만들었다. 이 공간에서는 태양에너지만을 사용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집집마다 태양전지가 설치되어 있으며 마을 공동 부엌에는 태양열을 이용한 요리 기구인 솔라 쿠커(Solar Cooker)를 사용한다.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을 대비해 바이오가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태양열을 이용하는 마을 공동 부엌

태양열을 이용해 병을 소독하는 마을 사람

태양열을 이용하는 요리 기구 솔라 쿠커(Solar Cooker)

또한 2010년 말부터는 대형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지 않고 지역 농부들과 교류하며 이들이 생산한 생산물만을 사용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동물을 자신들과 같은 형제로 여기며 고기, 달걀과 생선을 먹지 않는다. 집은 지역에서 나는 볏짚, 흙, 코르크 나무와 같은 생태자재를 이용해 지어나가고 있으며 이들은 새 옷을 사지 않고 헌 옷을 고쳐서 입는다.

마을에서 자란 과일을 수확해서 만든 채식파이와 디저트

말과 교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마을 사람

(사진 출처: 타메라 마을)

세계의 평화를 꿈꾸며

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에 평화를 깊이 뿌리 내리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세계의 평화에도 그 누구보다 관심을 두고 있었다. 태양열을 이용하는 마을을 세운 목적도 아프리카, 남미, 중동 등 자신들과 같이 사막화 위험에 처한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파일럿 모델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또한 사비나 여사가 설립한 그레이스 재단에서에서는 분쟁지역을 후원하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이스라엘부터 팔레스타인, 콜롬비아 등 분쟁지역으로 평화의 순례를 떠난다. 더불어 해마다 세계 여러 청년들을 마을에 초대해 단기 국제평화대학을 연다. 이 대학에서는 평화에 관련된 이슈를 다루며 호수복원, 평화순례, 에너지 자립, 젠더 문제 등 마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젝트를 입체적으로 소개한다. 또한 참가자들이 그들의 다양한 활동을 공유하고 국제적으로 연대할 수 있게 돕는다.

분쟁지역으로 평화의 순례를 떠난 마을 사람들

(사진 출처: 타메라 마을)

새로운 배움 안에서 일어나는 깨어짐의 시간들

나는 이곳에 지내면서 끼마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아시아, 유럽, 중동의 음식 맛이 섞인 맛있는 채식식단의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하루에 몇 번씩 생태 화장실에 달려가며 몸을 깨끗하게 비울 수 있었다. 낮에는 마을 사람들과 일하며, 가끔씩 모기를 쫓기 위해 텐트에 넣어둘 유칼립투스 나뭇가지를 숲에서 주워오기도 했다. 나뭇가지를 한 아름 안고 있으면 시원하고 향긋한 향에 감싸였다. 밤이 되면 작은 불빛도 거의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하늘 위로 수없이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친구들과 도시에서 나누어 보지 못했던 삶의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있었다. 또한 여름대학이라 불리는 국제평화대학 프로그램에도 참가하며 전 세계에서 찾아온 평화 운동가, 교육자, 종군기자, 학생, 생태마을 활동가 등 삶의 현장에서 뜨겁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내전이 일어나는 콜롬비아에서 평화활동을 하고 돌아온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시대에 만연한 폭력에 마음속 절규가 일어나기도 했고, 동티모르에서 온 친구들이 부르는 삶의 애환이 담긴 노랫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살아왔던 삶과 다른 이 삶이 3주가 넘게 지속되며 여행자의 기쁨만을 누린 것은 아니었다. 더운 날씨를 견디며 많은 사람을 만나며 이곳에서 배우고 느낀 방대한 내용과 삶을 소화하며 굳었던 생각들과 습관들이 깨지는 고통을 느끼는 때가 더 많았다. 이들의 삶의 무엇인가가 내 안에 엉켜있는 것들을 온통 흔들리고 요동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항상 여기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나와 친구들을 먼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며 도움을 주었고, 특히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시원한 물 한 잔을 주었던 일마 할머니는 물을 따라 주셨다. 할머니가 주신 그 시원한 물을 마시면 타메라 호수가 부르는 음악 한줄기가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여름대학에 찾아온 아프리카 청년

일마 할머니와 만남

일마 할머니와 가깝게 되면서 나와 친구들은 할머니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할머니는 볏짚으로 지은 집에 살고 계셨다. 방에는 옷가지들과 책, 고무신 3켤레가 있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왜 여기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할머니는 독일 수의사였다. 여기 오기 전 독일의 생태마을에 살다가 서구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제 3세계 사람들에 했던 만행을 깊이 반성하게 되었고, 자신의 재산을 타메라의 평화활동이나 제 3세계의 청년들에게 나누어 주고 계셨다. 마을에서 할머니는 다른 여성들과 볏짚으로 집을 짓거나 약재용 허브를 따며 이곳의 일상을 보내고 계셨다. 할머니는 검은색 고무신 세 켤레를 보여주며 "나는 내 남은 인생에 신을 신발을 다 가지고 있지"라고 말하며 아이처럼 활짝 웃으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으로 나의 손을 잡아 주셨다. 할머니의 구릿빛 손은 일을 하도 많이 해서 거칠어져 있었고, 서양인 가운데 이런 손을 하고 있는 사람을 그곳에서 나는 처음 보았다. 그 순간 작은 일상들을 거룩하게 보내는 할머니의 삶과 그 따뜻한 영혼이 나의 손으로 가슴으로 전해졌다. 할머니와 만남 이후 타메라의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삶을 몇 달간의 여행이 아닌 일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고, 이들의 삶의 뿌리는 어디에서 오는지 깊이 배우고 싶었다.

일마 할머니가 사는 아치형 스트로 베일(Straw Bale) 집

약재용 허브를 따는 일마 할머니

(사진 출처: 타메라 마을)

평화를 위한 일은 자신의 내면과 세상의 일과 연결되어 있는 것

이런 생각이 마음 속에 올라올 때쯤 타메라의 긴 여름은 끝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떠나기 전날 이 마을의 초창기 멤버이며 여성 리더인 사비나를 찾아갔다. 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인 아침, 고요한 작은 방에서 사비나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비나는 천천히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따뜻한 목소리로 풀어 나갔다.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항상 외로워 보였습니다. 제 부모님에게는 진정한 공동체가 없었습니다. 16살에 저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비나는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남성중심의 교회문화에 실망하며 여성문화를 연구했고, 과거 모계사회가 가지고 있던 공동체 문화에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사비나에게 왜 이러 삶을 시작했는지 물었다. "제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지금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반대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면에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 체제의 혁명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끝나면 다시 똑같은 문제가 여러분 내면에 찾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를 위한 일은 자신의 내면과 세상의 일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요......"

사비나는 평화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사비나는 유럽 역사 안에 있던 지혜를 깊이 성찰하면서 현대사회에서 자신 내면에 있는 외로움, 아픔, 상처를 깊이 바라보았고, 그것은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의 상처, 자연의 아픔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던 것이다. 이 신념을 통해 새로운 삶, 평화의 마을을 만드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오래된 미래를 찾아

마지막으로 한국의 청년들에게 이 말을 전해주었다. "동양문화에도 아주 깊은 지혜의 원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몇몇의 사람이라고 이 지혜에 깊이 연결감을 갖는다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나는 사비나의 이야기를 듣고, 티베트에 있는 라다크라는 마을의 지혜로운 전통적인 삶을 떠올리며 "오래된 미래를 찾는 거군요."라고 말했다. 사비나는 대답했다. "세계화 아래 사람들은 좋은 집 좋은 차를 갖고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은 진정으로 그 지혜의 샘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를 복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 내가 신뢰할 수 있는 그 원천을 찾는다면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모델,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이 끝나고 대지의 짙은 빛을 닮은 사비나의 눈은 나와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그 깊은 눈빛을 통해 그녀가 삶으로 전하고 싶은 긴 이야기가 들리는 듯 했다.

타메라 여성들과 사비나 여사(오른쪽)

(사진 출처: 타메라 마을)

별이 빛나는 밤에

나와 친구들은 그 날 밤 텐트로 돌아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유럽의 생태마을을 여행하며 희망을 보기도 했고 동시에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타메라의 경험을 통해 이들에게 생태마을에 산다는 것은 단순히 생태적으로 지어진 집에서 살며 몸에 좋은 유기농 음식을 먹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가슴으로 몸으로 배울 수 있다. 이들에게 마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모두 던져 자신의 내면, 이웃, 자연 나아가 지구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평화의 공간을 만드는 것임을 느꼈다. 이들의 삶에 깊은 존경심을 보내며 맑고 진실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거창한 관념들이나 사상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손, 발 그리고 영혼이 이어진 위대한 일상의 온기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텐트 밖으로 나오니 별들이 머리 위로 쏟아질 것 같았다. 그때 보았던 타메라의 밤하늘은 내가 이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밤하늘이었다. 만약 사막을 간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별들이 있을 거라고 친구는 말했다. 저편에서 호수가 보내는 감미로운 바람이 느껴졌다. 타메라 마을 사람들처럼 세상의 선함을 위해 살아갔던 수많은 존재들이 수놓은 은하수를 보며그 별들 가운데 하나가 되리라 기도했다.

타메라의 밤하늘

PRESENTED BY 호가든